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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론 해설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영어판이 지난 9월 뉴욕 소재 출판사 Algora Publishing에서 < Karl Marx's Das Kapital Explained > 제목으로 출간됐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2008년 12월에 초판이 출간되어 지금까지 마르크스 관련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31쇄를 찍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한국의 사회과학 대중서, 그것도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 아마존 주소
https://www.amazon.com/dp/1628943890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 출간 좌측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이고 우측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한글판이다.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 출간 좌측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이고 우측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한글판이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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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주전 공격수로 출전하고, 류현진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방어율 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비틀즈와 비견되며 영어권 가요계를 점령하고 있으며,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내 책만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되면 화룡점정인데, 현실은 영어판 출간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하는 상황이다. 책의 저자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인들은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판매가 저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책을 낸 Algora Publishing조차 저자와 주고받은 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속내를 밝혔다.
 
As you know, the US is the bastion of anti-Marxism. We are publishing your book not because we believe in its great commercial success but because we believe it is a public service.
알다시피 미국은 반反마르크스주의의 보루입니다. 우리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기대하며 귀하의 책을 출간하는 게 아닙니다. 이 책을 출간하는 게 공공 서비스라고 믿기 때문에 출간합니다.

외화벌이 수출역군 대열에 당당하게 합류하고 싶지만, 까놓고 말해 마르크스주의 팔아서 달러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극소수파인 미국 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서로 추천하며 돌려보는 도서가 된다면 최고의 성과라 하겠다.

어쨌든 출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알다시피 손흥민, 류현진, 방탄소년단, 조성진이 있기 전에 그 길을 먼저 개척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설사 눈에 띄는 성과가 나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의 자취와 흔적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됐음은 당연지사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영어판 출간 경험을 공유하여 미래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저자가 될 당신을 응원하고 싶다.

1. 영어판 출간을 마음먹은 계기

영어권에 거주하는 한국인 중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한글판)을 읽고 나에게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영어권에도 마르크스 <자본론>을 이렇게 쉽게 풀어낸 책은 못 본 것 같다며 영어권 번역 출간을 권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저 덕담이라고만 여겼는데, 차분히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가 반도체 칩도 팔고 스마트폰, 자동차도 수출하면서 책만 수출 못 할 이유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2011년에 중국어로도 번역 출간되었으니, 영어판이라고 딱히 어려운 일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 영어로 번역되어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작가로서의 바람도 컸다.

2. 영어판 출간의 현실적 어려움

출판사에 영어판 출간 의사를 타진했는데 난색을 표했다. 한마디로 한국 출판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는 한국 책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설사 관심이 있더라도 대부분 소설 같은 문학 분야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출판사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서 출간된 '사회과학 책'에 관심을 갖고 계약을 한다. 비싼 번역비를 들여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한다. 과연 그 사회과학 서적을 팔아서 번역비나 회수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내 경우는 미국인 대부분이 거부감을 갖는 마르크스 관련 책이다. 자국 저자들 책도 안 팔리는데, 굳이 한국 책을 계약해서 영어로 번역해 출간한다? 현실적이지 않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 출간 마르크스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한글판과 영어판을 동시에 들고 있다.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 출간 마르크스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한글판과 영어판을 동시에 들고 있다.
ⓒ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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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공법으로 돌파

영어권, 특히 최대 시장 규모의 미국에서는 수많은 작가의 책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온다. 그 작가들의 글이 딱히 한국 작가의 글보다 뛰어나서 미국 출판사가 책으로 출간해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 작가들의 원고는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회를 얻는 것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미국에서 출간되기 위해서는? 나도 미국 작가들처럼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고를 통째로 영어로 번역해서 주면 된다. 그들이 읽어보고 출간 여부를 판단할 테니.

문제는 번역비용이다. 영한번역보다 한영번역비가 훨씬 많이 드는 데다가 마르크스 <자본론> 해설서의 번역은 단순한 영어 번역과는 또 다르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 신기하다. 꼭 이럴 때면 절묘한 타이밍으로 돈이 생긴다. 우리 아파트 앞에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일조권이 침해됐는데, 관련 보상금으로 계좌에 딱 번역비만큼 입금된 것 아닌가. 번역자도 페이스북 인맥을 통해 추천받아 수개월 만에 책 원고를 성공적으로 번역했다.

