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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담로가 짓고, 다산이 12경을 이름붙인 백운동 원림의 아름다운 모습
▲ 강진의 백운동 원림 조선시대 이담로가 짓고, 다산이 12경을 이름붙인 백운동 원림의 아름다운 모습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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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의 성전면 월하리에는 호남의 3대 정원 중에 하나로 꼽히는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이 있다. 2019년 3월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역사유적으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이곳을 들러 경치가 너무 좋아 잊지 못했다는 기록도 전해온다.

백운동 원림을 들어가는 곳에는 월출산 강진다원이라 하여 차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녹색의 차밭과 바위가 솟은 월출산이 봄기운과 어울리면 풍광이 아주 좋다. 차밭은 계단식 논을 활용하여 경사진 땅을 내려가면서 가득 펼쳐지고 있다. 농사짓기도 어려운 땅 같은데 차밭으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게 만든 것이다.

 
월출산 아래에 계단식으로 넓게 차밭이 펼쳐진다.
▲ 월출산 강진다원 월출산 아래에 계단식으로 넓게 차밭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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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는 차나무 이야기라 하여 차에 대한 설명을 게시해 놓았다. 국내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전파되었고, 828년 흥덕왕 3년에 사신 대렴이 당나라로부터 가져와 재배를 시작했다고 한다. 찻잎은 1년에 3-4회를 딴다고 하고, 차를 제조과정에서 발효된 정도에 따라 분류한 종류도 적혀 있다.

불발효차가 녹차이고, 반발효차가 우릉차이고, 발효차가 홍차이고, 후발효차가 보이차라고 한다. 또 찻잎의 성장 정도에 따라 분류하여 다 펴지지 않은 어린 잎만을 따서 만든 세작(작설차), 좀더 자란 펴진 잎을 한두 장 함께 따서 만든 중작(보통차), 중차보다 더 굳은 잎을 따서 만든 하작(거친 차)이라고 설명했다.
 
오솔길의 좌우로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많이 있어 경치가 맑고 좋다.
▲ 백운동 원림 들어가는 길 오솔길의 좌우로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많이 있어 경치가 맑고 좋다.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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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아래로 내려오면 백운동 원림으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오솔길로 들어가면 아래로 대나무숲이 무성하게 우거져 맑은 기운이 풍겨나온다. 동백나무도 함께 많이 자라고 있어 숲이 더욱 보기가 좋다.

숲을 지나면 조금 넓은 공간이 열리면서 아담하게 조성된 집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면 조선중기에 처사 이담로(1627-1701년)가 은거하려고 백운동 원림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다. 이곳에 대한 설명도 상세히 나와 있다.

'백운동 원림은 내원과 외원으로 나뉘어져 내원은 연지와 곡수로, 돌화단, 건물 등을 자연에 순응하여 배치하였다. 층암절벽의 험준한 지형과 울창한 계곡수림의 음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 가운데에 탁 트인 너른 공간을 조성하고 건물들을 배치하여 햇볕을 머물게 함으로써 안온함이 극치를 이룬다. 외원은 계곡과 암석들이 다양한 수목들과 함께 자연 그대로 어우러져 있다. 특히 외원의 계류를 수로와 연지를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내원에 흘러보내 여러 굽이로 휘돌아 다시 담장 밖 계곡으로 흘러나가게 한 유상곡수는 뒤로 물러남이 곧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곡절 많은 인생도 이와 같다는 처사의 도가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강진의 백운동 원림에 집이 아담하게 조성어 있다.
▲ 백운동 원림 강진의 백운동 원림에 집이 아담하게 조성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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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으로 들어가면 작은 집들이 아담하게 지어져 운치있게 보인다. 백운유거(白雲幽居)라 현판도 붙어 있어 집주인의 뜻을 드러내고 있다. 봄에 마루에 앉아 마당을 내려보면 정갈한 가운데 모란꽃이 활짝 피어 화사한 분위기도 난다.

마당의 안팎에는 백운동 12경이라 하여 하나씩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이 12경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중에 제자들과 이곳을 들러 아름다움에 취해, 나중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다산이 쓴 백운첩(白雲帖)에기록이 나오고 있다.

'가경 임신년(1812) 가을, 내가 다산에서 백운동으로 놀러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남은 미련이 오래 지나도 가시지 않기에 승려 의순을 시켜서 '백운도'를 그리게 하고 이를 이어 12승사의 시를 지어서 주었다. '다산도'를 붙여서 우열을 보인다. 9월 22일.' 
 
