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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70년 넘게 곪아온 검찰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국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검찰 부조리의 민낯을 '대한민국 검찰실록'에서 하나씩 파헤쳐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검찰개혁!" 검찰청앞 시민들 분노 폭발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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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장관이 아닌 검찰 개혁을 구하기 위한 촛불이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검찰청 청사가 있는 서초동 거리. 이곳의 9월 마지막 토요일을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환히 밝혀주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검찰 개혁을 목표로 3년 만에 재등장한 것이다.

문재인 변호사가 김인회 변호사와 함께 2011년에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참여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상정하고 시도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역사상 처음으로'라고 했다. 해방 이후 그때까지 검찰 개혁이 단 한 번도 제대로 시도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상 처음인 그 검찰 개혁은 실패했다. 역사상 처음을 시도한 대통령은 검찰에 의한 수난을 당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조선시대에도 검찰청에 상응하는 기관이 있었다. 사헌부가 바로 그것이다. 사간원·홍문관과 더불어 사헌부는 지금의 검찰청처럼 과거시험 성적이 우수한 관료들이 배치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헌부가 오늘날의 검찰처럼 정치·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백성들이 신뢰할 만한 관청 중 하나였다.

그런 사헌부의 전통이 잘 계승됐다면 지난 토요일 그 많은 국민들이 서초동으로 몰려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한국인들을 적대하고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일제강점기 검찰 문화가 이 땅을 오염시키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이식된 검찰 문화가 해방 이후에도 계속 계승되지 않았다면, 검찰이 이처럼 두고두고 욕을 먹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문준영 부산대 교수가 쓴 '한국적 검찰제도의 형성'이란 논문은 일본이 식민지 한국에 이식시킨 검찰제도는 일본 땅의 검찰제도보다 "훨씬 더 왜곡된 모습"이었다면서 "식민지적 형사사법제도는 법제도상으로는 검사를 위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고 설명한다(<내일을 여는 역사> 제36호). 이 땅의 검찰이 식민지 보수권력 보호를 위해 과도하게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상관 심기 잘 살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2009년 5월 1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도높은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2009년 5월 1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도높은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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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에도 검찰은 보수 정치권력과 유착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확장했다. 보수정권의 편이 되어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검사를 위한 천국'을 지켜왔다. 그런 '검사를 위한 천국' 속으로 빨려 들어간 희생자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역사상 처음 검찰 개혁을 시도했던 그는 '정치보복'을 당하고 말았다.

2009년에 노무현 사건을 맡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검사들의 면면을 보면, 당시 청와대와 검찰 지도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끌고 가려 했는지가 드러난다. 이 사건 수사팀은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1과장, 이석환 2과장, 이동열 첨단범죄수사과장 등으로 구성됐다. 이 중 수사팀 리더인 이인규 중수부장과 주임검사인 우병우 1과장의 캐릭터는 이 사건에 대한 윗선의 기대를 상당 부분 반영한다고 볼 만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상관의 심기를 잘 살피는 검사로 알려져 있었다. <한겨레신문>에서 법원·경찰·검찰을 출입한 이순혁 기자가 취재나 인터뷰 등을 토대로 집필한 <검사님의 속사정>에 따르면, 주미대사관에서 법무협력관으로 파견 근무를 할 당시 박상천 법무부장관(재임 1998~1999년)이 워싱턴을 방문하자 자기 집에서 끓인 조기탕을 새벽에 박 장관 숙소에 직접 갖다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에는, 기자와 검사들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임채진 서울중앙지검장(재임 2006~2007)이 "3차장도 한 잔 받지"라고 권하자 "예! 알겠습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술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임채진은 그 뒤 노무현 사건 때인 2009년에는 검찰총장으로, 이인규의 직속상관이었다.

이인규 중수부장은 힘센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힘센 사람이 피의자가 되어 자기 앞에 오게 되면 한없이 강해지곤 했다. 일례로, 2003년 SK그룹 분식회계사건 때는 최태원 회장을 구속시켰고,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 때는 직속상관이었던 김학재 전 대검 차장을 혹독하게 수사해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김학재는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명박이 미국에서 만난 이인규
 
 2009년 6월 12일 당시 대검찰청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만표 수사기획관.
 2009년 6월 12일 당시 대검찰청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연차 게이트"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만표 수사기획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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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중수부장이 노무현 수사팀 리더가 된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단순히 위와 같은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인연이 그런 위험성을 가중시켰다.

