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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역주행하고 있다는 영화 <감기(2013)>를 봤다. 줄거리는 이렇다. 감기인 줄 알았던 증상이 사실은 호흡기 감염과 빠른 전파력 그리고 치명적 치사율을 특징으로 하는 신종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당장 전국적 확산과 감염을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고 감염된 사람들을 격리한다. 그러나 치료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감염된 이들은 생명이 다하기도 전에 임의로 처리되어 죽음을 종용받는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지금의 상황과 닮아있다. 단지 참상이 닥친 곳이 영화처럼 대한민국의 어느 신도시가 아닐 뿐이다. 그렇기에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TO)로부터 자제를 권고받은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고수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겠다. 이제 최초 발원지로서 '중국발 입국자 및 해외방문자'에 대한 지침을 더하는 것을 넘어, 특정 타문화에 대한 혐오발화가 넘실대고 있다. 전지구적 시대에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경계를 넘나들며 함께 지내온 안팎의 이웃들에게 적의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위기는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혐오는 쉽게 전이된다 
 
 영화 < 감기 >는 치사율 100%에 이르는 감기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국가 재난 사태가 선포되고 도시를 폐쇄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영화 < 감기 >는 치사율 100%에 이르는 감기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국가 재난 사태가 선포되고 도시를 폐쇄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 아이러브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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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코로나19는 그동안 이주노동자 혹은 결혼이주민을 관용으로 대하자던 한국 다문화 정책이 은폐해온 '날것의 인종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감염은 '나-우리'로서 자아를 변질시킬 수 있는 존재, 즉 숙주로서 타자에 대한 공포를 극적으로 폭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전염병을 둘러싼 정보의 부족으로 공포가 확산되고, 이때 그 사회의 약한 고리가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이다. 몇 년 전 메르스 사태 당시, 지금은 시대적 용어가 된 '여성혐오(misogyny)'가 우리 사회에 증폭됐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을 때, 메르스 확산에 대한 불안의 징후가 여성 존재를 향한 조롱으로 전화(轉化)했다. 이 약한 고리들은 연결되어 있고, 혐오는 쉽게 전이(轉移)된다. 그럴수록 경계는 더욱 강박적으로 설정되고, 타자들은 계속 구성된다. 당시 여성을 향했던 혐오발화들은 특정 국가, 민족, 지역 등 더 많은 타자를 향해 확산되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달리 우리가 잘 대응하고 있다고 확신할수록, 주변 '오염' 지역이 확대된다고 믿을수록 이 배제의 목소리는 커진다. 

신자유주의 초국적 시대에 이미 전염병은 개별 국가 단위로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하선(下船)을 허락하지 않아 코로나19 확진자를 증가시킨 일본 크루즈선의 사례처럼, 일방적인 봉쇄가 초래하는 부정적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동아시아를 벗어나면 한국인 역시 인종적 범주로 먼저 인식될 뿐이다. 네덜란드 국영항공사 KLM이 기내에 '승무원 전용 화장실'이라는 안내문을 한글로만 써 붙여 한국인 승객에 대한 인종차별로 논란이 되었듯이 말이다. 이렇듯 명료해 보이는 한국인 역시 어떤 지점에서든 타자로 지목된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닫힌 안전' 그러나 희망은 결국 타자로부터  

그래서 다시 <감기>의 도입부를 떠올린다. 영화 속에서 변종 바이러스는 애초에 인간을 컨테이너에 감금하여 이동시킨 극한의 상황에서 창궐했다. 이는 지금도 역사적 이유로 내전이 발발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이민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당장 얼마 전 발생한 밀입국 냉동 컨테이너 집단사망 사건이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난민보트 전복사건 등 비극적 뉴스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영화는 '닫힌 안전'이 아닌 '열린 희망'을 그려낸다. 천신만고 끝에 컨테이너에서 살아남은 단 한 사람, '몽싸이'라는 외부의 낯선 존재로부터 모두를 살리는 항체가 발견된다.

한국에도 제주도에 입도한 예멘난민처럼 국경을 넘어온 타자들이 있다. 한국 사회의 대응은 국제적으로 약속한 환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난민 남성이 자국 여성의 안전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즉각적인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우려는 메르스 당시 부쩍 시야에 들어온 중동 지역을 진지하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편견에 기반해 반여성적 공간으로 전형화시키는 흐름이 거셌다. 그리고 이는 때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약한 고리들은 엮여있을 때, 홀로 끊어지지 않는다 
 
 영화 <감기>의 한 장면.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밀입국 노동자 ‘몽싸이’에게서 발견된 항체로 전염병을 치료하고 목숨을 구하게 된다.
 영화 <감기>의 한 장면.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밀입국 노동자 ‘몽싸이’에게서 발견된 항체로 전염병을 치료하고 목숨을 구하게 된다.
ⓒ 아이러브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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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性)과 더불어 인종, 지역, 민족, 국가, 계급, 계층, 신분, 세대, 연령 등 수많은 범주는 우리가 똑같은 방식으로 재난을 경험하게 하지 않는다. 차별은 하나씩, 차례대로 경험되지 않고 늘 함께 혹은 다르게 따로 체감된다. 

여성인 동시에 특정 지역인 또는 한국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동아시아 혹은 동양인 등으로 묶이는 복잡한 상황에 맥락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당장 우한에서 한국인을 철수시킬 때 국적이 다른 가족이나, 인간이 아닌 반려동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이 있었다. 또한 한국인이어도 증상이 있는 자는 감염지를 벗어날 수 없기에 그곳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런 까다로운 논점들이 삭제될 때, 한국 사회의 타자로 지목되어온 '여성' 역시 차별적 배제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은 단지 '생물학'적 명칭이 아니라 백인, 제국, 이성애에 대비되는 '유색인', 식민지, 비이성애에 속하는 타자와 연동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소수자와 어깨를 겯는 여성은 결국 혐오의 연쇄를 끊어내고, 배제의 사슬에서 벗어날 것이다. <감기>에서 낯선 존재에게 기꺼이 말을 건네고 빵을 나누던 여자아이 '미르'가 결국 항체를 나눠 받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약한 고리들은 엮여있을 때, 홀로 끊어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진희 님은 원광대 HK+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으며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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