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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을 권리>의 저자 데이비드 프레인(David Frayne)은 현대 사회에서 노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자아를 대체할 만큼 압도적이고 절대적이며 윤리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은 '의식주 같은 물질적 필요를 채우는 핵심통로'이자 '소비주의가 제공하는 상업적 유희이자 도피처'로 기능한다. 노동자는 일함으로써 사회에서 발생되는 소득을 분배받는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여,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제32조). 뿐만 아니라 근로의 의무도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법률로 정한다. 헌법의 위임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졌다.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법률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근로자는 국적과 체류자격을 불문한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그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였다면 사업주는 근로기준법과 관련 규정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체불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지 못한다.

이주민센터친구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최근 난민신청자들이 늘었다. 난민인정절차를 물어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난민 신청 후 6개월이 지나도 심사가 계속되고 있었고, 따라서 생계 유지를 위해 허용되는 취업활동허가를 받아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친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보호 장비 없이 고기를 절단하다가 손가락을 다쳤고, 어떤 이는 무거운 짐을 하루에 12시간씩 맨몸으로 나르다가 허리가 내려앉았다. 자기 돈으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기도 하고, 동료들이 데려다 주기도 한다. 어떤 사업주들은 공상 처리를 하자고 하고, 어떤 사업주들은 말없이 외면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 되었으니 그냥 나가라고 한다.

근로조건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대부분의 경우 난민신청자를 고용한 사업주들은 취업활동허가기간에 상당한 기간 만큼만을 근로계약서에 기재한다. 3개월, 6개월 정도의 근로계약기간을 기재한 근로계약서를 출입국 사무소에 가져가면 취업활동허가를 연장하여 준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근로기간이 3개월, 6개월인 단기간근로자에 불과한 것일까? 약 1년 가까이 계약서를 매번 새로 쓰며 똑같은 사업장에서 똑같은 업무에 종사한 경우에도? 사고가 터지지 않았다면 계속 일했을 것이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도?

산업재해 발생으로 휴업한 기간 동안 해고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산재 발생일 이후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특별히 해고의 서면통지도 하지 않는다(이제 일을 못하니 나가! 라고 하는 말은 다들 들었다고 한다). 산재 신청을 근로자를 대신해 해주겠다고 하는 사용자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이들은 일하다가 다치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그것으로 끝, 이라는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도 여러 맹점이 있다. 명백히 근무 중 사고로 인한 산재여도 요양급여신청의 승인 전까지 1~2주가 걸리고, 그 전까지 병원비를 환자 스스로 부담해야 해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경우 병원비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은행 대출도 어렵고, 몇 안되는 주변 지인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 손가락 접합 수술을 못하게 될까봐 전전긍긍한 사례도 있었다.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의료비지원사업은 산재 사건의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추간판탈출증 소견의 경우 산재 승인은 더욱 어렵다. 근무 형태가 누가 보아도 '금세 허리가 나갈 것 같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 기간동안의 치료비 부담은 고스란히 피해자에게 지워진다.

근로기준법의 규정 하나 하나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들이 앞으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게끔 어렵게 만들어낸 규칙이다. 긱 이코노미의 시대에 수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생겨나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편입되는 외에도, 전통적인 근로 형태에서조차 신분을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일할 권리가, 근로조건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진혜 이주민센터친구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이주민센터친구, #이주노동, #산업재해,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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