뜰에 모란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 백운동 원림  뜰에 모란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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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경을 1경부터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옥판봉(월출산 구정봉의 서남쪽 봉우리의 이름),
산다경(원림에 들어가는 동백나무 숲의 작은 길),
백매오(백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는 언덕),
홍옥폭(단풍나무 빛이 비친 폭포의 홍옥같은 물방울),
유상곡수(잔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
창하벽(붉은색의 글자가 있는 푸른빛 절벽),
정유강(용 비늘처럼 생긴 붉은 소나무가 있는 언덕),
모란체(모란이 심어져 있는 돌계단의 화단),
취미선방(산허리에 있는 꾸밈없고 고즈넉한 작은 방),
풍단(단풍나무가 심어진 단),
정선대(신선이 머물렀다는 옥판봉이 보이는 정자),
운당원(늠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

 
백운동 원림의 5경인 유상곡수를 표시하고 있다.
▲ 유상곡수 백운동 원림의 5경인 유상곡수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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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경의 이름을 보면 다양하게 특색을 잘 살려서, 다산의 작명 실력이 아주 탁월하고 돋보인다. 12경을 지적하는 각 곳의 표지판에는 이름과 한시를 적어 놓았다. 제5경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찾아보면 한시가 적혀 있다.

六曲穿牆水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回頭復出墻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偶來三兩客 어쩌다 온 두 세 분 손님이 있어
閒坐共流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옛사람들이 풍류를 즐기는 유상곡수연을 노래하고 있다. 유상곡수연은 물길을 만들어 물을 흘리면서 술잔을 띄워 마시며 시를 짓는 잔치놀이다. 중국 동진의 명필 왕희지가 친구들과 함께 물 위에 잔을 띄워서 놀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술잔이 자기 앞에 오면 시를 읊어야 하고 못하면 벌주 3잔을 마셔야 했다. 신라시대의 포석정이 대표적인 유상곡수연을 즐긴 곳이다.

이 집에서도 바깥의 물을 끌여들여 물길을 만들어 손님이 오면 유상곡수연을 즐긴 것이다. 은거를 하면서도 멋있는 풍류는 다 즐기며 살아간 것 같아 부럽게 느껴진다.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은 낡고 초라하지만, 그 당시는 훨씬 자연적인 멋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백운동 원림의 8경인 모란체를 표시하고 있다.
▲ 모란체 백운동 원림의 8경인 모란체를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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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경 모란체(牡丹砌)에도 시가 적혀 있다.

山人深色譜 산사람 색보에 조예가 깊어
不肯讓時豪 호걸에게 양보하길 즐기질 않지
已貫分株法 그루를 나누는 법 하마 익숙해
仍無採藥勞 작약 캐는 수고로움 아예 없겠네.


집마당의 섬돌 위에 심겨진 모란이 수북하게 자라 품위가 있으면서 꽃이 피어 아름답다. 누가 보더라도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 집의 모란꽃이 가장 좋아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시에는 모란을 작약이라 하여 뿌리가 번창하면 떼내어 심으니, 굳이 뿌리채 다 캐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5월을 전후하여 집마당에 모란꽃이 가득 피면 부귀장수의 흥겨움이 다가와 아주 좋다. 그러니 비록 은거를 하더라도 모란꽃을 보면서 살고 싶어 멋있게 심어놓았다.
 
백운동 원림의 9경 취미선방을 표시하고 있다.
▲ 9경 취미선방 백운동 원림의 9경 취미선방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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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제9경 취미선방(翠微禪房)에도 한시가 적혀 있다.

一痕墻砌色 담장과 섬돌 빛깔 한 줄 흔적이
點破碧山光 푸르른 산 빛을 점찍어 캔다
尙有三株樹 여태도 세 그루 나무 있으니
曾樓十笏房 예전부터 좁은 집에 살던 것일세


취미선방은 산허리의 선방이란 뜻으로 작고 조용한 방으로 이름붙인 것이다. 선방의 담장과 섬돌이 뒤를 두르고 있는 산과 빛깔이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담장과 섬돌의 빛깔이 점이 되어 산에 비치니, 푸른 빛을 캐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당에는 나무가 세 그루가 오래 자라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선비가 은거하는 작은 집에 나무 세 그루가 심겨져 호젓한 운치를 높여온 것이다. 세 그루의 나무는 12경의 시에 매화와 동백나무와 단풍나무가 나오니 그런 종류였을 것이다.
 
백운동 원림의 집 바깥에 백운동을 새긴 바위가 있다.
▲ 바위에 새긴 백운동  백운동 원림의 집 바깥에 백운동을 새긴 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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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밖으로 나오면 작은 계곡에 맑은 물이 조금 흐르고 있다. 앞의 큰 바위에 白雲洞이라는 한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금은 날려쓴 글자가 멋을 부렸는데 이담로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담로가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이라고 바위에 새긴 것으로 전해온다는 설명도 붙어 있다.

그러나 경남 합천의 가야산에도 깊은 산골 계곡인 백운동이 있다. 신라말 비운의 인물 최치원이 물러나 여기서 은거하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마도 백운동은 심산유곡에 은거하는 선비들의 이상향 비슷한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강진의 바다에 가우도가 보인다.
▲ 강진의 바다 강진의 바다에 가우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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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오래 머무른 유배지라서 그 자취와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그중에서 백운동 원림은 다산이 아름다움에 취해 지내고 싶어 했던 특별한 곳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품위있게 느껴지는 곳이다. 모란꽃 피는 봄날 찾아와 12경을 살펴보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맛보며 다산을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해안으로 나가 시원한 봄바다를 구경해도 좋을 것이다. 

태그:#강진의 백운동 원림, #정약용 12경, #이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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