이인규는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하기 몇 달 전인 2009년 1월 중수부장에 임명됐다. 이때 검찰 내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로부터 11년 전인 1998년, 당시 재선 의원이던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런 뒤 이듬해 미국으로 날아가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갔다가, 어릴 적 옆집에 살았던 거지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그 일화를 자서전인 <대통령의 시간> 앞부분에서 꽤 비중 있게 소개했다. 그 일화를 비중 있게 다룬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지 친구가 해준 이야기는 '이명박이 꽤 훌륭한 가정에서 성장했구나'라는 느낌을 주고도 남는다. 거지 친구는 이명박한테 이렇게 말했다.
 
"너희 부모는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는 못했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열심히 사셨지. 그러나 우리 부모는 남에게 구걸해서 너희보다 잘 먹이고 입혔어. 어른이 되고 너희 형제는 모두 성공했는데, 우리 형제들은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도 어떻게 해서 미국까지 왔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훌륭한 성장 환경'을 증언해줄 거지 친구 외에 이명박이 미국에서 만난 또 다른 '귀인'이 있다. 자기처럼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정반대 노선을 걷는 정치인 노무현을 11년 뒤 공격할 때 '선봉장'이 되어줄 인물, 바로 이인규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이었다.

시간 여유가 많았던 당시의 이명박은 공사석에서 이인규와 안면을 익히면서 친분을 쌓아갔다. 오랫동안 경영자로서 부하 직원들을 상대해본 이명박한테는 윗사람을 대하는 이인규의 태도가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이인규는 상관의 심기를 잘 '경호'하면서도 '힘셌지만 지금은 피의자가 된 사람'을 가혹하게 대했다. 거기다가 미국에서 이명박과 인연을 맺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노무현 사건을 맡았으니,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인규에 더해, 주임검사인 우병우 1과장의 캐릭터도 그런 예측에 힘을 실어줄 만했다. 6월항쟁 4개월 뒤 발간된 1987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이번 사법시험의 최연소 합격자는 서울대 사법학과 4년 재학 중인 우병우군(20)"이라고 보도됐을 정도로 두뇌가 비상했던 우병우. 국정농단 청문회 때 국민들이 그에게서 받은 느낌을 동료 검사들은 이미 옛적부터 느끼고 있었다. <검사님의 속사정>의 한 대목이다.
 
"적지 않은 (특히 선배) 검사들이 그를 두고 '실력은 좋은데 X가지가 없다'며 쓴맛을 다셨다. 너무 뻣뻣하다는 것이다. 그의 한 대학 동기는 '대학 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친구여서 별명이 기브스였다'고 말했다. 우 부장검사보다 서울대 법대 선배지만 사법시험 합격이 늦어 검찰 임관 후배가 된 한 부장검사는 사석에서 그를 가리켜 '아무리 내가 (검찰) 후배지만 나이도 많고 학교 선배인데 검찰 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쾌해 하기도 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친구여서 별명이 기브스"
 
 2011년 5월 2일 당시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확관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사건 기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1년 5월 2일 당시 우병우 대검찰청 수사기확관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사건 기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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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뻣뻣해서 '기브스'(깁스)로 불린 우병우 1과장 역시 이인규 중수부장처럼 고위층이나 그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에 상당한 의욕을 발휘했다. 26세 때인 1993년 이후로 그가 구속시킨 사람들 중에는 김일윤 전 의원, 황아무개(김영삼 전 대통령 돈줄), 신승환(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의 동생), 이형택(김대중 전 대통령 조카), 김운용 전 IOC 위원, 강신성일 의원(영화배우 신성일),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이정일 전 의원 등이 있다. 선출직 고위공직자나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수사에서 상당한 성과를 냈던 것이다.

