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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 말
 
최근 안산에서 대안교육을 받으러 온 3명의 중학생들을 만났다. 1명은 흡연과 기물파손, 학교 탈의실에서 폭죽을 터트린 일로 교육을 받으러 왔고, 나머지 2명은 학교폭력 문제로 왔다고 말했다. 예민하게 내 신경을 건드리는 단어가 거기 섞여 있었는데, 바로 '집단폭행'이었다. 5명의 학생들이 1명의 학생을 공원으로 불러내서 집단으로 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피해학생이 험담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덩치가 있는 학생을 단 둘이서 제압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이 두 명의 남학생은 고등학생 2명과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이 집단폭행에 가담시켰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집단폭행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데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집단폭행에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가담시킨 것으로 보아, 요즘의 학교폭력은 더 넓은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 폭력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크가 한 학교에서 또 다른 학교로까지 뻗어있다는 이야기다.

무서운 것은 학교폭력이 점점 집단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적인 폭력은 저인망처럼, 그 어떤 학생이든 그것으로부터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여기서 도망치면 저기서 다시 잡히는 시스템이다. 가해학생들을 강제로 전학시켜도 폭력의 메아리를 쉽게 잠재울 수가 없다고 한다. 가해학생들은 핸드폰으로 SNS로, 특정 피해학생의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10여명의 학생들이 동료 학생을 괴롭혀 학폭위의 조치를 받았다.
 무서운 것은 학교폭력이?점점 집단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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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집단폭행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몇 년 전, 한 남학생이 열 명이 넘는 가해학생들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집단폭행을 당했던 사건이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도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가담한 그야말로 사전에 계획된 잔인한 폭력 그 자체였다. 사건 이후, 나는 피해학생의 어머니와 연락을 하면서 눈물겨운 사투의 과정들을 함께 따라갔다. 나 또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머니로부터 새로운 메시지를 받았다. 연이은 고소와 항소, 길고 긴 싸움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는데, 민사재판의 최종선고가 나왔다고 하셨다.
 
결과는 피해학생 측의 '패소'였다. 당연히 승소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어머니는 이번 패소결과가 이미 잘못을 인정한 주요 가해학생 부모들의 합의금반환소송 또한 연이어 만들어낼 것이라고 걱정하셨다. 가해사실이 명확한 가해학생조차 거듭 진행되는 소송과 재판에 의해서 결국 '큰 잘못이 없다'는 쪽으로 서서히 선회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피해학생은 잘 다니던 학교를 떠나, 지방에 있는 기숙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집단폭행 사건 이후에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평온한 학교생활이 무너졌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소송과 재판으로 피해학생은 고통을 겪고 있어서 여전히 학업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학교폭력 사건 이후에 피해학생과 그 가족들이 겪는 일상일 것이다.
 
"지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며 죽고 싶다는 말에 제가 아이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꾹 참고 아이의 의견을 물으니 그래도 꼭 이 학교에서는 졸업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오늘은 혼자서 울었습니다."

"분노감과 상실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감당이 안 되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입니다."

"세상의 결론은 끝까지 사과 안 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정답이네요. 불공정한 세상에 다시 입문했습니다."


어느 날 벌어진 집단폭행 사건 때문에 결국 어머니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현실이 나는 마음 아팠다.

"아이는 나아지는 것 같다가 다시 퇴행하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피해학생은 집단폭행 사건 이후에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을 자주 만나는듯했다. 정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학업에도 상당한 지장이 생겨서 여러 가지 불편을 겪고 있었는데, 이번 패소로 인해서 더 큰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정신질환은 착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많이 걸립니다. 남에게 스트레스나 미움, 분노 등을 풀어내지 못하고 자신이 다 감당하고 참고 지내다가 뇌기능장애가 오는 겁니다. 악한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아요. 악한 사람들은 순수한 사람들에게 그 스트레스를 다 떠넘겨 병들게 하고 자신들은 살아남죠."
 
뇌질환 르포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를 펴낸 김영철 목사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악한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잘 떠넘겨 결국 자신은 살고, 타인은 죽이는 자들이 아주 교묘하게 이 사회에 숨어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말 그대로 피해자인 어머니와 그 아들은 지금 심리적으로 아니, 현실적으로 낭떠러지에 몰려 있다. 그러나 가해자 무리들은 떵떵거리면서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인 양 소송을 걸거나, 또 다른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가해자로부터 '진심어린 반성' 발견할 수 없어
 
때론 학생들 마음의 방어막을 찢고 들어가 분명하게 소리쳐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죽어가는 양심에 심폐소생술과도 같은 압박을 주어야 하는 일이다
 
