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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소승불교, 대승불교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뭔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이다. 물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서 양곤 시내에 이슬람 모스크도 있고, 성당도 있다. 하지만 미얀마 국민의 86%가 불교도일 만큼 절대다수가 불교를 믿고 있기에 불교 국가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지 다수가 불교도여서 불교국가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불교도는 '2018 한국의 종교현황' 기준 15.53%로 19.73%의 개신교에 이어 2위이지만, 일상적으로 예불을 드리고, 수행에 정진하는 사람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반면 미얀마인들은 집 가까운 파고다에 오다가다 들러 기도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잠시 출가를 하기도 하고, 출가의 수행 경력이 있어야 취업, 결혼 등에 유리한 경우가 많을 정도로 삶 속에 불교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한때 '불교식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할 정도였으니 불교가 미얀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대형 와불이 있는 차욱탓지 파고다 등 양곤 시내 곳곳에 파고다가 있다.
 대형 와불이 있는 차욱탓지 파고다 등 양곤 시내 곳곳에 파고다가 있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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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불교는 경전 공부를 중요시하는 '교학'이고, 태국 불교는 계율을 중요시하는 '율장'인데 비해 미얀마는 '수행'을 가장 중요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 다른 불교 국가에 비해 '선원'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학교에서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의 불교를 남방불교 또는 소승불교라고 배웠다. 반면 한중일 삼국의 불교를 북방불교 또는 대승불교라고 칭해왔다. 남방불교, 북방불교야 지역에 따른 구분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소승불교, 대승불교라는 명칭은 차별적인 성격이 있어서 좋지 않다는 문제제기를 미얀마에서 처음 접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한때 영화관, 버스요금, 목욕탕 요금 표시할 때 대인/소인 구분해서 썼던 적이 있다. 보통 어른을 '대인'이라 하고, 어린이를 '소인'으로 썼다. 그런데 '대인'이라는 말은 '말과 행실이 바르고 점잖으며 덕이 높은 사람'으로 군자를 뜻하기도 한다. 반면 '소인'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던 말'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인/소인 대신에 어른/어린이로 바꿔 써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지금은 많이 개선을 한 상황이다.

소승불교라는 말 역시 대승불교 입장에서 낮춰 부르는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대승'은 '깨달음을 향해 가는 커다란 수레'라는 뜻인데 비해 '소승'은 다른 중생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작은 수레'라는 것이다.

게다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소승불교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미얀마 불교는 무엇인가? '테라와다 불교' 즉 '상좌부 불교'라고 한다. '테라'는 상좌 즉 장로라는 의미이며, '와다'는 가르치다는 뜻이다. '테라와다'는 결국 '장로들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이런 말이 나온 까닭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이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한 경전을 만들고, 그 후 그 경전을 지키려고 노력한 초기 불교가 바로 테라와다 불교이다.

그런데 그러한 태도가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며 대중부라는 종파가 만들어졌고, 그 대중부는 18개의 종파로 분열했는데 이들을 '부파 불교'라고 칭한다. 다시 그 후 이 '부파 불교'를 '소승 불교'라고 비판하며 생겨난 것이 한국에 널리 퍼져있는 '대승 불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첫재, 대승불교가 석가모니를 신격화해서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면, 상가좌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완벽한 스승으로서 공경할 뿐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상좌부 불교는 깨달음을 얻어 윤회마저 끊어버린 '아라한'을 목표로 삼는 반면, 대승불교는 사람들 모두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함께 수행하는 '보살'을 중요시 여긴다. 

셋째 상좌부 불교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개인적으로 수행에 전력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반면, 대승불교는 부처를 향한 믿음과 자비의 실천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얀마 불교는 상좌부 불교, 또는 초기 불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소승 불교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종교가 결국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를 두고 신인가? 인간인가? 논쟁에 따라 입장이 나뉜다. 또 구원이 예정되어 있는지?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되는지에 따라 종단이 나뉘기도 한다.

초기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시대 상황에 따라 바꿔야 하는 것인지? 그러한 고민들은 결국 불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현대화된 사회 속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급속히 후퇴하고 있다. 과학의 시대에 종교는 구닥다리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무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란 번호판은 불교 사원에 소속된 스님들의 차량 번호판이다.
 노란 번호판은 불교 사원에 소속된 스님들의 차량 번호판이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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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얀마인들의 삶에는 종교가 생활 곳곳에 뿌리박고 있다. 스님들을 존경해서 스님들 차량은 번호판도 달라서 쉽게 식별할 수 있게 되어 있기도 하다. 또 탁발을 통해서 재가자들이 수행자들에게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믿어 마을마다 순번을 정해서 기꺼이 자기의 것을 내어놓고 있다. 

이러한 불교 신앙 덕분에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아 범죄율이 낮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욕망을 부채질하여 성장 가도를 달려야 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불교 신앙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미얀마인들은 파고다를 찾아 예불을 드리고, 스님들께 공양을 하는 등 일상에서 불교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얀마인들은 파고다를 찾아 예불을 드리고, 스님들께 공양을 하는 등 일상에서 불교문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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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나눔과 사랑 정신이 '돈을 버는 것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기복 신앙과 만나 자본주의 성장 신화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처럼 현대화를 앞둔 미얀마인들에게 불교는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지? 미얀마 불교의 대응도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미얀마, #양곤, #초기불교, #소승불교, #상좌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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