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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우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대유행병이 번지는 동안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형태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 신종플루로 인해 1만9000명이 사망했을 때 당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었던 마거릿 첸이 남겼던 말이다. 무섭게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우리의 운은 어떨까. 우리에겐 예방 백신도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도 없다. 고작 1000여 개에 불과한 음압 병실, 130여 명의 역학조사관이 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준비해 온 우리의 의료체계 역시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비관에 빠지기에는 이르다. 정말 다행히도 코로나19는 비말 전염에 의존하는 바이러스다. 최대치의 비관적 상황을 가정한 에어로졸에 의한 전염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 같은 공기 중 전염은 지극히 제한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대부분의 감염 경로도 아직은 추적이 가능하다. 대구신천지교회와 청도대남병원, 이스라엘성지순례단, 부산온천교회 등 집단 감염이 일어난 경로에 대한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대유행을 막기 위한 좋은 패가 남아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전염병 위기 단계를 '심각' 단계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이제부터가 우리의 운을 시험하는 진짜 싸움의 시작인 셈이다.

연결

로버트 필 영국총리의 딸은 리젠트 가의 재봉사에게 값비싼 승마복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녀가 입은 승마복은 열병을 앓는 아이들을 가진 재봉사의 집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그 옷을 입기 전까지 균에 감염된 적이 없었던 그 숙녀는 우아한 승마복을 입은 후 며칠만에 사망했다. 사인은 재봉사의 딸과 같은 종류의 열병이었다. 사람들에게 미처 알려지지 않는 이런 비극이 뉴욕에서는 흔히 일어난다. - 모드 나딘, <뉴욕시 소비자 연맹 연례 보고서>

큰 바위 얼굴에 새겨진 대통령으로 유명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딸과 아내를 전염병으로 잃었다. 그의 아내는 '청결 여사'로 유명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흰 옷을 입고 지냈지만 외식으로 먹은 해산물에서 탈이 났다. 전염병은 계급 지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종과 종교도 초월한다. 군인, 운전기사, 호텔종업원, 선생님, 의사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교회신도, 직장동료, 연인, 가족이 이어 감염자가 되었다.

이른 바 '질병 사슬'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사람들의 관계망을 통해 급속하게 그 세력을 넓혀 간다. 그러기에 전염병에 관한 한 공동체와 무관한 혼자만의 안전 추구는 가능하지 않다. 진실로 평등하게 진심으로 연대하는 것, 이것만이 질병과 맞서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른바 '질병의 자유주의'에 맞서는 '질병의 사회주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낙인

미국 사람에게 AIDS는 아프리카의 질병이고, 유럽 사람에게 AIDS는 미국의 질병이다. - 수잔 손텍, <은유로서의 질병>

연대와 협력을 가로막는 것이 낙인이다. '우한 폐렴', '대구 코로나' 따위의 명칭을 쓰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부정한 죄의 흔적인 양 질병을 수치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들, 질병이란 게 늘 남의 것에 속한 것인 양 우리와 남을 가르고 나누고 단절하는 사고들. 어처구니 없게 방치된 우한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의 참극을 빚어낸 사고들, 그 낙인과 수치 그리고 방치가 결국엔 돌고돌아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날아든다.

신천지교회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질병을 얻은 게 왜 문제가 되는가.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대규모 감염 후 정부의 검역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그 밖의 다른 게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우한발 폐렴이나 대구발 코로나가 안 된다면 신천지발 바이러스도 곤란한 표현인 것이다. 

해이

영국 북부 피크 주 자치구의 외곽에 위치한 더비셔의 고원지대에 '에이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에 역병이 돌자 목사와 교구민은 마을을 둘러 방역선을 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영웅적인 결정을 내렸다. 증상이 없다 해도 주민들은 마을에 남아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기다렸다. 전염병을 지역 내에 묶어 이웃 마을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용감한 희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인근 지역 주민이 교구 경계에 가져다 놓는 음식을 먹으며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바로 옆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며칠에 한 명이었지만 전염병의 유행이 극에 달하자 목사는 매일 몇 명씩 장례를 치러야 했다. 역병이 지속된 15개월 후 에이엄은 흡사 유령 마을처럼 되고 말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전염병은 다른 마을로 퍼지지 않았다. - 수잔 스콧, 크리스토퍼 던컨, <흑사병의 귀환>

전염병은 언제나 희생과 이기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숱한 미담과 도덕적 방종에 관한 일화를 낳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격리 수칙을 어기는 것, 학원 휴원 권고를 거부하는 것, 정치나 종교 집회를 강행하는 것, 모두 도덕적 해이가 빚어낸 자유방임적 행위다. 이동의 자유, 교육이나 영업의 권리, 집회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의 인권 의식은 얼마나 편협한가. 자신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와 충돌함을 눈감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이 충돌함을 모른 체 하는 사고, 사태의 한 면만을 극단화하는 생각이다.

