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초연이 쓸고 간 백암산 깊은 계곡. 20대의 한 젊은 소대장이 산모퉁이 양지녁에서 스러진 낡은 돌무덤과 나무 십자가(비목)를 발견한다. 그 곁에서 뒹구는 녹슨 철모... 1964년 당시 육군 소위 한명회가 '비목'을 작사한 지은 배경이다.

6.25 격전지 화천은 전쟁의 한과 업이 뭉친 곳이다. 이곳에서 <비목>이란 시와 노래가 탄생했고, 파로호의 비극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은 북한의 수공(水攻) 위협을 빌미로 국민 성금을 끌어 모아 평화의 댐을 건설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248km의 휴전선은 철원, 화천을 지나 양구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화천은 평화의 깃발을 높이 올릴 수 있는 곳이다. 평화의 노래를 내쳐 부를 수 있는 곳이다. 가공할 무력으로 지키는 적대적 평화가 아니라, 화해와 용서와 치유로 보듬는 진정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방천리 대붕호
▲ 대붕호 사계 - 가을 방천리 대붕호
ⓒ 김영권

관련사진보기

 
파로호에 원래 이름을 되돌려 주자는 운동도 그중 하나다. 남북강원도교류협회와 화천군 간동면 주민 공동체인 '대붕호 사람들'이 이 운동을 이끌고 있다. 대붕호 사람들은 오는 5월 24일~26일 <2019 DMZ 대붕호 평화문화제>를 개최한다. 우선 파로호부터 대붕호로 바꾸고, 대붕의 깃발 아래 두루 모여서 평화를 노래하고 이야기하자는 것.

원래 이 문화제는 아주 조촐한 위령제에서 시작됐다. 임락경 목사, 한주희 목사 등 몇몇 분들이 지난 2010년부터 파로호에 수장된 중국군을 비롯해 전쟁에 희생된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열어왔다. 목사님들이 만신을 모시고 굿판을 벌이는 진풍경이 나에겐 숙연하게 느껴졌다. 이 위령제에 함께 하던 이들이 문화제를 키워왔고, 올해는 판을 더 키워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대붕호 위령제와 평화 대동제가 열리고 대붕호 걷기 행사도 있다. 강명구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 마라토너, 김태국 중국 연길대학교 교수의 평화 강연과 컨퍼런스도 열린다. 한·중·일 작가 12명이 동참하는 국제 설치미술전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예술가들의 모임'이 여는 회화전도 준비 중이다.
 
동촌리의 대붕호
▲ 파로호 사계 - 겨울 동촌리의 대붕호
ⓒ 김영권

관련사진보기

   
나아가 전쟁 희생자를 위로하고 평화 염원을 담은 조형물을 대붕호에 건립하고,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파로호에 제 이름을 되돌려 주는 일은 진정한 평화와 화해와 치유를 위한 첫걸음이다. 평화운동에 평생을 바친 무스테(A.J. Muste)는 말한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이헌수 남북강원도교류협회 이사장은 "대붕호를 대붕호라 부르는 것은 비극의 역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실천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총성과 포연이 가득하고 비명과 핏물이 넘치던 이 격전의 호수를 동아시아 평화의 진원지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대장정의 서막을 열겠다"고 말했다.

태그:#강산들꽃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