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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다와 초이 부부가 처음 작업실로 삼은 것은 성수동의 작은 사무실 한 구석이었습니다. 제품을 연구하고 생산하는 공장형아파트였으니, 둘의 창조작업과 아예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둘은 공동 작업을 도모했지만, 한계가 컸습니다.

두 번째로 얻은 곳은 1962년도에 지어진 뚝도시장 사거리 낡은 건물의 이층이었습니다. 전시장과 작업실을 함께 얻을 수 있어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그러나 그해 겨울, 배수관이 터지면서 물에 잠겼죠.

세 번째 공간이 현재의 공간입니다. 지하이긴 하지만, 넓고 방음이 확실하고, 뚝섬역 8번출구에서 접근하기도 좋습니다. 성동구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창작소, 판화공방 미니프린트 이야기입니다. 사만다 블루멘필드와 최승현은 공동작업실과 공동침실을 쓰는 부부작가입니다.
 
판화공방 미니프린트에서 (왼쪽) 사만다 블루멘필드와 최승현 작가.  왼편 위에 걸린 판화내용은 “사랑과 함께 추방당하다.” 프랑스 작가 SP38가 통독후 독일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 경험을 담았다.
▲ 판화공방 미니프린트에서 (왼쪽) 사만다 블루멘필드와 최승현 작가.  왼편 위에 걸린 판화내용은 “사랑과 함께 추방당하다.” 프랑스 작가 SP38가 통독후 독일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 경험을 담았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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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안 사무실과 이층 작업실 그리고 지하실'로 이어진 이력은 모든 평범한 젊은이들의 첫초상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와 예술의 댓가로 선택한 혹은 강제받은 가난.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인 걸요.

사만다는 뉴욕과 가까운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변의 반대가 여럿이었지만, 판화를 선택해 공부했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뉴욕으로 이주한 최승현은 일러스트를 공부했습니다. 고등학교때, 친구의 여자친구로, 친구의 남자친구로 '4각관계'의 한 부분이었던 둘은 판화로 의기투합이 됐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활의 예술'로 지향성을 가졌다는 점도 비슷했죠. 군복무를 하고 한국에 자리잡은 승현을 따라 사만다는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방의 땅 성수동 정착할 때, 많은 이들이 도왔다

둘의 중심작업은 실크스크린이었습니다. 감광작업이란 전문적 단계만 옆에서 도와준다면, 누구나 쉽게 작품을 만들고, 누릴 수 있는 형식입니다. 그것을 최승현 작가가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현재의 미니프린트 공간에서도 일과를 마친 직장인, 주부들 그리고 학생들이 커뮤니티를 이루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크스크린은 다색(多色)도 가능하고, 종이뿐 아니라 옷과 천 등 확장된 오브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미니프린트에서 지난 5월 10일 초이와 사만다를 만나 그간의 활동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만다는 한국어로도 작업을 설명해 주었죠.

- 성동구 성수동에 작업실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저희가 처음 공간을 가진 곳은 이런저런 제품개발을 하던 R&D 회사였었어요. 특히 가전제품 포함해 여러 분야의 제품을 의뢰받아 솔루션을 제공해주던 지식코어건물이었는데, SP38(Sylvain Perier)이란 작가분과 연결이 됐어요.

이 분은 프랑스 스트리트아트 작가이신데, 실크스크린 등 판화작업을 해온 분이고, 뚝도시장과 문래동 등에서 레지던시 활동을 하고 계셨거든요. 베를린에서도 거주하셨는데, 낡은 구도심에 애정이 많은 분이었어요. 독일 통일후, 구동독 공간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됐다 하시더라구요. 그분이 뚝도시장 뚝도청춘 사업을 알려주셨어요. 김강 단장님을 연결해 주셨어요. 뚝도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죠."

뚝도시장은 한때 서울의 3대 시장이었다지만, 지금은 쇠락한 구도심이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한때 뚝도시장엔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걸을 만큼 많은 이들이 찾았었지만, 지금은 성수동 주민들조차 아는 분이 별로 없는 곳이어서 그렇습니다.

이곳에 숨결과 생기를 불어넣고자 젊은 창업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돼 왔습니다. 김강은 그 사업의 단장이었죠. 미니프린트는 2017년 가을에 청춘방앗간, 총각네술상밥상, 삼미식당, 웨그앤코, 성수사진과 화담, 황당애장어, lab29@뚝도 등 다른 여덟 청년들과 함께 뚝도시장으로 이사를 합니다.

