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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역대급 압승과 미래통합당의 궤멸적 참패라는 결과로 막을 내린 21대 총선에서 김부겸은 가장 안타까운 이름이 됐다. 남들은 종로와 광진, 동작 등에 관심을 쏟았지만 나는 온통 그가 출마한 대구 수성갑에만 눈길이 갔다.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박빙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과는 달리 무려 20%p가 넘는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 그것도 지역구를 옮겨와 출마한 야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적잖이 황망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선거 이튿날 대구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한 심정을 전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부겸은 민주당의 호들갑 때문에 떨어진 거예요."

호남 투표율과 유시민 때문이라고?
 
  4.15 총선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신매광장에서 수성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왼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4.15 총선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신매광장에서 수성갑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왼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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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이 내로라는 인재라는 걸 부인하는 대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사람은 좋은데 당을 잘못 선택해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며 한결같은 답변이 돌아온단다. 만약 그가 야당 소속이었다면, 몰표를 받아 당선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싫어서 야당 후보를 찍은 이들이 태반'일 거라고 했다. 선거 직전에 지역구를 옮겨온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당선시킨 민심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다. 여느 선거 때와는 달리 전국 평균보다 높은 투표율이 그 증거란다.

대구의 투표율은 여느 곳에 견줘 늘 낮았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식 결과가 이어지다 보니 투표장으로 이끄는 동인이 약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달랐고, 특히 그가 출마한 대구 수성갑은 전국 평균 투표율보다 거의 10%p 가까이 높았을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지인은 사전투표율이 역대급으로 높았던 데다가 선거날 오전 호남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투표율이 올라가자 보수 성향의 대구 민심이 결집한 것 같다고 짚었다. 그 와중에 유시민 작가의 '180석 발언'이 결정타였다고 단언했다. 선거 직전 며칠 동안 그 이야기만 나돌았다고.

호남의 높은 투표율과 유시민 작가의 발언 등을 대구에선 '민주당의 호들갑'으로 여겼다고 한다. 민주당과 대통령의 인기가 없다 보니, 뭘 해도 밉게만 보인다는 뜻이다. '능력 있고, 사람 좋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김부겸조차 가차 없이 낙선시킬 정도이니 더 말해서 무엇할까.

"광주도 민주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는데, 야당에 몰표를 주었다고 대구 사람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봐요. 피장파장이니까요."

광주의 민주당 지지와 대구의 통합당 지지가 같다고?

'피장파장'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질 뻔했다. 광주의 민주당 지지와 대구의 통합당 지지를 '동등 비교'하려는 태도가 황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 앞에서 스스로 대구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나름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40대 후반의 남성이다.

그는 광주의 민주당 독식은 문제 삼지 않고 대구만 비난하는 태도를 '이중잣대'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민주당 후보들에게 70%가 넘게 표를 몰아주는 행태를 보면 광주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민주당을 호남에 뿌리를 둔 지역정당이라는 인식이 강고한 셈이다.

수화기에다 대고 그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할 수는 없었다. 일일이 설명한다고 해도 그를 설득해낼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광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대구 사람 김부겸의 당선을 그토록 염원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대로 믿긴 어렵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광주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을 벽에 걸어둔 집이 많다고 믿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고 한다. 김일성 사진을 고이 모셔놓은 북한의 여염집과 같다는 거다. 심지어 김일성과 김대중이 같은 편이라고 버젓이 말하는 이들도 있단다.

요즘 젊은이들의 경우, 많이 달라졌다는 대구의 분위기를 말하려는 것이었지만 오십보백보로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광주와 대구의 투표 성향이 함께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통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전화로 말할 수 없었던 대답을 여기에 쓴다.

김대중의 후예들을 내친 곳이 바로 호남이다
 
 민생당 박지원 후보 '김원이 후보 규탄' 긴급기자회견
 지난 13일 열린 박지원 민생당 후보가 "김원이 민주당 후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모습.
ⓒ 박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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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가 말한 대구의 어르신들에게 답한다. 광주 사람들은 '김대중당'만 찍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편견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차라리 노무현과 문재인의 당일지언정 '김대중당'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른바 '동교동계'에 뿌리를 둔 정치인들은 지금 민주당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를 후광으로 삼은 정치인들은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 의원도,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최경환 의원도, 정치 신인에게 큰 표 차로 졌다. 자타공인 김대중의 후예들을 낙선시킨 곳이 바로 그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와 광주다.

