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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 풍경>은 베르메르(Johannes Vermeer)가 태어나 평생 거주했던 도시의 전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이다. 시계가 달린 스히담 수문, 신교회의 종탑, 그리고 쌍둥이 탑이 있는 로테르담 수문과 같은 건물들은 델프트를 대표하는 건물인데, 그림에서 명백하게 알아볼 수 있다.

사실 베르메르는 도시의 풍경을 넓게 그리면서 건물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수평적으로 배치하였으며, 이는 실제의 위치와 모양에 비해 각도와 크기를 조절하고 선별하여 간소화한 것이었다. 베르메르는 중요한 건물의 위치와 방향을 나름대로 조작하였고 하늘과 강, 그리고 도시의 풍경을 조화시켜, 델프트의 전경이 가장 근사하게 보일 수 있도록 재현한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델프트 풍경」 1660년경  마우리츠호이츠 왕립미술관
▲ 「델프트 풍경」 1660년경  마우리츠호이츠 왕립미술관
ⓒ 마우리츠호이츠 왕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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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화가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었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물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관람자가 화가의 그림을 보고 공감을 느끼며 감탄하고, 상상과 사색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실재와 동일하게 재현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화가가 재현한 사물이 실물과 똑같아 보인다고 관람자가 생각하여도, 그것은 실물을 모방하고 재현한 그림일 뿐이다. 회화가 재현한 것은 실재가 아니며 그와 비슷하게 그린 환영이다. 화가가 의자를 보고 그린 그림은 의자를 모방한 환영일 뿐인 것이다. 관람자는 화가가 그린 의자를 보며 그가 의자를 선택하여 그린 방식과 의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의자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연상하며, 그에 의한 심리적 효과를 경험한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회화 감상의 일차적 특징은 화가가 재현한 작품을 보고 인지하였을 때, 인상적이었거나 명백하게 지각되는 특징을 조합하여 실재와 비교하고 판단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일이다.

회화 작품을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과정에는 관람자의 심리적 현상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과학적으로 객관화하거나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추상적 현상이다. 화가는 재현 대상을 똑같이 그리려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관람자가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특징을 감별하고, 거기에 더해 독창적인 예술성을 가미해야 한다.

화가는 익숙한 사물의 특징을 포착하여 이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색채나 구조, 또는 형태와 배치의 변화를 통해 관람자에게 낯설게 하는 효과를 주어, 관람자가 더 집중하거나 색다른 상상에 빠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베르메르는 <델프트 풍경>에서 강변 둑의 높은 위치에서 항구와 도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구도를 사용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늘을 그린 부분이 수직면의 5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도시의 건물을 수평적으로 재현한 부분과 강과 강변을 그린 부분이 나머지 5분의 2를 채운다. 하늘과 강이 그림의 5분의 4를 차지하며 도시를 둘러 싼 것처럼 보인다. 밝게 빛나는 부분과 구름에 가려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부분은 절묘한 대조를 이루며 정적인 풍경에 생동감을 준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이 그림의 시간은 아침이다. 강물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도시의 건물을 검은 형태로 투영하고 있다. 상업적 왕래가 많아야 할 운하 지역이지만 정박한 몇 척의 배, 왕래하며 담소를 나누는 몇 사람이 느린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 고요와 정적이 도시의 풍경을 지배하며 마치 모든 것이 영원히 멈춘 듯 시적인 정경과 심상을 경험하게 만든다.

한편 그 고요와 정적을 싸고 있는 하늘의 구름은 사물의 운동과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게 한다. 하늘의 검은 구름 때문에 금방 소나기가 지나간 듯 보인다. 멀리에서부터 날이 개어 햇빛이 도시를 비추고 있다. 구름은 델프트의 하늘을 거의 덮고 있다. 가까운 곳에 검은 구름이 몰려있으나 곧 물러날 것처럼 보인다. 더 멀리 흰 구름의 양도 줄어들고 있고 그 너머에는 환한 햇빛이 도시를 비추고 있다.
 
익숙한 사물과 상황, 행위를 낯설게 하기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확인된 그림은 35개 정도로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그 그림의 크기도 작은 소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중산층 가정 내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주방과 거실과 같은 가정 내의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 많았다.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적 환경은 왕정이 부재하였고 무역은 활발하였다. 국제적 교류에 의한 상업이 발달하였고 시민 계급이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풍속화에 대한 수요가 풍부했다.

