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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영장실질심사 출석하는 김은경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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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제424호 법정. 재판장 송인권 부장판사는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검찰의 공소장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시전 검사가 이의를 제기하려 하자, 송 부장판사는 "들어보세요"라며 단호하게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검찰에서) 3000개 이상의 증거를 냈다. 검찰 입장을 구체적으로 주장·정리하는 데에 충분한 증거조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 조사를 하지 않고 기소하셨다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송 부장판사는 이날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죄 선고나 공소 기각을 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검사석에 앉은 두 명의 검사는 얼굴을 붉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형사부(재판장 송인권) 심리로 열린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 재판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 사람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교체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아직 정식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송인권 부장판사는 지난 1차 공판준비기일에 이어 이번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 내용을 강하게 힐난했다.
 
재판장의 최후통첩 "공소장 변경 안 하면... "


송인권 부장판사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공소장 내용이다. 공소장은 검찰이 법원에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청구하면서 제출하는 문서로서, 검찰이 주장하는 피고인의 죄명과 공소사실(범죄사실) 등이 담겼다.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3항은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김은경 전 장관·신미숙 전 비서관의 공소장에는 두 사람의 지시를 받아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교체에 개입하는 행위 등을 한 공무원이 피고인과 공동정범 또는 간접정범의 관계인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범죄를 함께 저지른 경우에는 형법 제30조의 공동정범 조항이 적용되고, 타인을 이용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에 형법 제34조의 간접정범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

지난달 30일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송인권 부장판사는 이를 지적하며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검찰은 의견서를 내고 반박했다. 검찰 의견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본 건 재판에서 밝혀지는 사실관계에 따라 공무원을 공동정범이나 간접정범으로 하더라도 방어권에 제한은 없다. 재판과정에서 각 공무원들이 단순히 일방적 지시를 받은 피해자 지위를 넘어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때 가서 공범으로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송 부장판사는 검찰 의견서 내용을 읽은 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 변호인들에게 "이래도 되느냐?"라고 물었다.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않으면 방어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다"라는 변호인들의 답변이 나오자, 송 부장판사는 공소장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검사님 주장대로 이 부분을 특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거조사를 한다면, 변호인 입장에서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반박한다는 의미에서 변론을 준비해야 한다. 이중에서 유죄가 하나라도 인정되면 재판부 입장에서 골라서 판결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형사소송법의 기본 원칙과는 많이 상이한 내용이다."


그는 "(검찰에서) 3000개의 증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사실 구성에 자신이 없으면 주의적·예비적 공소사실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고도 했다.

송 부장판사는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 필요성을 언급한 후 최후통첩을 했다. 그는 법정 한 편에 설치된 스크린에 형사소송법 제325조, 제327조 제2호, 제328조 제1항 제4호 내용을 띄웠다.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써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다음 경우에는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 (제327조 제2호)
'다음 경우에는 결정으로 공소를 기각하여야 한다. -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이 진실하다 하더라도 범죄가 될 만한 사실이 포함되지 아니하는 때' (제328조 제1항 제4호)
 
송 부장판사는 변호인들을 향해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은 경우 다음 기일까지 어느 부분을 적용해서 판결 선고해야 할지 의견을 주시면 참고해서 판결 선고하겠다"라고 말했다. 검찰을 향해서는 재차 경고를 내놓았다.

"검사님 주장대로 투망식으로 공소제기한 다음에 피고인들이 모든 가능성에 대해 반론 할 것으로 염두에 두고 증거조사 한 다음에 변론 종결 직전에 공소장을 변경해서 특정한다면, 이는 좀 적절하지 않다."

이에 검사가 "일단 간접정범으로 보고 기소를 했다. 변론 과정에서 달리 판단된다면 바꿀 수 있다는 여지를 둔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어 "공소장 정리해서 제출하겠다고 말씀드렸다"라고 하자, 송 부장판사는 "지난 기일에 오늘까지 정리해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 4주 시간을 드렸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송 부장판사는 검사에게 "언제까지 공소장 변경 여부를 검토하겠느냐"고 물었고, 검사는 "2주 안에 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날 2차 공판준비기일은 30여 분 만에 끝났다. 정식재판은 내달 27일 오후에 진행된다.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한다면, 치열한 법리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태그:#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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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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