과거 광주 사람들이 김대중에게 표를 몰아준 건, 당시 그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서다. 이번 선거에서 광주가 김대중의 후예들 대신 '문재인 키즈'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치인 김대중을 존경할지언정 그의 이름에 맹목적으로 표를 주진 않는다는 의미다.

광주는 과거 이른바 '노풍'의 근원지였고,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들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노무현과 문재인이 보여준 정치적 소신과 공약이 당대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호남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민생당을 철저히 외면한 것도 그래서다. 아무리 지명도 높은 중진 의원이라고 해도 얄팍한 지역 정서에 기댄 정치인들을 보란 듯 퇴출시키는 곳이 이곳 광주다. 그런데도 여전히 '김대중당' 운운하며 배척하는 대구의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광주가 통합당에 표를 주지 않는 이유

광주 사람들이 통합당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결코 '경상도당'이어서가 아니다. 사상 초유의 탄핵을 겪고도 반성하지 않고, 국정 운영에 발목만 잡을 뿐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아서다. 하긴, 찍고 싶어도 후보를 낸 지역구조차 몇 없었으니 싹쓸이했다고 나무랄 입장도 못 된다.

노무현과 문재인에게 그랬듯이, 광주 사람들은 항상 혁신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에게 기꺼이 투표한다. 역사를 경외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라면 언제든 손을 맞잡을 준비가 돼 있다. 이는 광주에서 통합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당분간 광주가 통합당에 표를 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대구 사람들이 민주당에 웬만해선 표를 주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이유가 있다. 그동안 이름은 숱하게 바뀌었지만, 광주는 통합당을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의 후신으로 여긴다.

최근에도 5.18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방해하는가 하면, 역사를 부정하고 수시로 막말까지 쏟아내고 있으니, 편견과 억측이라고 할 수도 없다. 5.18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는 광주 사람들이 사과는커녕 책임이 없다고 발뺌만 하는 전두환에게 투표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김대중을 애틋해 하면서도 광주 사람들이 그에 대해 크나큰 패착이었다면서 원망하는 게 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국민 화합을 이유로 전두환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과하지 않는 자를 미리 용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다.

전두환은 당시 수많은 광주 시민을 학살한 최종 책임자다. 대법원의 판결이 난 추징금조차 내지 않고 버티는 그를 단죄하기는커녕 원로로 대접하는 통합당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건 되레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폭력이다. 진정한 사과와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통합당에 5.18은 '원죄'일 수밖에 없다.

'영남-호남 지역주의'가 아니라 '대구경북의 고립'이다
 
 미래통합당 대구시당에 모인 후보들과 당원들이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대구경북 25개 전 선거구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발표되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지난 15일 미래통합당 대구시당에 모인 후보들과 당원들이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대구경북 25개 전 선거구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발표되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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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튿날이었던 지난 16일, 광주 시내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추모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합 행사는 못했지만, 대로변 교차로마다 시민들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글귀를 적은 피켓을 들었다. 이곳 광주가 안산이고, 기꺼이 유가족과 아픔을 영원히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다.

춘천에서 야당 후보자의 선거운동원이 세월호 추모 현수막을 훼손했다는 소식에 광주 사람들이 유독 격분한 것도 그래서다. 40년 전 5.18을 겪은 광주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정서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급속히 확산됐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도 이곳 광주였다. 

광주와 대구의 선거 결과를 두고 '피장파장'이라고 눙쳐선 곤란하다. 감히 단언하건대, 광주 사람들에게 대구는 비록 지금은 데면데면하지만 놀러가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이웃 동네다. 대구 시민들이여, 부디 민주당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과 비난을 거둬달라.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대부분의 언론이 영남과 호남으로 갈린 과거의 지역 구도로 퇴행했다고 총평했다. 화면에 우리나라 지도를 띄워놓고 선거구별 당선인의 정당 색깔을 입혔으니 그리 보일 수밖에.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지역 구도로의 회귀라는 언론의 해석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늘 그래왔듯, 그들은 갈등을 조장하고 여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왜곡조차 서슴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내게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총평하라고 하면,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당의 역대급 압승과 야당의 궤멸적 참패, 그리고 대구 경북의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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