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회사 근처의 공원이 눈을 뒤집어 써 평소와는 다르게 보인다.
 회사 근처의 공원이 눈을 뒤집어 써 평소와는 다르게 보인다.
ⓒ 권수아

관련사진보기


 몇몇 가게 앞에는 눈사람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몇몇 가게 앞에는 눈사람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 권수아

관련사진보기


며칠 사이에 전국적으로 눈이 왔다. 기상청은 1957년 이후로 가장 기온이 낮은 한파이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될 거라고 예보했다. 곤란할 정도로 추운 날씨지만, 눈으로 인해 매일 지나치는 곳인데도 멋진 경치로 변했다. 회사 근처의 공원도 눈을 뒤집어 써 평소와는 다르게 보이고, 몇몇 가게 앞에는 눈사람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눈을 밟으면 '뽀드득'하는 소리가 난다. 발 밑에서 뭉그러지는 눈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소리이다. 겨울에만 듣고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소리처럼, 그 유명한 '설국'의 첫 단락도 지금이 아니면 감동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세 문장으로 전 세계의 독자를 사로잡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2년 동안 니가타(新潟) 현의 에치고(越後) 유자와(湯澤) 온천에 직접 머물렀다고 한다. 그가 어떤 생을 살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당시의 일본 상황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점을 미루어 보아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사실, 작가만큼이나 작품도 꽤 우울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졌기에 분명한 줄거리를 말하기 어려우나, 대체로 주인공 시마무라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 요코, 그를 사랑하는 여자 고마코를 둘러싼 이별이라는 데에는 다른 의견이 없다.

줄거리보다 문체가, 문체보다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다. 눈의 나라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설국은 눈을 포함한 추락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창문 철망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이미 죽은 채 가랑잎처럼 부서지는 나방도 있었다. 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도 있었다. 손에 쥐고서,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추락은 곧 죽음이다. 계절이 지나면서 창문가에 죽어가는 벌레들을 표현하면서도 야스나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잊지 않는다. 또한 요코의 죽음도 추락으로 표현하는데, 마치 영상의 슬로우 모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타다 남은 불꽃 쪽에 펌프 한 대가 비스듬히 활 모양으로 물을 뿌리는 가운데, 그 앞으로 문득 여자의 몸이 떠올랐다. 그런 추락이었다. 여자의 몸은 공중에서 수평이었다. 시마무라는 움찔했으나 순간, 위험도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세계의 환영 같았다. 경직된 몸이 공중에 떠올라 유연해지고 동시에 인형 같은 무저항, 생명이 사라진 자유로움으로 삶도 죽음도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시마무라를 스친 불안이라면, 수평으로 뻗은 여자의 몸이 땅에 떨어질 때 머리 쪽이 먼저 부딪지는 않을까, 허리나 무릎이 꺾이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될 여지가 있었으나 수평인 채 떨어졌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인하리만큼 추락하는 것들에 대해 서술한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작품을 우울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죽음조차 미(美)로 치환하고, 지상으로 추락하는 가장 차가운 눈과 지상에서 솟아오르는 가장 뜨거운 불을 연결하는 동안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눈은 날이 풀리면 녹겠지만, 불은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 사라진 적이 없다. 즉, 야스나리에게 설국은 모든 것이 추락하고 죽어가지만 곧 따뜻해지고 재생할 조국 일본이다. 그렇기에 그는 패전 이후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일본에서 어렵게나마 희망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의 정신적 버팀목이기도 하였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자국민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설국이다. 애처로울 만큼 안타깝기에 더욱 떠날 수 없는 우리나라이다. 날씨만큼이나 국민들의 정서도 얼어붙었다. 악성이라고 불릴 만큼 가속화 되는 현 정권의 임기 말 레임덕 밑에서 초기에 약속한 경제 부흥은 이제 기대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날씨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고, 정서는 정치적 관심을 만들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이 이치가 꼭 계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용구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참고하였습니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민음사(2002)


태그:#설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단국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학생. 책과 문화를 매우 사랑하며, 또한 여러사람들에게 전파하기가 취미이다. 블로그 꿈꾸는 달님의 문화다방(http://dreammoon_.blog.me/)을 열심히 꾸려나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관심이 많아 본교 커뮤니티 단쿠키 운영진과 대학생 커뮤니티 연합 비영리 법인단체 유캔의 정회원을 겸하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