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한 시민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쓴 편지가 놓여 있다.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한 시민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쓴 편지가 놓여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한국의 척박한 정치풍토에서 노회찬 의원의 죽음은 많은 문제를 남겼다.

'멸균실 수준'의 반공이데올로기 체제에서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온갖 간난신고를 무릅쓰며 진보의 영역을 확보하고, 아직 태동 단계이지만 보혁(保革) 두 바퀴로의 정치구도에 시동을 걸었다. 이런 역할에 그의 공로는 적지 않았다.

해방 이후 진보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여운형은 암살되고, 혁신정치의 기수였던 조봉암은 사법살인당하고, 꺼진 진보의 불길을 되살려 모닥불을 피워서 사람들을 모았던 제3주자 노회찬은 자살하였다.

진보의 대표급 주자들이 암살ㆍ사법살인ㆍ자살로 이어질만큼 한국정치는 극우와 우파 일변도의 파행이 계속되었다.

어디선가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이 땅의 진보는 아직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은 진보가 정당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오히려 이 참을 수 없는 세상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장례는 국회장으로 7월 27일 국회광장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사망 당일인 23일에는 3,000여 명, 24일에는 5,600여 명, 25일에는 12,000여 명, 추도식이 열린 26일에는 28,000여 명의 추모 시민들이 방문했다 .이 수치는 방명록에 근거한 것이고 실제 조문객은 훨씬 더 많았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 빈소에 있는 추모글 노회찬 정의당 의원 빈소에 있는 추모글
▲ 노회찬 정의당 의원 빈소에 있는 추모글 노회찬 정의당 의원 빈소에 있는 추모글
ⓒ 신지수

관련사진보기

 
국장이 아닌 일반 정치인의 빈소에 이처럼 많은 추모 시민이 참례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의 죽음은 슬픔을 넘어 시민들의 마음을 저리게 하였다. 그래서 빈소를 찾고 영결식에서 옷소매를 적셨다.

국회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는 3,000여 명이 참석하고, 생전 지역구였던 창원을 비롯 전국 여러 곳에 분향소가 마련되고 많은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고인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에서 상임장례위원장인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에서 상임장례위원장인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다음은 영결식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추도사이다.

꼭 필요한 사람, 노회찬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이자 아버지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1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편이 1명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게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 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