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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강남 땅값 폭등은 왜 '말죽거리 신화'라고 불릴까? 지금의 3호선 양재역 주변 말죽거리에 복덕방이 밀집해 있었는데, 이곳을 통해 부동산 투기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1969년 12월 25일 제3한강교 완공과 함께 강남땅에 대한 투기가 본격화된다. '복부인'(福婦人)이라는 말이 탄생한 것도 이때다. 강남 땅값의 고공행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다.

값비싼 땅값 때문일까. 강남구 공공도서관은 1984년 개관한 개포도서관을 제외하면 독립 건물로 지어진 사례가 드물다. 1982년 개관한 강남도서관은 강남교육청 일부를 도서관으로 '개조'한 사례라 독립 건축물로 지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나마 개포도서관도 개포지구 258만 평을 개발한 대한주택공사가 도서관을 지어 기부 채납한 경우다.

강남구 도서관이 복합청사에 있는 이유는?
 
강남구 대표도서관인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같은 강남권이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는 이유로 단독건물이든 복합청사든 도서관을 거의 짓지 않은 서초구와 비교하면, 강남구 도서관 정책은 돋보이는 부분도 많다. 강남구는 도서관 인프라뿐 아니라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콘텐츠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일찍부터 지방정부 차원에서 전자책도서관을 구축해왔고, 도곡정보문화도서관 역시 디지털콘텐츠를 많이 서비스하는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 강남구 대표도서관인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같은 강남권이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는 이유로 단독건물이든 복합청사든 도서관을 거의 짓지 않은 서초구와 비교하면, 강남구 도서관 정책은 돋보이는 부분도 많다. 강남구는 도서관 인프라뿐 아니라 전자책을 비롯한 디지털콘텐츠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일찍부터 지방정부 차원에서 전자책도서관을 구축해왔고, 도곡정보문화도서관 역시 디지털콘텐츠를 많이 서비스하는 도서관으로 알려져 있다.
ⓒ 백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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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한강교가 착공된 1966년 1월 19일을 영동지구 개발 시점으로 볼 때, 이때부터 1981년 9월 30일 국립중앙도서관 역삼 분관이 문을 열 때까지 강남엔 단 하나의 도서관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1981년 8월 <매일경제>가 "신흥 주거 지역 영동 일대 문화시설이 없다"는 기사를 통해 1백여 개 유흥업소가 있는 강남에 도서관이 단 하나도 없음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을까.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강남구가 지은 공공도서관은 독립 건물이 아닌 파출소, 문화센터, 상가와 함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남구 대표 도서관이자 개관 당시 강남구 최대 규모를 자랑한 도곡정보문화도서관 역시 독립 건축물이 아니긴 마찬가지. 

2013년 3월 말죽거리에 개관한 도곡정보문화도서관은 공공복합청사의 3층부터 6층까지 4개 층을 사용한다. 3층엔 어린이자료실과 유아자료실, 디지털자료실이 있고, 4층엔 종합자료실과 정기간행물실, 독서문화공간인 책사랑방이 있다. 5층과 6층엔 3개의 열람실이 자리하고 있다. 공공복합청사 1층엔 헬스장과 육아지원센터가 있고, 2층엔 주민센터와 북카페가 있다. 지하 1층엔 생활체육교실과 문화취미교실, 강당이, 지하 2층엔 식당과 매점이 있다. 행정과 문화, 체육, 보육시설이 한 곳에 있는 복합공간이다. 

도서관이 반드시 독립 건물로 존재할 이유는 없지만 상당수 도서관이 복합청사에 있는 것도 이채로운 모습인 건 틀림없다. 

우리는 땅과 돈이 부족했던 게 아니다 
 
서울시가 서울도시계획전시장에서 공개한 ‘도서관’ 설립 계획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1966년 서울도시계획전시장에서 강북 지역 9개 도서관 건립 계획을 공개한다. 종로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영등포구에는 일반 도서관을, 성동구, 성북구, 마포구에는 학생 도서관을, 중구, 용산에는 어린이 도서관을 각 1개관씩 짓는다는 계획이다.
▲ 서울시가 서울도시계획전시장에서 공개한 ‘도서관’ 설립 계획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1966년 서울도시계획전시장에서 강북 지역 9개 도서관 건립 계획을 공개한다. 종로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영등포구에는 일반 도서관을, 성동구, 성북구, 마포구에는 학생 도서관을, 중구, 용산에는 어린이 도서관을 각 1개관씩 짓는다는 계획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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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땅값이 급등한 이후에는 비싼 땅값 때문에 도서관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하자. 강남 일대가 허허벌판일 때는 왜 도서관 부지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을까. 왕복 10차선 도로와 고속버스터미널, 학교, 종합병원, 경찰서, 소방서, 공원 같은 온갖 편의시설이 들어선 강남 신도시에서 유독 도서관 부지를 찾기 어려운 건 왜일까.

강남 개발의 주체인 서울시가 도서관을 정책적으로 고려하지 않아서일까? 그건 아니다. 강남 개발 직전인 1966년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른바 '8.15 전시'라고 불린 '서울도시계획전시회'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8월 15일부터 한달 동안 시청 광장에 거대하게 설치한 전시장을 통해 서울시는 강북 지역에 9개 도서관을 3년 안에 건립한다는 계획을 공개한다. 일반 도서관 4개, 학생 도서관 3개, 어린이도서관 2개 건립 계획을 번지 수까지 명시해서 구체적으로 전시했다.

