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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4일, 코로나19로 졸업식은 취소 되었지만 학위증서를 들고 환히 웃는 엄마
 지난 2월 14일, 코로나19로 졸업식은 취소 되었지만 학위증서를 들고 환히 웃는 엄마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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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냈습니다. 지난 2월, 봄날처럼 포근한 햇살이 내리는 교정에서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 엄마를 만났습니다. 오랜 세월 혼자 가슴에 품어왔던 꿈이었습니다. 

외삼촌과 함께 운영하던 학원 사업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가정주부로 복귀한 엄마는 '학교에 가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엄마는 환갑을 맞이하고, 다음 해인 2016년에 진형고등학교(서울시교육청 인가 평생교육원, 2년제)에 입학해 2년 정규 교과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2018년 학과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2020년 올해 졸업했습니다.

남들 같으면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거나 문화센터에 등록해 취미생활을 즐길 나이에 왜 학교에 갈 생각을 했을까요?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엄마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때 회사에서 여는 글쓰기 강연에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매번 초대할 때마다 거절했는데 제 성화에 못 이겨 한번 와준 것이지요.

"에세이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라기에 가봤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글도 같이 읽고 참 좋더라고. 그런데 종이랑 펜을 주면서 '이제 글을 한번 써보세요' 하는 거야. 편집실에서 첨삭도 해준다고. 그제야 '아뿔싸! 너한테 속았구나' 싶었지. 네 체면을 생각해서 도망은 못 가고 강연 들으면서 떠올랐던 옛이야기를 썼어."

엄마가 쓴 글을 받아본 편집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글이 정말 좋다면서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바로 엄마 글이 실렸습니다. 편집장님은 "어머님 글이 참 좋아요. 어머님께 팬이라고 전해주세요"라며 종종 원고 청탁을 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20년 넘게 구독하던 잡지에 내 글이 실리고 원고료까지 받으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 편집장님이 내 팬이라고 하고 독자들 반응도 좋다니까 '내가 정말 글을 좀 쓰나?' 싶기도 하고.(웃음)" 

엄마는 글쓰기 강연에 다시 초대받아 글을 썼고 쓰는 글마다 잡지에 실렸습니다. 한번은 강연에 다녀온 엄마가 저만 읽어보라며 슬쩍 글을 건네주었습니다. 쑥스러워서 편집부에는 제출하지 않았다고요.

그 글을 읽으며 저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릴 적 내 꿈은 선생님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다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들 가정환경조사서 부모 학력란에 고졸이라 써서 보내곤 했지만 실은 중졸이다.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다음해 1월 1일,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엄마는 "나 올해 고등학교에 간다!"고 선언했습니다. 세 딸은 이름 돌림자 '효'를 따서 '효 장학회'를 만들어 학비를 댔습니다. 아빠도 물심양면 도우며 응원하셨고요.

"처음엔 정말 좋더라. 엄마 학교 간다고 딸들이 책가방이랑 옷도 사주고. 그런데 다 늙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앉아 수업을 들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고. 수업 듣고 배우는 건 좋았는데 체력이 안 따라줘서. 그리고 돌아서면 까먹고 돌아서면 까먹는데.(웃음) 큰딸 또래 선생님들한테 물은 거 또 묻는 게 얼마나 민망하고 미안하던지…"   

고등학교 정규과정을 2년 안에 마치는 거라 학사 일정도 빡빡하고 시험도 자주 보긴 하더군요. 주말이면 몸살로 끙끙 앓다가도 월요일 아침이 되면 벌떡 일어나 학교에 가는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공감이 잘 되는 또래 만학도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좋았어. 자식 자랑, 건강 걱정,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로 수다도 떨고. 현장학습이랑 수학여행 가서는 어르신들답게 럭셔리하고 화끈하게 놀았지!(웃음)"

"나만 학교 다니는 게 미안해서 그만뒀어"
 
 중학생 시절, 학교 교정에서 친구와 함께(오른쪽이 엄마)
 중학생 시절, 학교 교정에서 친구와 함께(오른쪽이 엄마)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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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사남매 중 맏이였고, 할아버지가 중학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는 아들이어도 집안 형편이 안 좋으면 중학교에 못 가는 경우가 많았대요. 더구나 딸들은 중학교 가는 경우가 드물었죠. 엄마가 살던 부산 감천에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에 간 건 엄마랑 양조장 집 딸인 친구, 딱 둘뿐이었답니다.

