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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70년 넘게 곪아온 검찰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국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검찰 부조리의 민낯을 '대한민국 검찰실록'에서 하나씩 파헤쳐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19.9.6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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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단 한 번도 검찰청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도 검찰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청은 무서울 뿐 아니라 결코 정의롭지 않은 곳이라는 느낌이 상당수 국민들을 지배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들이 검사라는 직업을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그런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검찰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국민 정서가 이번 서초동 촛불집회로 집약됐다고 할 수 있다.

일요일인 1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민이 검찰개혁을 요구하시게 된 직접적 이유는 검찰의 제도와 조직보다 행동과 문화에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이 말처럼 검찰이 신망을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간 검찰이 보여준 모습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인권침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검사들이 기소권·수사권·구형권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숱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인권침해 중에서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간첩 조작 사건이다. '간첩 조작' 하면 흔히 과거의 국정원이나 기무사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는 검찰의 협조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검찰의 협조 아래 만들어진 '간첩 조작' 사건

간첩 조작 사건이 완성되려면, 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검사가 그에 맞게 수사하고 기소하고 구형해야 한다. 이처럼 검찰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한데도, 그동안 간첩 조작 사건들과 관련해서는 검찰의 역할이 크게 주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가 내놓은 보고서들을 보면, 검찰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0년의 김기삼 사건을 들 수 있다.

1929년생인 김기삼은 해방 직후 육군 14연대에서 복무했다. 그러던 중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됐다. 여순사건(여순반란)은 제주 4·3항쟁에 대한 진압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의 반란을 말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발행한 <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순사건 뒤 풀려난 김기삼은 한국전쟁(6·25전쟁) 중인 1952년 국군에 입대했고 1965년부터는 한국전력 인천지점에서 전기 검침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1980년 12월 8일 간첩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연행된 뒤 1983년 11월 8일 대법원 판결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김기삼 등이 체포된 간첩사건을 보도하는 1981년 4월 9일자 <경향신문>.
 김기삼 등이 체포된 간첩사건을 보도하는 1981년 4월 9일자 <경향신문>.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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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기삼 사진.
 1981년 4월 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기삼 사진.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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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삼은 남파간첩인 사촌 형의 지령에 따라 주요 시설을 검침하고 그 결과를 보고했다는 죄목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실제로는 그냥 검침을 하러 다녔을 뿐인데도 간첩으로 몰려 중형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그는 52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물고문·전기고문에 몽둥이 구타까지 당했다. 심지어 권총으로 살해 협박도 받았다. 제3자가 보기에는 수사관이 진짜 죽일 생각이 없더라도, 그런 상황에 처한 당사자는 총이 진짜 발사될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고문 실태를 보면 안기부 수사관들이 얼마나 비열했는지 느낄 수 있다. 백열등 2개를 5일간 눈앞에 비춰놓고 잠을 못 자게 만들었다. 또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겨자 탄 물을 넣고 그것을 얼굴에 붓기도 했다. 자백을 안 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안기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곳은 광주지방검찰청이다. 검찰로 넘겨진 김기삼은 검사 앞에서 간첩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검사는 묵살해 버렸다. 검사는 안기부 수사관들이 입회한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내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했다. 또 안기부 수사관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기삼을 불러내는데도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불법 수사를 죄다 묵인했던 것이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피고인 대기실까지 찾아가 "검사 앞에서 조서 내용 그대로 자백해야 하며, 착오가 없어야 한다"고 협박했다. 또 교도소까지 찾아가 김기삼을 안기부 광주분실로 끌고간 뒤 "검찰 조사를 잘 받으라"며 구타했다.

만약 안기부의 위세만으로 검찰을 압박해 유죄 구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안기부 수사관들이 굳이 "검찰 수사 잘 받으라"며 계속 협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김기삼을 간첩으로 만들려면 검찰의 협조도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처럼 안기부 수사에 제동을 걸 여지가 있었는데도, 검찰은 김기삼의 혐의 부인을 무시하고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일조했다.

민청학련 사건과 검찰 
 
 1974년 4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민청학련 사건.
 1974년 4월 25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민청학련 사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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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유신 시절인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제2차 인혁당 사건) 때도 검찰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인혁당의 조종을 받은 이 단체가 국가전복을 꾀한 것으로 발표된 이 사건에서도 검찰은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전신)와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이 사건의 수사 과정은 고문과 허위자백으로 점철됐다. 정상적인 수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소개한 이유정 인하대 교수의 논문 '과거사 진상 보고서를 통해 본 검찰의 인권침해 실태'에 아래와 같은 대목들이 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주도적으로 고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문 수사관들의 입회 하에 형식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면서 피의자들이 범죄 혐의를 부인하면 중정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하는 등 허위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불법수사를 하였다."

"피고인들이 제출한 항소·상고이유서에도 검찰 수사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검사(의) 조서 작성 시 4월 20일~25일까지 철야 조사를 받고 4~5일에 걸쳐 고문당함(도예종 항소이유서) ······"


"검찰서기였던 이○○도 의문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들 모두가 풀이 죽어 있었고 문 검사가 질문을 하면 부인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으며, 아마 고문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하여 검찰에서도 피의자들에 대한 고문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 2009년 발행한 <내일을 여는 역사> 제36호.
 
검찰은 이미 벌어진 고문수사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검찰 조사 중에 벌어지는 고문도 방조했다. 또 피의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중앙정보부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중앙정보부에서 벌어질 고문수사를 은근히 예고하는 방법으로 검사가 피고인을 협박한 것이다.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검찰도 간첩 조작의 공범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312조 1항과 2항이 다른 이유
 
“검찰아 칼잡이는 우리야“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전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검찰아 칼잡이는 검찰 썩은 환부 도려내는 우리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검찰아 칼잡이는 우리야“ 지난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전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검찰아 칼잡이는 검찰 썩은 환부 도려내는 우리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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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2조 제3항은 법원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권을 검사에게만 인정한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2는 경찰이 영장을 신청할 때는 반드시 검사를 거치도록 규정한다. 형사소송법 제196조는 검사에게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인정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검찰이 경찰을 견제하고 국민 인권을 보호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형사소송법 제312조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와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차별하는 것도 경찰보다 검찰의 인권보호를 좀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제312조는 검찰(제1항)과 경찰(제3항)이 각각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법적 효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차별적으로 규정한다.

제1항: 검사가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공판 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제3항: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제1항에 따르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쓰이려면, 피의자가 판사 앞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진술해야 한다. 제2항에 따르면, 경찰이 작성한 조서가 증거로 쓰이려면, 피의자나 변호인이 판사 앞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진술해야 할 뿐 아니라 거기에 더해 '진술한 내용이 사실입니다'라고 인정해야 한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보다 검찰이 작성한 조서가 훨씬 수월하게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객관적 진실과 다를 가능성이 있고, 검찰이 작성한 조서는 객관적 진실과 다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전제되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법률 체계가 경찰보다 검찰을 더 신뢰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자료 중 하나다.

이렇게 상당한 신뢰를 받는데도 검찰은 국민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사례들도 적지 않다. 정보기관과 협조해 국민들을 간첩으로 내몬 경우도 한둘이 아니다.

제7차~제9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때 엄청난 숫자의 촛불이 서초역 일대에 등장한 것은 그간 검찰이 쌓아온 자업자득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검찰개혁을 요구하시게 된 직접적 이유는 검찰의 제도와 조직보다 행동과 문화에 있습니다"라는 쓴소리를 들을 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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