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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읽는 고전'은 30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 독서인이 뒤늦게 문학 고전을 접하며 느낀 재미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7쪽)

소설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눈부신 설국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가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다른 세상으로 흘러 들어온 듯하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마을의 풍경에 눈앞이 환해지고 코끝이 시리다.

내가 사는 경남 마산에서는 겨울이라고 해도 좀처럼 눈 구경을 하기 힘들지만, 전에 살던 곳에서는 겨울에 심심치 않게 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 밖 세상은 하얗고 눈이 부셨다. 하얀 눈 바닥에 발자국을 찍으며 학교를 가고, 출근을 하는 길에서 나는 개구쟁이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눈 내리는 저녁엔 괜히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친구들과 삼삼오오 술집에 들러 뜨거운 어묵탕에 맑은 술을 마시곤 했다. 뿌옇게 김이 서린 창 밖으로는 하얀 눈송이가 풀풀 나리고 하얀 밤의 밑바닥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찍으며 휘영휘영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소소한 추억들을 만들며 보낸 겨울은 금방 지나갔다.

눈이 내리지 않는 이곳의 겨울은 길고 심심하다. 창 밖은 매일 똑같은 회색이고, 흰 눈옷 한 번 걸쳐보지 못한 앙상한 나무들은 춥고 쓸쓸해 보인다. 아쉬운 대로 눈 오는 겨울 풍경을 그린 소설을 찾아 읽어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소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그만큼 허무가 짙은 소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민음사(2002)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민음사(2002)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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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설국>에는 줄거리라고 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 특별한 사건 사고도 없고, 인물 간의 갈등도 없다. <설국>은 풍경을 한 줄 한 줄 글로 그려낸, 그림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듯 읽어야 이 소설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소설의 첫 부분, 기차 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과 유리창에 비친 요코의 모습이 겹쳐지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설의 제목은 <설국>이지만 소설 속에는 눈 쌓인 겨울뿐만 아니라, 단풍이 든 가을, 겨울이 지나 초록이 올라오는 봄의 모습도 겨울 풍경 못지않게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처마 끝에는 억새로 만든 발이 쳐져 있다. 제방 위에 참억새를 심은 울타리가 있었다. 참억새는 연노랑 꽃이 한창이었다. 갸름한 이파리가 한 가닥씩 분수처럼 아름답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길가 양지 쪽에서 멍석을 깔고 팥을 터는 이는 요코였다. 마른 콩깍지에서 팥이 작은 빛 알갱이처럼 튀어 올랐다. (94쪽)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은 작고 허무하다. 제각기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과 다르게 인간의 삶은 매정하게도 단 한 번뿐이니 허무할 수밖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의 소설 속에서 자연과 인간을 그토록 아름답게 그리면서도 그 밑바닥에 허무를 짙게 깔아놓은 까닭은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두 살 때 아버지가, 세 살 때 어머니가 폐렴으로 돌아가시고, 일곱 살 때는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후에는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는 밤이 되어도 집에 불을 켜지 않았다고 한다. 상실감과 고독, 끝 모를 슬픔만이 가득한 캄캄한 방에서 눈먼 할아버지 곁에 앉아, 열두세 살의 왜소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그리고 그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다.

죽음은 작정한 듯이 그의 곁을 맴돌았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삶에 대한 지독한 허무를 느꼈을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죽음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아름다운 죽음은 문학 안에서만 가능하다. <설국>의 마지막 장면, 죽음을 둘러싼 풍경을 위태롭지만 아름답게 그린 장면은, 어쩌면 작가가 죽은 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애도일지도 모르겠다.
 
"눈이 시려서 눈물이 나요."
뺨이 달아오르는데 눈만은 차갑다. 시마무라도 눈꺼풀이 젖었다. 깜박거리자 은하수가 눈에 가득 찼다. 시마무라는 흘러내릴 듯한 눈물을 참으며,
"매일 밤 이런 은하수인가?"
"은하수? 예뻐요. 매일 밤은 아니겠죠. 아주 맑네요."
은하수는 두 사람이 달려온 뒤에서 앞으로 흘러내려 고마코의 얼굴이 은하수에 비추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콧날 모양도 분명치 않고 입술 빛깔도 지워져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워 가로지르는 빛의 층이 이렇게 어두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믿기지 않았다. 희미한 달밤보다 엷은 별빛인데도 그 어떤 보름달이 뜬 하늘보다 은하수는 환했고, 지상에 아무런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흐릿한 빛 속에 고마코의 얼굴이 낡은 가면처럼 떠올라, 여자 내음을 풍기는 것이 신기했다. (145쪽)

허무를 그린 소설을 읽을 때면 맥이 탁 풀리면서 기운이 빠져버리곤 한다. 아무것도 의미 없다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설국>을 읽고 나서 나는 이상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 삶을 계속 살아내고 싶다는 어떤 의지 같은 것이 생겼다.

이토록 아름다운 헛수고라면 기꺼이
 
 <설국>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허연 지음, 아르테(2019)
 <설국>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허연 지음, 아르테(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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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이어, 그의 흔적을 따라가며 작가의 삶과 작품을 이해해보려 했던 허연 시인이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었다. 내가 느낀 편안함과 미미하지만 분명한 에너지의 근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자는 잔치가 끝난 다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안다.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그 흔적들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공간에서 몸을 일으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분명 색다른 미학이다. (허연 <가와바타 야스나리> 중에서)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서양 무용을 비평하는 글을 쓰는 것도, 도모코가 읽은 책의 목록을 오랫동안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도 어쩌면 모두 헛수고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동안 기꺼이 그 헛수고를 계속하겠다는 마음도 드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니까.

내가 하는 일이 헛수고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어깨에 잔뜩 주고 있던 힘이 스르륵 빠지면서, 욕심 따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 아름다운 헛수고의 결과물을 읽으며 어김없이 나는 감동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헛수고라면 기꺼이!
 
"헛수고야."
"그래요" 하고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게 대답했으나 물끄러미 시마무라를 응시했다. 전혀 헛수고라고 시마무라가 왠지 한 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雪)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 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38~39쪽)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민음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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