"나야 당연히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 근데 너희 할머니가 '가시나가 공부해가 뭐 할끼고?' 하면서 취직자리나 알아보라고 하셨어. 일본계 회사 공장에 경리로 취직했는데 근무 환경은 좋았어. 초과근무도 없고. 그러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야간 고등학교 얘길 해줬어. 그날로 당장 퇴근 후에 그 친구랑 학교 등록하고 교복까지 맞춰 입었지. 교복 입고 밤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마당에서 일하고 있던 엄마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너무 늦게 다니지 마라' 하고 아무 말 안 하시더라고."
 
 야간 고등학교 시절, 서울 수학여행에서(오른쪽이 엄마)
 야간 고등학교 시절, 서울 수학여행에서(오른쪽이 엄마)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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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여섯 살 막내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죠. 당시 외할아버지는 조합 형태의 버스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사업도 접고 할머니와 함께 차가 없는 시골, 고향 합천으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부모님은 고향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셨고 나는 부산 월세 단칸방에 동생들과 함께 남겨졌어. 둘째랑 같이 직장생활 해서 번 돈으로 월세도 내고, 쌀도 샀지.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싸서 동생들 학교 보내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야간학교 가서 공부하고. 점점 힘에 부치더라고. 게다가 동생은 직장에서 야근까지 하면서 힘들어하는데 나만 학교 다니는 게 미안하잖아. 결국 그만두었지."

결혼해서 아이 넷을 낳아 기르고, 직장생활도 하고 사업도 하면서 세월은 정신없이 흘렀습니다. '학교에 가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을 정도로요. 다만 저희를 기르면서 아쉬움은 있었답니다.

"가장 막막하고 두려웠던 게 너희들 교육. 자식들에게만큼은 뭐든 다 해주고 싶은데 '혹시 내가 못 배워서, 무식해서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늘 걱정했지. 부모학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요즘은 아마 있다지?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법을 가르쳐주는 강의 같은 거 말이야. 너무 막막해서 책도 많이 읽고, 성당에서 하는 영성 강의가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가서 들었어."

엄마는 그 흔한 "공부해라!"라든가 "성적이 이게 뭐니?" 같은 잔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숙제는 뒷전이고 놀 궁리만 할 때, 성적이 떨어져도 아랑곳없이 공부를 게을리할 때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첫째인 큰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교복을 맞춰온 날, 몸매가 날씬한 엄마가 언니 교복을 입어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무도 나를 나무라지 않는데 늘 자신이 없었어. 사람들이 칭찬해도 '나를 왜 칭찬하지? 난 그런 잘난 사람 아닌데…' 오히려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어.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 애들 칭찬을 하면 정말 행복했어. '아, 내가 잘못하고 있지는 않구나'라는 위안을 줬거든. 너희들이 상을 타오면 속으로는 정말 기뻤지만 칭찬은 아꼈어. 겸손해지라고. '겸손해라, 드러내지 마라'를 입에 달고 살았잖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꼭 좋은 교육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네."

사실 고등학교 졸업장 따면 그걸로 됐다 싶었지, 대학 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답니다. 배움은 좋았지만 집안일도 돌봐야 하고,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쳤을 터. 그런데 입시 철이 다가오고 주변에는 대학에 가겠다는 친구들이 있었죠. 담임 선생님도 수능을 보지 않고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라며 권유하셨고요. 엄마는 늘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거든요.

"대학에 가든, 안 가든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나, 없나 궁금하긴 하더라고. 지원이나 한번 해보자 했는데 합격이라는 거야. 일단 기분은 좋더라고."

