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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를 대표하는 사이가와(犀川)강은 봄날의 따사로움과 설렘이 느껴지는 동화 같은 강이다. 봄이 되면 사이가와 강변을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이토록 설렘이 가득한 사이가와강에 흐르는 설움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는 법. 나의 소소한 역사 이야기가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진 동화 같은 풍경을 더욱더 애틋하게 만들길 바란다.

윤봉길 의사의 순국지 가나자와. 지난 두 편에 걸쳐서 윤봉길 의사가 생애 마지막 밤을 지새운 가나자와성 (구)육군 위수구금소와 마지막 숨을 거둔 이시카와현 전몰자 묘원에 관해 이야기했다.

[관련기사 ①] 공중화장실이 되어버린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자리
[관련기사 ②] 윤봉길 의사 시신을 인도 밑에... 국권을 지키지 못한 슬픔

가나자와성과 이시카와현 전몰자 묘원은 큰 강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데, 바로 그 강이 사이가와강이다. 즉, 사이가와강은 윤봉길 의사가 생애 마지막으로 건넌 강이기도 하다.
 
이시가와현립 역사박물관 모형 : 사이가와강 오하시다리 .
▲ 이시가와현립 역사박물관 모형 : 사이가와강 오하시다리 .
ⓒ 김보예(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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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역 주변 시내 관장지도 .
▲ 가나자와역 주변 시내 관장지도 .
ⓒ 김보예(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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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의 슬픔이 흐르는 사아가와강

그런데, 사이가와강에는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숨결뿐만 아니라 강제노역의 설움이 함께 흐르고 있다. 아래의 시는 반전을 이야기하는 '센류(川柳)' 작가 쓰루 아키라가 조선인 노동자의 설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반도 태생(半島生まれ)
-쓰루 아키라(鶴彬)/국문번역: 김보예(필자)
반도 태생이라 헐값에 생매장되네
半島の生まれでつぶし値の生き埋めとなる

일본인 못지않게 땀 흘리나, 절반 임금에 광차를 민다오
内地人に負けてはならぬ汗で半定歩のトロ押す

절반 임금만큼만 일하면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고함치네
半定歩だけ働けばなまけるなとどやされる

여보라는 모욕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조선말이 나오오
ヨボと辱められて怒りこみ上げる朝鮮語となる

쇳덩이를 등에 진 젋은 인간 기중기, 휘어지는 등뼈
鉄板背負う若い人間起重機で曲がる背骨

조국을 빼앗은 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통곡
母国かすめ盗った国の歴史を復習する大声

갈 곳을 잃은 겨울, 정처 없이 떠도는 판자촌 (조)선인들
行きどころのない冬を追っぱらわれる鮮人小屋の群れ

-『火華』(화차)1936년 2월호 중

'반도 태생이라 헐값에 생매장되네'의 '생매장'에 대해 연구자 데라우치 데츠조(寺内徹乗)는, 『鶴彬通信はばたき』(쓰루 아키라 통신 날갯짓) 31호( 2018년 1월 21일)에 쓰루 아키라가 사이가와강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가나자와시 사이가와강 사건'이란, 사이가와강에서 일어난 인명피해 사건을 말한다. 1929년 11월, 사이가와강 상류의 상수도 배수관 부설공사 중, 흙막이(토압/수압에 저항하는 벽)가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인부 7명이 흙더미에 그대로 파묻혔다.

그런데 인명 구조 작업에서 일본인을 먼저 구조하는 차별이 벌어졌다. 교수 고바야시 데루야(小林輝冶) 는 『石川近代文学全集』(이시가와 근대 문학 전집)에 사이가와강 사건을 언급하며, 조선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강제연행의 역사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반성한다며 참회하는 마음을 전했다.

<마이니치 호쿠리쿠 신문>(北陸毎日新聞)은 1929년 11월 23일 흙더미에 파묻힌 인부 7명 중 3명이 죽었으며, 사망자 3명 중 2명이 조선인이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생명의 평등성 문제로 큰 논란이 됐다.

1929년 조선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위금 지급'과 '노동 조건 개선' 그리고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쟁의(爭議)가 일어났다. '조위금 지급'은 일본인 노동자와 연대하여 받아냈으며, 다음 해(1930년) 4월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가 함께 '이시가와현 자유노동자 연합'을 결성했다.