4. 예상치 못한 난관

드디어 미국 출판사에 투고하는 일만 남았다. 기왕이면 메이저 출판사에 투고하고 싶어 펭귄랜덤하우스 출판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FAQ 메뉴에서 원고 투고 관련 내용을 읽는데, 다음 같이 적혀 있는 것 아닌가!
 
Penguin Random House does not accept unsolicited submissions, proposals, manuscripts, illustrations, artwork, or submission queries at this time.

펭귄랜덤하우스는 개인의 원고투고는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알아보니 영어권 메이저 출판사는 어디나 개인 원고투고는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무리 큰 출판사라 하더라도 누구나 원고투고가 가능하다. 반면 영어권은 워낙 출판시장이 크고 작가 지망생도 많다 보니, 개인 원고투고 창구를 열어놓으면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에 개인 투고는 받지 않는다.

대신 'literary agent'라 불리는 대리인이 작가와 메이저 출판사 사이에서 일종의 관문지기(gate keeper) 역할을 한다. 메이저 출판사와 계약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대리인에게 원고가 선택되어야 한다.

대리인은 출판 계약이 성사되면 작가의 인세 수입 중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구조다. 요컨대 영어권 메이저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려면 이 대리인과 접촉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내가 미국 대리인의 연락처를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고민 끝에 해외 번역출간을 중계하는 한국의 에이전시를 통해 영어권 출간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국 에이전시들은 해외도서의 국내출간 및 국내도서의 해외출간에서 중계를 하며 수수료 수입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영어권의 출판사 및 대리인들과도 일상적으로 연락을 취한다.

하지만 한국 에이전시를 통한 영어권 출간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과학 도서의 영어권 수출이 전례가 없다 보니, 한국 에이전시들도 사회과학 도서에 관심을 보일 만한 영어권 대리인을 알지 못하는 거다.

5.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직접 찾아야

목마른 사람이 직접 우물을 찾아야 하는 법! 내가 직접 연락처를 찾아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이 바로 http://www.writersmarket.com/ 이다. 이 사이트는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회원비가 한 달에 5.99달러다.

회원이 되면 사이트의 정보를 열람하고 검색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데, 영어권 출판사와 대리인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학을 관심 분야로 선택해 검색하니 백 명이 넘는 대리인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화면에 나타난다.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제안서와 샘플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장이 죄다 거절이다. 왜 이렇게 거절만 할까 고민했는데, 역지사지하니 답이 나왔다.

대리인의 수입은 (자신이 계약을 성사시킨) 저자가 받는 인세의 15%다. 만약 한국 작가가 쓴 마르크스 <자본론> 해설서를 메이저 출판사에 추천해서 계약되면, 대리인은 인세의 15%를 꾸준히 떼가는 거다.

내가 대리인이라면 우선 미국 작가가 쓴 마르크스 관련 서적의 판매현황을 볼 것이다. 거의 안 팔린다. 판매가 처참하다. 그렇다면 한국 작가의 마르크스 관련 서적의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 예상되는 자기 몫의 수수료가 빤히 보인다. 들인 품에 비해 돌아오는 대가가 너무 적으니 당연히 거절이다.

6. 현실적으로 가능한 루트를 찾다

대리인을 통해 메이저 출판사와 계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메이저 출판사는 포기하고 개인 투고를 받는 중소규모의 사회과학 출판사를 공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http://www.writersmarket.com/ 에서 개인 투고를 받는 사회과학 출판사를 따로 검색해서 해당 출판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투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원고에 관심이 있다는 답장을 몇몇 출판사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중에 가장 진지한 관심을 보인 Algora Publishing과 계약을 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영어판이 출간됐다. Algora Publishing은 뉴욕 소재의 출판사로 1983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수백 종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출간한 좌파 출판사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무덤인 미국에서의 출간이라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투입한 번역비조차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 독자에게나마 인상에 남는 책이 된다면 작가로서 뿌듯함을 느낄 것 같다.

한국에서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책, 그것도 사회과학 책은 상업적으로 나에게 큰 보상을 주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그 책을 쓴 사람에게, 그 책을 썼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미래를 선물해준다. 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내 인생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 흥미진진한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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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저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