베르메르가 그렸다고 확인된 거의 모든 풍속화의 배경은 델프트에 있던 그의 장모의 집이었다. 그것은 2개의 작은 방이었는데, 베르메르는 동일한 가구와 장식을 반복적으로 사용했고 그 배열만 다르게 하였다. 베르메르는 사물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세밀하게 묘사하여 그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데 특기가 있었으며,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그가 재현한 의상, 양탄자, 탁자, 의자, 지도, 샹들리에, 악기들은 실물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 그의 끈질긴 의지와 세심한 솜씨에 감탄하게 만든다. 이러한 소품들은 그의 화실에 늘 있었던 물건들이었다. 베르메르는 익숙한 가구와 장식의 배치와 형태에 변화를 주어 각각의 그림 속에서 색다른 효과를 만들어 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베르메르는 빛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방의 구조는 거의 유사했다. 그는 주로 방 왼쪽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변화와 그 빛이 익숙한 사물들에 비추어 생기는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여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형상화는 익숙한 사물과 일상적 행위에서 느끼는 친숙한 상황을, 치밀한 구성과 배치에 의해 낯설게 보이게 만들기도 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며, 이로 인해 관람자가 그림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 비평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이는 일상의 관습적 언어 사용과 구별되는 문학적 재현 방식으로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형태에 변화를 주어, 지각과정을 더 길고 복잡하게' 만들도록 묘사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친근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베르메르의 그림은, 한편 관람자가 '낯설게' 느끼기도 하는 미술적 환영을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베르메르의 걸작들은 대부분 그의 구상에 따른 정교한 구성 속에서, 복잡한 우의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즉 일상의 생활과 사물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친숙한 분위기 안에 복잡하게 직조된 알레고리에 의해 중층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1657년경  국립회화관 독일 드레스덴
▲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1657년경  국립회화관 독일 드레스덴
ⓒ 국립회화관 독일 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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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창가에서 편지 읽는 여인>에 대한 X선 사진에 의하면, 처음에는 뒤쪽 벽에 큐피드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 여인이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이 그림을 지워버렸고, 이는 확실한 메시지 전달 요소를 삭제한 것이었다. 그는 큐피드의 그림을 지우고 연노랑 빛이 감도는 초록색 커튼과 커튼 봉을 추가하였다. 커튼은 편지를 읽는 여인이 있는 공간의 은밀함을 더욱 강조한다. 커튼이 열려 있다는 것은 그러한 은밀한 행위나 의도가 노출된 상황임을 짐작하게 한다. 또는 당시 사용하던 그림 보호용 커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베르메르는 여인과 관람자를 차단하는 장치로 양탄자가 걸쳐진 테이블을 그렸는데, 테이블 위에는 과일 그릇이 놓여 있다. 과일 그릇의 사과와 복숭아는 이브가 저지른 원죄를 상기시키며, 편지를 읽는 여인의 속마음이 열린 창문에 반사된 얼굴에 투영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연애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의 욕망은 열린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향하고 있고 이는 은밀한 외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1659년경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 「우유를 따르는 여인」1659년경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 국립미술관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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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는 여성 한 명이 등장하는 그림을 여러 번 그렸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에는 부엌에서 일하는 여성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일상적 행위의 통속적 의미는 거의 배제하고 우유를 따르는 여성의 행위 자체에 몰두하게 하여 그 순간의 의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부엌의 분주함과 어수선함을 배제하고 오직 우유를 따르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 여성의 시선과 두 손, 그 자세의 균형감은 만물의 근원과 인간의 삶의 의미에 대한 사색까지 추동시키는 위대한 그림이다.

시간의 절대적 운동과 진행을 정지시키는 베르메르의 그림은, 그 순간의 정지에 의해 단순하지만 영원한 진리를 각인시킨다. 그 진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일상적인 이 시간, 이 순간의 의미는 복잡다기해 보이는 인간 사회의 거대한 진행에 견주어 결코 하찮거나 미미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준다.

그리하여 창을 통해 들어오는, 만물을 균등하게 비추는 빛은 따뜻하며 은근하게 그 숭고한 행위를 감싸서 포용하고 있다. 미술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격언인 '묘사의 정확성이 진리는 아니다'라는 말처럼, 베르메르 회화의 진가는 일상에서 늘 보고 사용하는 익숙한 물건과 상황, 그리고 행위들에 영원한 시적 가치를 부여하는 숭고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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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학위 받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문학, 미술, 영화, 미학, 철학, 사회학에 관심이 있고, 이들을 용해, 융합하여 사색한 결과를 글로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양회화 분야에 집중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