그가 37세로서 대구지검 특수부장일 때인 2004년이었다. 어느 기자가 이 지역 카페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다. 폭탄주를 마셨으니 정신이 좀 흐릿했을 텐데도, 그 기자는 그날 상황을 똑똑히 기억한다. <검사님의 속사정>에 따르면, 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구지검 근처 한 카페였던 것 같다. 누구를 만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중년 남성 몇몇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갈수록 그쪽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제일 젊어 보이는 남자가 많이 취해 있었는데,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오버를 했다. 심지어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취한 채로 호통 치는 "제일 젊어 보이는 남자"는 우병우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백발 노인은 경북 어느 군의 군수였다. 이 일화에서도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우병우의 인식이 드러난다. 시험 성적이 아니라 '인기투표'로 지도자를 뽑는 이 세상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선출직 공직자 출신의 피의자에 대한 우병우의 호전적 태도는 노무현 수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듯하다. 국정농단 청문회 때 손혜원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우병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심문할 때 "노무현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도 아닌, 그저 뇌물수수 혐의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병우 본인은 이런 말을 했다는 점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가 예의를 갖춰 행동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이인규 중수부장과 우병우 중수 1과장은 고위층 수사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실적을 내는 검사들이었다. 게다가 팀장 이인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이명박 청와대의 정동기 민정수석비서관이 사건을 이인규-우병우 라인에 배당한 것과 관련해, 최강욱·김의겸·금태섭·이정렬·김선수 대담집인 <권력과 검찰: 괴물의 탄생과 진화>에서 김의겸 당시 <한겨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기 민정수석이 이 건을 누구한테 배당하느냐가 중요했는데, 검찰 내에서 가장 독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인규와 우병우를 거기에 넣은 거예요. 한쪽이 독하고 질주하는 타입이면 다른 쪽은 이성적으로 제어하는 사람으로 팀이 꾸려져야 합리적인데, 그러지 않고 막 몰아붙일 수 있는 두 사냥개를 갖다 푼 거죠."

검찰 개혁은 제2의 노무현 비극 막는 일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진행되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위를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진행되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주위를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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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와 우병우는 '막 몰아붙이는 사냥개'처럼 사건을 밀어붙였다. 지금 문제 되고 있는 피의사실 공표도 악용했다. 퇴임 뒤의 노무현을 위해 법률적 대응을 맡았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는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검찰과 언론이 한 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대통령을 아예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 검찰에서는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아침저녁으로 공식 브리핑을 했다. 중수부장 이하 검사들도 언론에 수사 상황을 모두 흘렸다. 심지어 검찰 관계자라는 이름의 속칭 '빨대'가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보탰다. 뇌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갖다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 소설이 단적인 예이다."

노무현 수사팀의 문제점은 이뿐만 아니었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는데도 노무현에 대한 구속까지 운운했다. 노무현 측으로부터 뇌물 요구를 받았다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 외에는 확보한 게 없는데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까지 운운했던 것이다. 노무현이 대검에서 조사 받은 2009년 4월 30일 상황과 관련해 <문재인의 운명>은 이렇게 말한다.
 
"검찰에 도착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중수 1과장이 조사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차분하게 최선을 다해 꼬박꼬박 답변을 했다. 대통령의 절제력이 놀라웠다.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도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었다. 대통령과 박 회장 말이 서로 다른데, 박 회장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 기록조차 없었다. 통화 기록이 없다는 것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증거가 없더라도 무조건 밀어붙여 노무현을 구속시킬 수 있는 검사들이 대오를 갖췄고, 그 대오 속으로 노무현이 빨려 들어간 것은 노무현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었다.

지금 추진 중인 검찰개혁이 순탄하게 이뤄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되면, 국회의원·판검사 등과 더불어 전직 대통령의 비리는 검찰이 아닌 공수처가 맡게 된다. 만약 노무현 집권기에 이런 공수처가 있었다면, 퇴임 뒤에 노무현은 이인규·우병우가 있는 곳이 아닌 비교적 공정한 데서 수사를 받았을 것이다. 이명박의 손길이 덜 미치는 곳에서 그를 둘러싼 혐의가 정말 사실인지 여부가 가려졌을 것이다.

지난 4월 29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수처 설치 법안에 따르면, 변호사협회 및 국회가 뽑은 7인의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공수처장으로 임명한다. 이렇게 검찰 권력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공수처에서 노무현 사건이 다뤄졌다면, 노무현의 운명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개혁은 제2의 노무현 비극을 막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임 중에 권력기관 개혁을 추진하고 기득권 세력에 용감히 맞선 대통령들이 퇴임 뒤 검찰을 통한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 개혁은 개혁적 대통령들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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