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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1시간쯤 달렸을 무렵 앞차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50여m 앞 검문소에선 경찰과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돌려세우고 있었다. 우한이 고향인 린씨가 휴대전화 메신저로 친구 기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공사 중인 도로를 포함해 비포장도로를 달렸지만 세 차례나 막다른 길에서 차를 돌렸다. 지도에 없는 고가(高架) 밑 도로에 들어간 끝에 기자가 탄 차는 검문소를 우회하는 데 성공했다. 차량 수십 대가 기자가 탄 택시와 함께 우한을 빠져나왔다.

'5.18 광주'를 빠져나오던 영화 <택시운전사> 속 송강호라도 상상했던 걸까. 28일자 <조선일보> 2면에 실린 <지도에도 없는 샛길로 우한 탈출… 우리 차 뒤로 수십대가 따라왔다>는 제목의 '박수찬 특파원 우한 탈출기'는 그 어떤 정보도, 공익성도, 공감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22일 아침 우한에 도착, 23일 밤 허겁지겁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는 중년 남자 기자의 허둥지둥하는 모습만 연상될 뿐이었다. 거기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중국인 택시기사를 대동하곤, 검문소를 피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겁먹은 외국인의 모습도 겹쳐졌다.

제대로 된 취재를 한 걸까. 고작 하루 반 체류하다 이런 '탈출 아닌 탈출기'를 작성할 거라면, 가히 민폐 수준 아닌가. 보도 이후 소셜 미디어에서는 해당 기자와 매체에 대한 비난이 폭주했다. "기자 본인이 감염전파자"라거나 "<조선일보> 사옥을 폐쇄하고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라며 기자의 민폐와 데스킹 자체를 비판하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이날 <조선일보>의 1면은 <5일간 돌아다닌 2명… 방역 뚫렸다>이었고, '박수찬 특파원 우한 탈출기'는 중국과 한국 정부를 쌍으로 비판하는 병풍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공포 조장... 의문스러운 <중앙>의 단독
 
 29일자 조선일보 1면 보도
 29일자 조선일보 1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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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8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를 찾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대응 상황을 보고받고 "선제적 조치가 조금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르게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 것을 당부드린다"(26일 대국민 메시지), "우한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전수조사하라"(27일 청와대 참모 회의) 등 갈수록 대응 수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네 번째 확진자가 나오며 정부 대응을 향한 우려·비판이 커지는 상황을 의식한다는 관측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두 번째 확진 판정을 받은 남성 환자가 치료받는 곳이다.

다음날인 29일, <조선일보> 3면에 실린 위 기사의 제목은 <과도한 불안 갖지말라 했던 文대통령 "과하다 할 정도로 대응하라">였다. 지난 27일 방역당국에 "선제적 조치"를 지시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적극 대응에 나선 문 대통령이 마치 이틀 만에 대응 기조를 선회한 듯한 논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 불안을 줄이고자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전한 당부와 청와대 참모들이나 방역당국에 내린 지시와 조치를 교묘하게 뒤섞어버린 비뚤어진 '편집의 묘'에 가까웠다. 공교롭게도, 이날 <조선일보>의 1면 기사는 <靑·총리실·복지부, 컨트롤타워 대체 어딥니까>였다.

해당 기사는 1339(보건복지부 콜센터) 불통, 전수 조사 실효성, 정부와 지자체 4차 확진자 제각각 발표 등의 사례를 들며 방역 당국의 실책이나 대응 미숙을 지적했다. 따끔한 질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몇몇 사례를 두고 "콘트롤 타워" 운운하는 것은 전날 "방역 뚫렸다"던 침소봉대와 엇비슷해 보였다.

일부 언론의 이른바 '공포와 혐오 조장'은 대체로 '늑장 대응'이나 '중국인 입국 금지 고려' 등 보수야당의 정부 비판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한 보수야당의 검증되지 않았거나 과도한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식 말이다.

<늑장 대응이 우한 폐렴 사태 키운다>던 28일 <중앙일보> 사설도 같은 맥락이었다. 29일 이 신문은 <전세기도 마스크 지원도 일본보다 한발 늦은 정부>라는 현장칼럼에서 일본과 비교해 이틀 늦은 한국 정부의 전세기 급파와 마스크 지원을 '늑장 대응'이라 꼬집기도 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날 <'전세기 철수' 우한 교민, 2주간 천안 2곳에 격리한다>는 단독보도를 한 <중앙일보>는 이튿날인 29일 <천안 반발에 밀렸다... '우한 전세기' 아산‧진천에 격리수용>이라는 북치고 장구치는 단독보도를 이어갔다.

