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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의 도산 안창호 애도문( <조선민족전선> 창간호, 1938.4) 김성숙의 도산 안창호 애도문( <조선민족전선> 창간호, 1938.4)
▲ 김성숙의 도산 안창호 애도문( <조선민족전선> 창간호, 1938.4) 김성숙의 도산 안창호 애도문( <조선민족전선> 창간호, 1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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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동장치가 안된 일제의 해외팽창 야욕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일본군은 만주에 괴뢰정부를 세운 후에도 군사력을 화북으로 이동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이런 상태에서도 중국은 장개석의 국민정부와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이 계속 대립하고 있었다. 양측은 1936년 12월 시안(西安)사건을 계기로 내전을 중지하고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루었다.

일제는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 노구교사건을 조작하고, 본격적인 중ㆍ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중원을 거쳐 12월에는 국민정부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면서 30만 명의 시민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중ㆍ일전쟁은 김성숙을 비롯한 한국독립운동가들이 바라던 일이었다. 일제는 중국을 침략하면서 '동아신질서의 건설'을 내세웠다. 동아시아에서 구미세력을 축출하고 일본을 맹주로 하는 아시아인에 의한 새로운 아시아의 건설이라는 허황한 구호였다. 반면에 한국독립운동가들은 이 전쟁을 잘 활용하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김성숙은 대륙의 정세를 지켜보면서 중국의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자 재충전기를 벗고 활동에 나섰다. 1936년 박건웅ㆍ김산 등 공산주의자 20여 명과 기존의 조선공산주의자동맹을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하였다. 지금까지 조선공산주의자동맹은 중국혁명을 위해 싸워왔는데, 이제는 조선민족의 해방을 1차적인 목표로 제시하는 탈바꿈이었다.

이 무렵 그는 중국공산당의 당적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족해방동맹의 결성에 관한 김성숙의 회고담을 들어보자.

조선민족해방동맹을 만들 때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전부 중국공산당원이 되어 버렸다. 조선공산당이 중국공산당이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 혼자만이라도 조선혁명을 하도록 노력해보자. 그런데 나 말고도 중국공산당에 들어가지 않은 채 조선의 공산운동이나 조선의 혁명에 몸바치려는 동지들이 있지 않느냐? 이들이 함께 일할 곳을 만들자."

이래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만들었지요. 이 이름 안에 공산주의라는 말을 넣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산주의보다 조국의 해방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 단체를 공산주의 단체로 본 것은 사실입니다. 임정에서도 우리를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주석 1)


1930년대 중국관내에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노선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거리는 망명객의 처지에서 중국혁명과 항일운동을 목표로 하는 중국 측과 함께하면서 구체적인 한국의 독립운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김성숙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다.

하여, 조선공산주의자동맹을 과감히 떨치고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한 것이다. 여기에서도 그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살피게 한다.

그때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었어요. 민족주의를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하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강조한 마르크시즘 - 레닌이즘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여기에 맞서니 나와 내 동지들은 "민족문제가 더 크다. 민족이 독립된 뒤에야 공산주의고 사회주의고 무엇이든지 되지 민족의 독립이 없이 무엇이 되느냐"라고 역설했지요. 그리고 "우리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전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이다. 이 민족주의와 합작해서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주석 2)

중ㆍ일전쟁이 발발하고 상하이도 함락위기에 놓였다. 중국 관내 독립운동 진영은 짐을 꾸려 난징으로 이동하고, 김성숙이 주도하는 조선민족해방동맹도 상하이를 떠나 난징으로 옮겨갔다.

김성숙은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한데 이어 좌파 통합체로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민족주의 우파세력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민족주의 좌파세력은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각각 결성했다.

조선민족전선연맹은 1937년 11월 한커우(漢口)에서 조선민족혁명당(김원봉)ㆍ조선민족해방동맹(김성숙)ㆍ조선혁명자연맹(유자명)의 세 단체가 단체본위 조직원칙에 의거하여 조직한 민족주의 좌파세력의 연합전선이다.

김성숙은 조선민족전선연맹의 상임이사 겸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며, 기관지 『조선민족전선(朝鮮民族戰線)』의 편집을 책임맡았다.

김성숙은 기관지 『조선민족전선』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필력을 보여주었다. 현재  5개호가 남아 있는데, 그가 집필한 논설이다.

 '조선민족전선'에 게재한 논설 (주석 3)
 
‘조선민족전선’에 게재한 논설 ‘조선민족전선’에 게재한 논설
▲ ‘조선민족전선’에 게재한 논설 ‘조선민족전선’에 게재한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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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이 의욕적으로 결성한 조선민족전선연맹(연맹)은 의열단을 축으로 하는 김원봉과 아나키스트 유자명 세력과의 통합체였다. 이들은 이념을 함께하는 동지적 관계에서, 그동안 중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따로 활동하다가 다시 결속하게 되었다.

중ㆍ일 전쟁으로 인한 정세의 변화는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ㆍ연대를 요구하고 있었다. 민족주의 우파세력이 한국광복운동연합(연합)을 결성한 데 대한 대응조처의 성격도 띄었다.


주석
1> 『이정식 면담록』, 97쪽.
2> 앞과 같음.
3> 김광재, 앞의 책, 8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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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