법률의 제정 유무를 따지는 주장은 어떠한가. '그것을 금하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못된 짓을 해도 괜찮다'는 식의 사고, 마스크를 사재기하고 환자 코스프레를 벌이고 선정적 유튜브로 재미를 보고자 하는 생각들, 묵묵히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지켜내는 평범한 영웅들의 힘을 빼는 고약한 행태들.

단 하나의 도덕적 해이가 수천의 영웅적 절제를 무너뜨린다. 연대에 균열을 만들고 좌절과 불신을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시민들은 소리를 모으는 것이다. 방종과 해이와 탐욕에 대해 철퇴를 가하라고, 질병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믿음


김강립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책브리핑에서 자가격리상태에서 치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자가격리를 통해 확진환자를 치료할 계획은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신재우 기자(2월 22일), '경증환자도 입원치료 원칙, 자가격리치료 계획 없다'

확진자가 얼마나 발생하든 우리 의료체계 안에서 치료해야 한다. 증상이 의심스러우면 검사 받고 경증환자면 경증시설에, 중증환자면 중증시설에 입원해 치료 받아야 한다. 일반 환자와 섞이지 않고 선별된 의료시설에서 이런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보건당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칠면조가 한 마리 있다. 주인이 매일 먹이를 가져다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친구인 인간이라는 종이 순전히 나를 위해서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삶의 보편적 법칙이라는 칠면조의 믿음은 확고해진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앞둔 어느 수요일 오후 칠면조에게는 예기하지 않은 일이 닥친다. 주인이 축제의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칠면조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칠면조는 믿음의 수정을 할 겨를도 없이 주인에 의해 목이 비틀리고 만다. - 버트란드 러셀, <철학의 문제들>

현명한 내기꾼은 판돈을 양쪽에 건다. 가능성이 낮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겸손하기에 그런 내기꾼은 언제나 패자가 되지 않는다. '하나의 실책'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보건당국이 이 같은 신중함을 유지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무증상 감염에 대한 이야기다. 중국에 이어 대만 일본까지 무증상 감염 의심 사례가 속출했는데, 이를 경증 감염일 거라고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고집이 기성 의학적 담론에 대한 집착, 다시 말해 지식 권력, 의학 권력 발로의 결과라면 지나친 비약이고 가혹한 비판일까.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의학의 바이러스 담론은 어차피 귀납적 추론에 의한 결과물이다. 실험실의 연구는 확률과 통계에 따른 수치일 뿐이고 임상적 연구는 사례의 관찰에 따른 일반화일 뿐이다. 언제든 예외의 사례가 나타나면 수정되어야 할 잠정적 가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예외적 사례를 통한 기성 담론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의학의 발전을 끌어내는 가장 큰 추동력이다.

루이 파스퇴르나 로베르트 코흐 같은 100년 전의 감염학의 선구자들이 기존의 의학적 담론에 도전하면서 세균학이 정립되고 바이러스학으로 발전되었던 사례가 그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의심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여행력과 접촉력 증상의 연관성 등을 따지며 진단이 거부되는 답답함이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계획

우리는 지금 '전염병의 대유행기 사이(Interpandemic)' 시대를 살고 있다. - WHO 그리고 코흐 연구소

코로나19 사태 전개 한 달.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정치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감염의 위험 속에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 24시간이 모자라 분초를 나눠 뛰는 보건당국, 스스로 미사와 예배를 막았던 종교인들, 하루하루 경제적 시름을 견뎌내고 있는 자영업자들, 질병과 싸우고 있는 국민들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전염병 대처 능력은 국가의 질병에 대한 준비 총량에 비례한다. 단순한 의료기술이 아니라 예산 전염병지정병원 음압병상 역학조사관 등의 의료인프라, 매뉴얼 법령 등의 공중보건관리체계, 무엇보다 국민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과 성숙한 대처능력 등에 비례한다. 우리가 이번에 부족한 게 있었다면, 그것은 정부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회의 책임이고 국민의 책임이란 뜻이다. 스토브리그에서 충분한 전력보강을 이뤄내지 못하고 전지훈련조차 부실하게 진행했으면서 경기를 못했다고 감독 탓만 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4, 5년 주기로 다가오고 있는 전염병, 치명률도 높고 전염률도 높은 새로운 질병이 닥쳐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면한 코로나19 사태 대처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정부, 제대로 된 정치권이라면 그런 정부를 대신해 미래에 다가올 대재앙에 대한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

검역법 3법만이 아니라 독일에서처럼 '국가대유행병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한다. 전염병은 반드시 다시 오고, 이 위중한 상황에 정쟁을 일삼는 세력에겐 심판이 있을 것임을, 여야 정치권 모두 명심해야 한다.

태그:#코로나19, #대유행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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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이란 학생 김민혁군과 김민혁군의 아버지 난민 인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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