"뚝도시장에선 전시공간을 따로 운영했어요. 작업실 앞이었죠. 작가들께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어요. 이난영 작가님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가 기억나네요. 우리가 쓰는 두루마리 휴지에 꽃그림을 일일이 그려 천장부터 바닥까지 휘장처럼 내린 설치작품이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것이었어요.

난영 작가는 수산시장 수족관 안에 눕는 퍼포먼스도 하셨었어요. 사장님께서 그걸 허락했죠. 생선들과 함께 물 안에 있었죠. 저희 공간선 그걸 직접 행할 수는 없으니까, 사진 전시를 했어요.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전시. 어머니를 주제로 해서는 오신 분들 모두 머리를 빗겨 드렸죠."

 
뚝도시장 시절의 미니프린트.  서울시의 마을예술창작소 시원을 받았다. 전용전시공간이 따로 있어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낡은 건물 배수관이 작업실을 덮쳤다. 현재는 서울숲길 지하실에 작업실을 뒀다.
▲ 뚝도시장 시절의 미니프린트.  서울시의 마을예술창작소 시원을 받았다. 전용전시공간이 따로 있어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낡은 건물 배수관이 작업실을 덮쳤다. 현재는 서울숲길 지하실에 작업실을 뒀다.
ⓒ 마을예술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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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공간은 따로 전시공간을 마련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작업대를 치우면 넓게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크고 넓은 벽면은 영사막으로 적당하죠. 이곳은 이곳 나름대로 공연과 전시를 합니다.

"민중음악회를 열었어요. 사물놀이 공연을 진행했어요. 영화제도 했는데, 미국의 서브컬쳐를 소개했어요. 미국 펑크문화를 다룬 다큐 같은 걸 상영했죠."

"학생들과 작업하고 싶어요." 미니프린트엔 '작은이' 뜻 담겨

공간에선 입양아연대와 함께 전시회도 진행했습니다. 입양이라는 경험을 음악과 작품전시로 풀었죠. 준비를 하면서 많은 걸 들었습니다. 입양은 버려진 아이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성인으로 인정되는 열아홉 살까지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은 '정착금' 300여만 원쯤을 받고,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들 앞에 남은 삶은 떠도는 것이었죠. 약하고 작은이들과 연대해 소수가 찾아올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런 작업들. 그들은 지역 주민 특히 어린 학생들과도 작업을 하고 싶어했다.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사회에 유익한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사만다와 초이를 도운 이들은 또 있었습니다. 성수동에 훨씬 더 일찍 자리잡았던 중견 판화작가 남천우(프린트아트리서치센터)도, 예술행정가인 김윤환(도시사회연구소) 작가도 이들을 물심양면 도왔죠. 거명되지 않은 더 많은 이들이 두 사람과 함께 했을 것입니다. 둘은 받은 도움을 꼭 온 방향으로 피드백하지는 않고, 더 여러 방향으로 튼 것이었죠. 미니프린트라는 이름에도 그런 뜻이 들어있죠.

"미니프린트는 소량의 작은 작업이라도 하실 수 있게 해 드려요. 다른 곳서는 거절된 작품도, 저희는 다 받아요.(웃음) 일단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죠."

'작은'이란 말엔 큰 뜻이 있습니다. 관료화되지도, 성장을 최우선하지 않을 거란 다짐이 '작은'이란 말엔 들어있죠. '작은도서관'이 붙여써서 고유명사로 쓰듯 말이죠. 최승현 작가는 최근 의뢰받았던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1980년대, 엄혹한 시대에 불온한 작품으로 기소되면서 빼앗긴 목판화를 최근 찾은 어느 작가의 목판화를 인쇄로 찍어준 것입니다. 키를 훨씬 넘은 그 거대한 판화가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두 작가, 사만다 블루멘필드와 최승현은 자신의 작품도 선보일 것입니다. 오는 6월 8일부터 22일까지, 그들의 동네 성수동서 열리는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 전시회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민화를 어떻게 풀까요? 어쩌면 이방의 땅이었을 이곳에, 그들이 또렷하게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시간일 것입니다. 형태를 얻지 못했던 페인트들이 실크스크린을 거쳐 바탕에 달라붙는 것처럼. 어둠의 감광기를 거쳐 보여야할 형상이 드디어 드러나는 것처럼.
 
왼편부터 사만다, 최승현 그리고 스페이스 오매 서수아 대표.  마을 예술창작소 이야기와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
▲ 왼편부터 사만다, 최승현 그리고 스페이스 오매 서수아 대표.  마을 예술창작소 이야기와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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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