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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임신부다
 나는 임신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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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신 8개월에 접어든 임신부다. 비염, 식도염, 치골통, 가슴 통증, 시력 저하 등 임신으로 인한 증상들을 묵묵히 감내하고 새로 태어날 아이에 대한 설렘과 출산의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지내고 있다.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출산의 방법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임신 초기 자궁 내 피고임으로 2달, 조기양막파열로 2달여를 누워서 천장만 보고 지낸 경험이 있고 나이도 적지 않은 편이라 일찌감치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제왕절개를 하겠다고 말하니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한 사람도 있었고 의사가 혼낼 수도 있으니 허리디스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조언을 해 준 사람도 있었다. (제왕절개를 하겠다는 것이 혼날 일인지 처음 알았다.)

곱지 않은 시선

나처럼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자연분만을 하지 않고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를 '선택제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선택제왕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임신·출산 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주제가 이것인데 선택제왕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댓글이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해라'라는 내용이다. 그렇게 조언을 하는 이유는 자연분만이 산모의 회복이 빨라 산모에게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다는 것인데, 산모의 회복이 빨라 산모에게 좋다는 것은 누구를 기준으로 한 것일까.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몸의 상태도 다 다른데 자연분만의 방법이 더 회복이 빠를지 느릴지 어떻게 장담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연분만으로 눈의 실핏줄이 터지고 회음부가 심하게 찢어지고 치질이 생겨 화장실도 못 가 일주일 이상 혹은 더 길게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제왕절개가 회복이 느리다고들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훗배앓이도 없이 다음 날부터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다.
 
 MBC 교양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출산 방법으로 인해 가족 간에 갈등이 발생했다.
 MBC 교양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출산 방법으로 인해 가족 간에 갈등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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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라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김재욱의 부인 박세미가 출산 방법을 놓고 시부와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의사가 산모가 위험할 수 있으니 제왕절개가 좋겠다고 권했는데 이를 듣고도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의 아이큐가 안 좋다'며 '자연분만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순산하기는 했으나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모가 위험할 수 있다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자연분만을 고집해야 할 만큼 아이의 아이큐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인가. 그것도 본인이 아닌 제삼자인 시아버지가.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해도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판국에 선택제왕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임신·출산 서적에 선택 제왕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으며 제왕절개는 반드시 불가피한 경우에만 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도 출산에 대해 강의할 때 제왕절개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한다. 대부분 자연분만 하겠지만 그게 안 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어떤 임신부는 미용실에서 선택제왕에 대해 미용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처음 보는 아주머니들로부터 '선택제왕 하는 사람들은 애 낳는다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며 혼이 났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선택제왕을 결심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하고 비난받을까 두려워'하며 '남편을 설득해 시어머니에게 의사가 권했다고 거짓말 하겠다'고 말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열 달 동안 음식 가리고 고통을 참으면서 힘들게 아이 품어 이제는 목숨 걸고 낳아야 하는데 임신부들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남편, 시부모, 의사, 모르는 사람 심지어 세상까지.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그 누구에게도 쉬운 출산은 없다.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명의 상황이 있고 백 번의 출산이 다 다르다. 그러나 확실한 건 모든 출산은 다 힘들다는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오롯이 임신부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도 같다. 왜 유독 출산, 모유 수유 등 엄마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훈계하고 간섭하려는 사람이 많은 걸까.

내가 임신을 하자 조언 혹은 간섭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떤 음식은 먹으면 안 되고 어떤 행동은 하면 안 되고, 우리나라 임신부들은 많이 안 움직여서 문제니 많이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등 물론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해주는 말인 것을 알아 고맙게 받아들이지만, 임신한 순간 나라는 사람을 오로지 아이를 품고 있는 몸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내 몸이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가진 몸은 내 몸이다. 내 몸은 국가의 것도 사회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가진 몸은 내 몸이다. 내 몸은 국가의 것도 사회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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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출산, 모유 수유 문제가 남았다. 내 몸에서만 일어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온전히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 그러나 모두가 어떻게 하라고 조언 또는 간섭할 수 있는 일. 내 몸은 나의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의 것만이 아니었다. 나의 것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것이고 사회와 국가의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 학교에서는 교복 안에 끈나시를 입으면 야하다고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했으며 성교육 시간에는 순결 캔디를 먹으며 순결 선서를 했다. 대학 다닐 때는 살만 빼면 더 예쁠 것 같으니 다이어트를 하라는 조언을 남자 동기에게 들었다. 결혼 후 아이가 없다고 하니 요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비난받았고(등산 갔다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실제로 들은 말이다.) 아이가 생긴 후에는 내 몸에서 일어날 출산과 모유 수유에 대해 나도 모르게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그때는 내 몸이 나의 것이 될까? 내 몸이 나의 것이었던 적이 있기는 할까?

아이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가진 몸은 내 몸이다. 내 몸은 국가의 것도 사회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다. 내 몸에 대해 누가 뭐라고 떠들어도 나는 내 몸과 내 삶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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