'반도 태생'에 쓰인 "생매장"이라는 표현이 '사이가와강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프롤레타리아 시인 모리야마 게이(森山啓, 1904~1991)의 작품 때문이다. 1930년 2월, 모리야마 게이는 지난해(1929)에 자신이 창간한 프롤레타리아 잡지 『戦旗』(전기)에 '생매장'(生き埋め)'이란 시를 실었다. 모라야마 게이의 '생매장'은 '사이가와강 사건'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모리야마 게이(森山啓)의 ‘생매장’(生き埋め)’ .
▲ 모리야마 게이(森山啓)의 ‘생매장’(生き埋め)’ .
ⓒ 김보예(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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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매장(生き埋め)
-모리야마 게이(森山啓)/국문번역: 김보예(필자)
(1)
땅속에서 끄집어낸 아버지의 유해를 끌어안은
사랑스런 딸아.
목메어 흐느끼는 너의 울음은
스며들 것이니, 사이가와 하천 마을의 숲에도 강에도
그리고 흙막이 토공의 거친 가슴에도.

掘り出された父親のなきがらを抱き
いとしい娘よ
お前のむせび泣きは
沁み入るやうだ、犀河村の森にも川にも
またおいち土工の荒くれた胸にも。

(2)
삽을 쥔 채 무너진 흙막이 아래에
생매장된 동지들이여.
처자식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울지 않았나!
사람 냄새 사라진 숙소를 보아라, 이런고로 우리가 투쟁을 일으킨 것이니.
이백 명 동지는 시위를 벌이며 행진하노라, 진눈깨비 내리는 마을로!
-조선 태생, 일본 태생, 모든 노동자의 눈물과 분노를 손에 쥐고.

シャベルを握ったまゝ土砂崩れの下に
生き埋めになつた仲間達よ
女房子供の誰が狂ふやうに泣かなかつたか!
人気ない飯場を見ろ、それ故においらは闘争に起こつたのだ。
二百の仲間は示威の列して引き上げる、みぞれ降る村を町へ!
―朝鮮生れ、日本生れ、みな労働者の涙と怒りをもつて。

(3)
굳게 다문 입술을 희미하게 떠는
사랑스런 딸아.
아버지의 조의를 위해 너는 왔구나, 투쟁 속으로.
-너의 결의는
걷잡을 수 없게 우리의 불길에 부채질하노니.
이윽고 눈보라가 산에서 몰아칠 것이야, 습격하라!
우리는 죽은 동지와 우리의 승리를 위해 싸우리라!

結んだ唇をかすかに慄はせ
いとしい娘よ、
父親の弔ふためにお前は来た、闘争の中へ、
―お前の決意は
おいち荒くれを火焔に煽る
やがて吹雪は山から襲ふだらう、併し襲へ!
おいらは亡き仲間とおいらの勝利の為たゝかふ!

-『戦旗』(전기) 3권 1930년 2월호 중

'절반 임금'의 의미

쓰루 아키라는 평소에 모라야마 게이의 직설적인 표현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때문에 '사이가와강 사건'을 모리야가 게이의 시에서 착안해 '생매장'이라 표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반도 태생'에 쓰인 시어들에는 당시 시대적 배경에 녹아 있다.

"일본인 못지않게 땀 흘리나, 절반 임금에 광차를 민다오 / 절반 임금만큼만 일하면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고함치네" : '절반 임금'은 일본인 받는 임금의 반값에 노동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의미한다.

"여보라는 모욕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조선말이 나오오" : '여보(ヨボ)'는 '선인(鮮人)'과 같이 조선인을 비하하는 별칭이었다. 우리에게 '여보'란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애칭이기에 왜 '여보'가 비하 표현으로 사용됐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을 터.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이 많이 사용하는 말에서 비하의 표현을 포착하고자 했을 것이다. 개인 소견으로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부르를 때 쓰는 '여보게', '여보시오' 등의 어휘가 발단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갈 곳을 잃은 겨울, 정처 없이 떠도는 판자촌 (조)선인들" : 조선인들의 열악했던 거주 환경을 뜻한다.

모리야마 게이의 '생매장'에서 "목메어 흐느끼는 너의 울음은 / 스며들 것이니, 사이가와 하천 마을의 숲에도 강에도"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가운데 '사이가와 하천 마을'은 사이가와 강변에 생성된 마을을 뜻한다. 사이가와 강변은 지반이 약해 집짓기 좋지 않은 토지로 에도시대부터 빈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재일교포 박현택씨('윤의사 암장지 보존회'와 '월진회 일본지부' 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사이가와 강변에 강제노역으로 끌려 온 조선인들이 무리 지어 살았고, 강물이 불을 때마다 집에 물이 들어올까 늘 걱정이었다고 했다.

매서운 겨울, 방한시설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 물까지 넘쳐 들어오면, 조선인들은 갈 곳을 잃은 채 정처 없이 떠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일본 정부가 실시한 '사아가와강 조경 관리 계획'으로 인해 조선인 촌락은 현재 사라진 상태다.
 
사이가와강 전경 .
▲ 사이가와강 전경 .
ⓒ 조현준(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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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자락이자 4월의 문턱인 어느 날. 사이가와강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줄 알았는데,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강줄기는 거칠고 빨랐다. 내 심장도 강줄기를 따라 거칠고 빠르게 뛰었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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