나는 대안교육에서 만난 두 명의 집단폭행 가해학생들을 정말로 호되게 꾸짖고 싶었다. 화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집단폭행을 했다고 합리화하는 가해학생들의 말법은 이 사회의 잔인한 힘의 논리와 닮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두 명의 학생들에게서 진심어린 반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학생시절 친구에게 주먹으로 맞았을 때, 맞은 내 귀에서, 그 뜨거운 통증으로 부어오른 내 귀에서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더 무수한 폭력이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폭력이 두려워 굴복한 그 당시의 나처럼, 지금도 여전히 어떤 변화를 포기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엇나간 그들을 인간적인 삶의 방향으로 다시 최대한 끌어당겨 주려고 노력했다. 끌어당겼으나, 그들이 어디에 위치할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벌였던 일들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반성했노라고, 제출한 3장의 A4용지를 뒤로 하고 그들은 어디론가 우르르 몰려나갔다. 자꾸 반성해야 할 말들은 그들의 시간 속에서 늘어나겠지만, 그 말들은 얼마나 오래 날아가서 피해자들의 마음에 닿을 것인가. 다음 강의를 위해 동탄으로 넘어가는 길에 폭우가 쏟아졌다. 와이퍼를 최대로 돌려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집단폭행을 주도했던 한 학생의 반성문이다.
 집단폭행을 주도했던 한 학생의 반성문이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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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한 반성이 들어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진실한 반성이 들어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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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폭행을 당한 학생은 흠뻑 젖었다가 마른 책과 같다. 물기는 사라졌지만 책의 모양과 질감은 처음과 달라져 있으니까 말이다. 서로 들러붙은 마음의 책장이 찢어지지 않게 우리는 조심조심 보듬어가면서 넘겨야 할 것이다

아픈 아들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피해학생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써내려간 한 편의 시가 있다. 많은 분들이 읽었다지만 과연 현실은 얼마나 그것을 예의주시하고 있을까.
 
(…) 그녀의 피켓 속에선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녀가 그걸 어떻게 쓴 줄 안다. 빨갛게 되도록 엎드려서 피켓 하나를 완성한다. 짤막한 문장 속에서 일만 이천 명의 비명이 절벽 절벽 떨어진다. 어미의 등을 터트리고 나오는 거미 같은 소란을 상상하며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런 사실을 하나도 모르고 있는 가해학생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태평성대의 시절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학생은 말한다 무엇을 위한 처벌 입니까? 나는 파일럿이 되고 싶단 말입니다 (…) 모든 방과 후는 미래로 미래로 다독이는 길을 터주고 있단 말입니다. 귀찮은 수갑 더 듣기에 무료한 수갑 이야기는 그만하세요. 수갑은 수갑의 주인에게 무죄의 열쇠를 함께 건네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난들 어쩌라고요.
 
아직.
 
거기 서 있다.
 
그녀가 거기 서 있다. 눈을 맞고 눈을 쌓이게 하면서 그녀가 거기 서 있을 때, 신문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해학생에게서 휘파람이 나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가해학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비어져 나오는 것은 참 경이로운 일이다. 얼마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가. (…) 비껴간 정답은 아직도 모색하는 자에게만 안타까운 것. 가슴을 치게 만드는 것. 괄호 속에 들어가 있는 아들의 글씨를 내려다보면서 울고 있는 자는 가족들뿐. 누가 커터칼로 교복 가슴께를 박박 긁어도 거기 새겨진 이름을 잊지 않는 건 맨 앞에 나와 있는 사람뿐이다. 開腹된 사람이다. 심장이 반쯤 꺼내어진 사람. 그러면 제발 그러면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울부짖는 것도 죽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도 오로지 맨 앞으로 뛰쳐나온 사람뿐이다. 총알받이처럼 총을 맞기도 전에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사람뿐이다.
 
-김승일 시인, 「멎을 것 같은 사람」 일부
 
반항하는 수준을 넘어 집단폭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학생들을 일상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된다면, 대화 이외에 어떤 교육의 이름으로 나는 거기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선생다운 것일까.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집단폭행에 가담한 학생들이 왜 자꾸 잘못된 자기 방어기제에 갇혀서 소통불능의 문제들을 일으키게 되는지 더 본질적인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집단폭행 가해학생들의 부모님은 어떤 분들일까, 자꾸 상상하게 된다. 그 가정의 보이지 않는 면면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폭력성을 자꾸자꾸 떠올리게 된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점 증가하는 이 집단적 폭력성의 배후는 과연 무엇일까.
 
비가 내린다. 학교폭력으로 절규하고 있을 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오늘도 들린다.

덧붙이는 글 | [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지난 7호부터 <오마이뉴스>에서만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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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