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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서울에서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라는 이름의 국제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15여 개 아시아 나라의 산업재해, 직업병 등 노동안전보건문제와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인 환경보건문제를 다룬다. 이들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 또는 정책 관련해 논의하는 행사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자들의 자리다. 즉 환자와 유족들이 주인공인 대회다. 이들과 노동안전보건운동가, 환경보건운동가 그리고 의학, 사회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일부 함께한다.

이 대회는 '아시아 직업 및 환경 피해자 권리 네트워크(ANROEV, Asia Network for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라는 이름의 기구가 주관한다. 이 네트워크는 20여 년 전 태국, 방글라데시, 중국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공장화재 사고로 인해 수백, 수천 명의 노동자 사망한 참사를 계기로 아시아 각국에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일환으로 조직되었다. 매년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 대회를 개최하고 각국 각 분야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의 경험을 교류하고 구체적인 연대 활동을 추진해왔다.

이 네트워크의 활동성과 중 하나가 석면 분야다. 2009년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가 결성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현재 아시아 10여 개 나라에서 석면추방운동과 석면피해자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 10여 년 전 연간 200만 톤에 이르던 세계석면소비량이 2017년 130만 톤 규모로 감소하였고, 아시아에서 일본, 한국에 이어 홍콩, 대만, 태국, 네팔 등에서 석면사용이 전면금지 또는 크게 제한되었다.

필자는 2008년부터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에 참가해왔는데, 한국에서 가동되던 석면방직공장이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면서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에게 석면 피해가 나타나는 문제를 조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200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했다. 원료나 제품을 사용해서도 수입, 수출해서도 안 된다.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동되던 석면공장이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로 옮겨가서 가동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석면사용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그들 나라의 노동자나 주민들은 석면에 노출되어도 괜찮은가? 당연히 아니다. 한국에서 가동될 때 노동자들과 주민들에게 석면 피해를 입혔던 석면공장이 그대로 인도네시아로 옮겨가서 가동되기 때문에 그들 나라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석면에 대한 안전기준이 더 허술한 인도네시아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07년 부산의 법원이 석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사례에 대해 해당 공장이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때 필자는 1971년부터 부산에서 가동되던 석면공장 일부가 1992년 인도네시아로 옮겨간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석면방직공장은 1971년 일본에서 옮겨온 것이었다. 필자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10여 차례 일본과 인도네시아 현지를 방문해 석면방직공장의 국가 간 이동과 노동자 및 주민 피해 상황을 조사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짐작대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석면방직공장 설비들이 이전되면서 안전관리시스템은 전달되지 않았고, 노동자와 주민들의 석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니 더 심각한 형태로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 중이다. 소위 전형적인 형태의 공해수출 문제다. 유해·위험 산업이 일찍 발전한 선진국에서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하는 개발도상국으로 유해·위험 산업이 이전한 것이다.
 
 아시아 산재환경피해자 대회 in 베트남 하노이.
 아시아 산재환경피해자 대회 in 베트남 하노이.
ⓒ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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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학자가 아닌 활동가로서 이 문제를 조사하고 다루면서 이미 석면 문제를 노동운동의 주제로 다뤄오던 노동안전보건운동가 및 전문가들과 결합해 환경보건운동의 주제로 삼았고, 특히 석면공장 인근 지역으로의 석면 오염과 주민건강 피해 문제에 집중했다. 그동안의 구체적인 성과라면, 한국의 경우 석면사용이 금지되었고 환경성 석면 피해를 구제하는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되어 지난 8년 9개월간 3883명이 석면 피해 및 구제대상자로 인정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석면질환자가 진단되었고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권리 네트워크'를 통한 활동에 힘입은 바다. 일본과의 연대 활동을 통해서도 일본 센난과 한국 부산의 석면피해문제를 법정에서 제기하고 인정받는 성과가 있었다. 역시 이 네트워크의 힘이었다.

이 네트워크는 평생을 산업보건운동에 바친 운동가들과 양심적인 전문가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피해자의 세 축으로 구성되고 유지된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방식의 사회운동은 매우 드물고 한 나라를 넘어 권역차원으로서는 유일하다. 2년마다 개최되는 대회의 경비는 석면 피해자와 유족의 기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지원으로 충당한다. 정부와 기업 또는 국제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20여 년간 피해자 중심의 네트워킹을 통해 노동안전보건분야의 성과를 내온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의 환경운동을 통한 석면 문제의 사회 이슈화와 전자산업 피해자운동의 성과, 일본에서 진행 중인 석면암 중피종 환자들의 전국투어프로그램, 인도네시아에서의 산업보건운동의 약진, 인도 스리랑카 지역에서의 산업보건운동의 분투 등 국가별 모범 사례가 적지 않고, 극동, 동남아, 남아시아 등 아시아 내에서도 권역별로의 연대가 세분되고 있다.

나름의 성과와 함께 한계와 부족한 점도 많다. 노동안전보건운동과 환경보건운동간의 접점을 넓혀야 하고, 나라마다 다른 경제적 정책적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설정과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추진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피해사례 공유에 머무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피해자를 위한 네트워크라고 하지만 실제 활동에서 아직은 피해자가 중심에 있지 않다. 피해자들은 국제회의는 물론 자국 내에서의 네트워킹에서도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아시아연대를 담당하는 활동가나 전문가도 소수에 불과하다.

직업병과 환경문제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고 피해를 확대하는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떠오르게 하고, 이를 규제하는 UN 차원의 협약과 피해지원을 위한 국제펀드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피해자는 시혜의 대상이 아닌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삼성백혈병, 태안화력 피해자 등 유족들이 만든 산재피해자단체 <다시는>의 사례가 아시아로 전파되고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5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 참가자들은 "노동자 산재 피해자와 시민환경 피해자 간의 국제연대로 노동해방 녹색세상 만들자"라는 구호의 붓글씨 작품을 만들어 아시아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유럽공동체와 달리 아시아공동체는 아직은 이름뿐이지만 조금씩 실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시아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 최예용 부조정관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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