심지어 엄마는 학과 최우수 장학생으로 합격했습니다. 학교에서 한 학기 장학금을 준다고 했습니다. 중간에 그만둘 생각으로 시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가족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가족들도 엄마의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있었는데 회의 끝에 '엄마가 원하면 다녀보라'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렇게 엄마의 대학 생활이 시작됩니다.

"역시나 배우는 건 좋았어.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철학과 역사, 인문학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 언제나 문제는 체력이고.(웃음) 옛날 같으면 손주 벌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려니까 힘든 점도 있었어. 조모임 과제를 할 때는 만학도인 나를 소외시키는 경우도 있었고. 그나마 다행인 건 나보다 한 살 어린 만학도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그 친구와 함께 소외되었다는 점.(웃음)"

교수님보다 나이가 많은 동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동기들과 친해졌고,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고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어 고마웠답니다. 엄마가 대학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요즘 아이들이 안쓰럽다'였습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싱그럽고 예쁜 아이들과 한 공간에 앉아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행복했지. 그런데 요즘 아이들,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에 아르바이트에 너무 바쁘잖아. 청춘인데 놀기는커녕 늘 지치고 걱정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어. 공부만 하기에도 힘든데 얼마나 고단할까."

대학 졸업장 든 엄마의 또다른 꿈
 
 엄마(왼쪽)가 만학도 동기인 친구(오른쪽)와 함께 학사모를 던지는 모습
 엄마(왼쪽)가 만학도 동기인 친구(오른쪽)와 함께 학사모를 던지는 모습
ⓒ 이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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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식들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할 때가 가장 서운했다고 했습니다. "엄마, 이제 엄마 인생을 사세요"라고 할 때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었고 막막했다고요.

'자식이 전부였는데. 내 인생은 뭘까?' 서운함과 괘씸함이 지나간 뒤에 문득 어릴 적 꿈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꿈도 생각났습니다.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도 갔습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 엄마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우선 졸업을 해서, 또 하나가 잘 마무리됐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뻐. 코로나19 때문에 졸업식도 취소됐잖아. 만학도 친구랑 학과 사무실에서 졸업장 찾고 아쉬우니 둘이 식사나 같이 하자고 만났거든. 그런데 체육관에 가보니 학생회에서 졸업가운이랑 학사모를 대여하고 있더라고. 너희가 또 연락받고 부리나케 몰려와서 졸업사진을 찍어주니 좋지. 졸업장 들고 사진도 찍고, 하늘 높이 학사모를 던져보니까 '아, 이제 정말 졸업이구나!' 실감이 나.

자꾸 편입이나 대학원 갈 생각 없느냐고 묻는데 전혀 없어!(웃음) 원래 있던 주부의 자리로 돌아와서 집안일 잘 돌보고, 연로한 부모님도 챙겨야지. 물론 듣고 싶은 강연이나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찾아다닐 거야. 요즘은 시민대학도 있고, 구청이나 문화센터 강연도 좋은 게 참 많잖아.

글은 앞으로도 종종 쓰게 되지 않을까. 꼭 책을 낸다거나 어디 출품하는 건 아니어도. 혹시 기회가 된다면 조그마한 책방을 만들어보고 싶어. 바쁜 맞벌이 부부 아이들 몇 모아 놓고 그림책도 같이 읽고, 숙제도 봐주고, 간식도 만들어 먹이면 좋을 것 같아."


"지금 정말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꿈꾸는 사람의 얼굴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언제나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는 엄마, 이연수씨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저의 개인 블로그 blog.naver.com/afterworkbooks 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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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을 전공하고 학원 강사로 일했다. 출근길에 읽은 잡지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잡지 만드는 출판사에 들어가 3년간 일했다. 월간지 편집, 강연 기획, 서점 운영, 공연영상 제작 및 출연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하다 번아웃으로 퇴사했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싫어증’을 앓고 있지만 글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아 읽고 쓰는 일은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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