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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십 평생 자식들 밥 지어 먹이는 일밖에 몰랐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애당초 몰랐다. 어느날 엄마가 "그때 내가 어땠는 줄 아니?"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엄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뒤늦게 알게 된, 엄마의 저렸던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편집자말]
식탁 위 수북하게 쌓인 약봉지들 틈으로 자그마한 금속성 물체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무엇일까. 약봉지를 들춰보니 엄마의 휴대폰이었다. '아, 엄마의 휴대폰이 너무 낡았네' 하며 살펴보다 그만 코끝이 찡해졌다. 금방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 전화기 뒷면에 적힌 글자들이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출 때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의정부시 장암동 ***아파트 *동 ***호

엄마의 집 주소다. 3년 전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처음 엄마 휴대폰 뒷면에 주소를 적어 붙여 드렸다. 반년쯤 지나 새로 교체한 휴대폰에도 '주소 종이'를 붙여드렸는데, 그것이 여태껏 붙어 있는 것이다. 종이가 떨어졌는지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테이프가 덧대어져 있었다. 
   
엄마의 휴대폰  엄마의 휴대폰 뒷면에는 주소가 적힌 종이가 붙여져 있다.
▲ 엄마의 휴대폰  엄마의 휴대폰 뒷면에는 주소가 적힌 종이가 붙여져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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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파트로 이사한 다음 날이었다. 

"엄마, 저녁 드셨어?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아직. 이제 들어가는 중이야." 

그 시간이면 엄마는 당연히 집에서 저녁을 드신 뒤 쉬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밖이라니.  

"어딘데?" 
"여기 아파트가 다 똑같이 생겨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수화기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는 분명 지치고 겁먹은 목소리였다. 엄마가 길을 잃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혼자 헤매지 말고 사람들한테 물어봐."
"아냐. 이제 어딘지 알 것 같아. 이대로 쭉 가면 될 것 같아." 
"알았어, 그럼 잘 찾아와."

엄마네 집으로 가는 중에 또 전화를 걸었다. 금방 간다는 엄마는 여전히 헤매는 중이었다.

"집 찾았다며? 엄마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 딴 데로 가지 말고" 
"아니야. 이젠 확실히 알아. 갈 수 있어. 거의 다 왔어."

집에 도착하니 다행히 엄마는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도 놀랐는지 조금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늘 다니던 체험관에 다녀오는 길이었단다. 엄마 생각에는 이웃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면 훨씬 빠를 것 같아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전혀 다른 곳이 나오더란다. 아침에 집을 나가면서 머릿속으로 수십 번 외우고 눈으로 익혔던 길은 안 나오고 점점 이상한 곳으로 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헤맨 건데?"
"한 시간 정도 헤맨 것 같아. 분명 그리 가면 될 것 같았는데, 영 다른 데가 나오는 거야, 글쎄."
"사람들한테 물어보지. 다리도 안 좋은데 그렇게 한참 동안 헤맸어?"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물어보면 금방인 길을 한 시간이나 헤맸다니... 엄마가 너무 '미련 맞아' 보였고 속이 상했다.

"분명 그리로 가면 될 것 같았는데…" 

엄마는 꼭 아이가 핑계를 대는 것처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맹하니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속상하다는 이유로 엄마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가뜩이나 주눅 들어 있는 엄마에게 상처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괜찮아. 첫날이라 그래. 나도 아직 여기가 낯설어." 엄마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졌다. 
 
어쩌면 정말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데 엄마는 며칠 후에도 또 길을 헤맸다. 그래도 이번에는 금방 집을 찾았노라며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이번에도 괜찮지 않은 것은 나였다. 엄마가 집을 못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꾸 길을 잃다가 아주 집을 못 찾아 올까봐 겁이 났다. 이름과 주소를 새긴 목걸이를 걸어드려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생각해낸 것이 주소를 적은 종이를 휴대폰에 붙여 드리는 것이었다.

전화기를 보니 그때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행히 엄마는 그 후로는 한 번도 길을 잃어 버리지 않았고, 이제는 주소도 잘 외운다. 그런데도 종이를 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오래된 휴대폰  엄마의 휴대폰 뒷면에는 주소종이가 붙여져 있다.
▲ 엄마의 오래된 휴대폰  엄마의 휴대폰 뒷면에는 주소종이가 붙여져 있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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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지나친 호들갑이었다. 새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주변 지리를 익히지 못한 것뿐인데 말이다. 문득 그때 엄마는 길을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엄마는 아파트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캐슬이니 래미안이니 푸르지오니 하는 단어들이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3년 전 엄마는 길을 물어보고 싶어도, 뭐라고 물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 낯선 이름들 앞에서 주눅이 든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 이모들과의 모임에 다녀온 엄마가 "너희 셋째 이모는 딸들이 연신 휴대폰으로 손주들 사진도 보내주고, 손주들하고 영상통화 하느라고 아주 바빠" 하길래 "엄마도 스마트폰으로 바꿔줄까?" 했더니 대뜸 싫단다.

"전화 걸고 받을 수 있으면 되지, 멀쩡한 전화를 왜 바꿔?" 
"다른 엄마들처럼 사진도 찍어서 우리한테 보내주고, 우리랑 문자도 주고받으면 좋잖아."
"싫다. 내가 쓰기 복잡한 거 사서 왜 고생을 하냐?"

엄마는 캐슬이니 푸르지오니 하는 단어들을 아무리 따라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마트폰 역시 절대로 익힐 수 없는 '넘사벽'으로 규정해 놓은 듯했다.

"맞아, 엄마. 별로 쓸데도 없는데, 복잡한 거 하지 마. 근데 엄마, 휴대폰에 그 주소 적은 종이는 왜 안 떼어 버려? 이제 주소도 다 외우잖아."
"다 외우지. 근데 누가 물어보거나 택시 타면 머릿속에서 생각은 나는데 얼른 말이 안 나와. 그럴 땐 그냥 보여주면 되니까."

지난날 엄마가 제대로 아파트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고 다그치고, 스마트폰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강변했던 일들이 죄송했다. 동시에 엄마가 구닥다리 휴대폰에서 주소가 적힌 종이를 떼어내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엄마는 정말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가만 보니 테이프 끝자리가 조금 떨어져 나갔다. 다시 깨끗하게 적어서 붙여 드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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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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