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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맹도 있고, 저시력인도 있고, 저시력인이 훨씬 많죠. 저 같은 경우에는 시신경 위축이어서 뿌옇게 보이는데, 어떤 사람은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어떤 사람은 암점이 생겨서 군데군데 안 보인다든지, 중심이 안 보여서 바깥쪽으로 봐야 한다든지, 저시력인도 개인차가 엄청나게 커요."

강내영 대표는 국내 유일의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다. 화면해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배우의 행동이나 장면의 상황 등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서비스이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장애인 등 모든 이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것)에 대한 인식도 충분하지 않은 한국에서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대본을 만들고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제작한다.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 최초, 유일…. 강 대표를 수식하는 말은 무수히 많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으레 전맹을 떠올리는 한국에서 유일의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11월 18일(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사무실을 찾았다.

일하는 이유, 살아있는 기분
 
강내영 대표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다.
▲ 강내영 대표 인터뷰 사진 강내영 대표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다.
ⓒ 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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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는 2011년도에 화면해설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당시 화면해설작가 양성 과정은 전·현직 작가와 글쓰기 관련 학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주로 진행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강 대표는 처음부터 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저보다 못 보는 저시력인이었거든요. 내가 보이는 것을 그대로 설명하면 이해를 할 줄 알았는데, 같이 보고 싶어서 설명을 해도 제대로 안 되는 거죠."

사랑하는 이에게 그가 본 것을 설명해주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후 화면해설작가로 활동하다가 2년 전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사운드플렉스튜디오는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회사로 배리어프리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강 대표가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를 설립한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현재도 시력 저하가 진행 중이다. 강 대표는 대본 작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콘텐츠 기획이나 제작 쪽으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자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눈을 많이 쓰지 말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강 대표가 무리하면서까지 화면해설작가를 계속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대본 작업을 하면 솔직히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요. 원래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성취감, '내가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에 열심히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포기를 알아야 했던 학창 시절

강 대표는 학창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미술대학을 가고 싶어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어렵게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미대에 가려면 데생을 해야 했어요. 저 멀리 석고상을 보고 그려야 하는데 선생님이 자꾸 각진 면이, 그림자가 어쩌고 하는데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그리파가 내 눈에는 흐리멍덩하게 보이니까 흐리멍덩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강 대표는 그때를 '너는 못 해, 안돼'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주눅 들고, '나는 해도 안 될 거야'라고 의기소침해하고, 자신감도 없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장애에 대한 부분을 잘 모르잖아요. 과잉보호 또는 우려하는 부분으로 '너는 해도 안 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하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선택권이 내게 없었던 부분들, 그게 부모님이 장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국내 '유일'이라는 타이틀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로고 사진이다.
▲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로고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로고 사진이다.
ⓒ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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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에게 그를 수식하는 국내 '유일'의, '최초'의 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오히려 저시력인이라는 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경쟁력,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화면해설 작가는 비장애인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강 대표는 본인이 저시력인이였고 시각장애인들과 더 가까웠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쉬웠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향상될 수 있었고, 작품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단 저는 그들보다(비장애인 화면해설작가) 나은 것에 대해서 찾은 거죠. 솔직히 작업시간은 배로 더 걸려요. 또 내가 못 보는 부분에 대한 거는 비장애인 모니터 요원들이 체크를 해준다든지, 팀원들과 함께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요. 보통은 작가들이 혼자 작업을 하거든요. 뭐든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니까, 그걸 어필한 거죠."

꿈이 많은 사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강 대표는 자신의 계획과 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였다. 그의 꿈은 화면해설의 대중화다. 시각장애인은 영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강 대표는 길 안내 등 일상 전반적인 부분으로 음성 해설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은 전맹이 있고, 저시력이 있고, 이런 차이와 에티켓에 대한 부분들을 비장애인도 알게 되어서, 시각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한다든지 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택지를 늘리는 것 또한 강조했다. 시각장애인은 직업적인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강 대표는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에도 시각장애인들을 참여시켜 시각장애인이 직업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폭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직업이든, 콘텐츠에 대한 이용이든 그래서 31가지 맛 아이스크림까지는 아니더라도 골라서 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마지막에는 "너무 거창했나요?" 하며 그는 웃었지만, 그 안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그의 고민과 열정을 볼 수 있었다.

태그:#화면해설작가, #배리어프리, #저시력인, #강내영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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