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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율이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상황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신약개발 관련 뉴스도 그다지 희망적인 소식을 아직 전하고 있지 못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재발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TV에서는 전에는 전염병 관련 전문가들이 나와 사태의 전망과 대책을 논하더니 이제는 좀 더 다양하게 우리의 미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얼마 전 tvN에서는 전염병 관련 전문가는 물론 빅데이터 전문가와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사회 패러다임의 전환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이 중 한 과학자는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화두를 내놓으며 그 예로서 마윈 사장이 사스(SARS) 이후 온라인 시장 진출 성공신화를 일례로 든다.

필자는 그의 조언에 다소 당혹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빅데이터, 온라인 비즈니스의 강조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이전의 키워드였는데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하면서 같은 키워드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유행병의 경로를 예측하여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그것은 빅데이터와 잘 구축된 네트워크가 지진을 예측하고 대비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지진을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에서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이 신약 개발에 투입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그 결과도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 비즈니스, 온라인 수업, 온라인 회식, 온라인 공연 다 가능하고 좋은 얘기지만 설사 우리 모두가 온라인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행복해한들 그것이 현실 세계에서 유행하는 판데믹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현실 세계에서는 골방에 갇혀 있으면서 가상세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단테의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 시골의 별장으로 도피한 사람들이 2주간 사회적 격리를 위해 서로 해주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흑사병을 피해 모인 사람들이 2주간 돌아가며 하는 이야기가 오늘날 근대문학의 시작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격리된 예술가들이 가상세계에서 자발적으로 고난에 부딪힌 이웃들을 위한 릴레이 공연을 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자동차와 휴대전화, 인공지능, 바이오테크놀로지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다는 우리의 모습이 14세기의 단테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유발 하라리는 젊은 소장 학자답게 <호모 사피엔스(2011)>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가 미래의 문제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책의 발간이 10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학기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당장 답을 못 해주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온라인과 4차 산업혁명으로 살아가라는 답이 아니다. 당장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온라인에 의존해 <데카메론>의 주인공들처럼 살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문학적 또한 사회학적인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과학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해답을 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프라이드 치킨'처럼 우리가 마음대로 조리하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야생동물, 미생물, 동물을 포함한 자연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전환은 아마 몇 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기보다는 우리와 자연, 또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사고의 대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필자는 산업 문명의 맛을 본 모든 현대인이 그렇듯 이번에도 자연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정복해주기를 버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성공적으로 자연과학자들이 우리의 소망을 이뤄준다 해도 우리는 프라이드 치킨이 무한정 소비가 가능한 물건이 아니라 원래 생명체였음을 최소한 가끔은 기억해 줘야 할 것 같다. 프라이드 치킨을 먹으면서 생명의 경외까지 느낄 필요야 없지만, 현대인이 자연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무절제하며 현대 산업 문명 자체가 이 무절제함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인문학자로서의 막연한 생각이지만 프라이드 치킨이나 바이러스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respect)이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길이 아닐까 어쭙잖은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후에 중남미 연구소 웹진에 실릴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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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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