전날 정부 발표보다 먼저 단독보도로 천안 지역을 특정하자 즉각 천안 주민들의 반발이 일었고, 정부가 이를 감안해 우한 교민 수용지를 재검토 후 천안에서 아산‧진천으로 변경한 셈이 됐다. 중앙의 '단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누구에게 득이 됐는지, 반대로 지역주민들의 공포를 키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언론이 키운 중국인 혐오
 
중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유행에도 노상에 진열한 채 비위생적으로 판매하는 음식이 여전했으며 바닥에 침을 뱉는 행인들도 많았다. 약국에서 마스크는 품절 사태를 겪고 있지만, 정작 차이나타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드물었다. 이들이 사재기한 마스크는 대부분 중국 현지로 넘어가 재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헤럴드경제>의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 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란 르포 기사 중 일부다. 제목부터 수상한 이 대림동 차이나타운 순례기는 보도 직후 대표적인 '중국인 혐오' 기사란 비판이 일었다.

이를 두고 숙명여대 법학과 홍성수 교수는 해당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해럴드경제의 기사는 중국인 혐오에 사실상 편승하고 있다. 가래침 뱉고 마스크 착용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어느 유흥가나 시장에 가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며 "오히려 여러 댓글들은 '이게 대림동 문제냐고?'고 반문하고 있다, 댓글 다는 네티즌들의 시민의식 수준이 언론보다 높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29일 56만을 돌파한 '중국인 입국 금지' 청와대 청원자들을 등에 업은 기사인지, 이런 시각의 기사가 쌓여서 해당 청원이 놀랄 만한 속도와 청원 수를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씁쓸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같은 날 <한겨레>는 <"신종 코로나가 우리 탓인가?" 혐오에 숨죽이는 대림동>이란 기사를 통해 "온라인으로 확산하는 중국 동포 차별"을 다뤘다. 같은 장소, 정반대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기사였다.

이렇듯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둘러싼 일부 언론의 무리한 불안 조장과 중국인 혐오 보도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중이다. 그중 일부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다.

설 연휴 막바지이던 27일, 일부 언론은 4번째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급속도로 증가하던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청와대 청원 관련 기사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이렇게 해당 청원을 포함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 쏟아지는 기사량 자체도 불안감이나 혐오를 증폭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소셜미디어로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도 혐오적 시각이 드러나기도 했다.

SBS 페이스북 페이지가 대표적이다. 27일 오후 SBS 공식 페이스북은 <연합뉴스>의 관련 기사를 재배포하며 "미세먼지에 이제 코로나까지 수출하는 중국"이란 문구를 달았고, 즉각 비판이 일자 삭제 조치했다.

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해명은 없었다. 다만 해당 문구를 게재한 SBS 페이스북 담당자는 비판 댓글을 단 누리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자칫 편견을 부추길 수 있는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라며 "사안을 비판적으로 봤어야 하는데, 오히려 기사를 잘못된 방식으로 전달했다. 언론인이 중심을 잡고 사안을 바라봐야하는데, 돌아보니 오히려 잘못된 방식으로 사안을 전달했다"라고 사과했다.

'언론의 대활약'이 불러온 효과
 
 헤럴드 경제의 기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헤럴드 경제의 기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 헤럴드경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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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안에 대한 비판적 관점, 언론인으로서의 중심 잡기, 편견을 부추길 수 있는 표현 지양. SBS 페이스북 담당자의 해명에 이미 답은 나와 있다. 평소 견지하고 있는, 머리로 인식하는 관점과 매뉴얼을 실천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언론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도 양태는 그런 관점이 실종된 듯 보였고,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 조장, 중국인 혐오 효과가 벌써 나타나는 중이다.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주장해온 한국당은 29일 관련 내용이 포함된 '감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배민라이더스지회는 '중국인 밀집 지역 배달 금지'를 요청했고, 서울의 어느 식당은 '중국인 출입 금지'를 공식화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민적 불안을 부추긴 것은 과연 정부의 '늑장 대응'인가, 공포와 혐오를 조장한 언론인가. 그리고 이러한 경쟁적인, 그러나 국익에 과연 도움이 될지 의아한 보도 행태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었나. 이를 두고 KBS라디오 <최경영의 경제쇼>의 진행자인 KBS 최경영 기자는 29일 아래와 같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굳이 검찰발 보도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난해 여름 일본이 무역 도발을 감행했을 때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 수산물도 안전하다고 보도할 때도. 2년 전 최저임금 보도를 미친 듯 쏟아 놓을 때도. 한국은 베네수엘라 된다 타령하며 망한다 금 사라 달러 사라 부채질 할 때도.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도에서까지. 이들이 추구하는 건 국민의 안위, 국가의 이익, 균형된 시각, 공정한 보도, 진실의 추구. 이따위 것들이 전혀 아니었다. 이 사람들은 그냥 진짜 안과 밖이 뚜렷한. 매우 노골적인 재벌 광고주 정파적 사익집단일 뿐이다. 명확한 패턴이 있고, 명확히 의도가 보인다.

28일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한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 국민들 정말 착하고 잘하시거든요, 메르스 때 사실 국민들이 다 이겨냈다"라며 "저는 감염병의 전파에 있어서 우리 시민들의 시민의식을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홍성수 교수의 말마따나, 일련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보도는 일부 혹은 대다수 언론보다 높아진 시민의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지도 모르겠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국내에 확진자가 발생해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위기단계를 '경계'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국내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발생한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를 오가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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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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