문제는 시민 79만7천 명이 관람한 서울도시계획전시회의 도서관 건립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내건 공공도서관 건립 계획 중 현실화된 것은 종로도서관과 동대문도서관 단 2개뿐이다. 게다가 종로도서관은 신축이 아니라 이전이었다. 도서관 건립이 정책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게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계획'으로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강북은 부지 마련이 어려웠다고 치자. 드넓은 강남을 개발하면서 도서관 부지를 마련하지 않은 건 서울시 도시계획 및 정책 결정권자에게 도서관 건립 의지가 없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 도시개발사에 길이 남을 '강남 대개발'에서조차 도서관은 도시기본시설이나 문화시설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도서관은 우리에게 사치였을까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총 길이 428km의 경부고속도로. 당시 돈으로 1km당 거의 1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국의 토목기술, 자동차 산업, 지역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총 길이 428km의 경부고속도로. 당시 돈으로 1km당 거의 1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국의 토목기술, 자동차 산업, 지역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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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지을 돈이 부족했던 걸까. 대한민국이 고속도로를 착공하던 1967년 시점의 1인당 국민소득은 겨우 142달러였다. 428km에 달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는 429억7300만 원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인 1968년 8월 20일 연건평 1천 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개관한 종로도서관은 6629만7천 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종로도서관 규모 공공도서관을 648개 지을 돈으로 우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다.

당시 고속도로 건설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국내외에서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린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경부고속도로를 짓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을 지을 돈이 없었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1980년 말에는 일인당 소득 수준이 1592달러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점보다 11배 이상 늘었다. 이때도 강남에는 도서관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강남 일대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개발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무질서한 땅을 새롭게 정리해서 도로, 상하수도, 학교, 공원 같은 공공시설과 택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처음 시행한 이 제도는, 대규모 주거지와 도시 개발 자금 확보가 어려웠던 독일, 일본, 한국 같은 후발 산업국가에서 도시 개발 방법으로 활용해 왔다. 837만 평에 달하는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통해서도 도서관 부지는 마련되지 않았다. 반포∙청담∙이수∙압구정∙도곡지구 같은 영동 '아파트 지구' 지정과 도로, 주차장, 녹지공간이라는 '3대 공간' 확충 과정에서도 도서관은 고려되지 않았다. 

땅과 돈이 부족했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우리는 도서관을 지을 땅과 돈이 부족했던 게 아니다. 도서관을 지을 '생각'과 '의지'가 없었던 거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우리에게 '도서관'은 무엇이었을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곳?

양택식 시장이 '남서울 계획'을 발표하던 1970년 말 서울의 자동차 총 대수는 6만 대, 이 중 승용차는 3만4천 대였다. 너비 70미터 길이 3.6km의 영동대로, 너비 50미터 길이 6.9km의 강남대로, 너비 50미터 길이 3km의 도산대로가 이때 계획됐다. 자동차가 많지 않은 그 시절 강남에 10차선 도로를 깔 생각은 해도 도서관을 지을 생각은 아예 없었던 거다. 이런 맥락에서 말죽거리의 잔혹한 이야기는 집 없는 서민뿐 아니라 이 땅의 도서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서관 부지에 대한 인색함이 어디 강남뿐이랴. 드넓은 강남을 개발할 때도 고려되지 않은 도서관이 서울 강북이나 서울보다 인프라가 열악한 타 지역에서 고려되었을까. 먹고살기 바쁜 대한민국에서 도서관은 '사치'였을까. 

말죽거리의 잔혹한 이야기는 끝난 걸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포스터 유하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의 원제목은 ‘절권도의 길’이었다고. 영화에서는 말죽거리 주변 ‘정문고등학교’가 배경이지만 실제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곳은 서초구 방배동의 ‘상문고등학교’라고 한다. 유하 감독을 포함해 제작자, 배우, OST 가수까지 4명의 상문고등학교 동문이 이 영화에 참여했다.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포스터 유하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의 원제목은 ‘절권도의 길’이었다고. 영화에서는 말죽거리 주변 ‘정문고등학교’가 배경이지만 실제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곳은 서초구 방배동의 ‘상문고등학교’라고 한다. 유하 감독을 포함해 제작자, 배우, OST 가수까지 4명의 상문고등학교 동문이 이 영화에 참여했다.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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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봄, 강남으로 급히 이사한 현수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1963년을 기준으로 1979년 학동은 1333배, 압구정동은 875배, 신사동은 1000배 땅값이 올랐다. 1978년부터 1979년 한 해만 해도 25만 원이던 땅값이 학동은 40만 원, 압구정동은 35만 원, 신사동은 40만 원이 되었다. 1963년 평당 300~400원 하던 땅값이 지금은 10만 배 뛰어 평당 3천만 원을 넘은 지 오래다. 강남에 뒤늦게 합류한 현수네도 단단히 재미를 봤을 것이다. 

말죽거리 이야기는 강남 일부 주민에게는 꿈같은 '신화'지만, 비강남 지역 대다수 사람과 도서관에는 '잔혹사'로 기억될 이야기다. 그런데 궁금하다. 말죽거리의 잔혹한 이야기는 이제 끝이 난 걸까.

[도곡정보문화도서관]

-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곡로 18길 57
- 이용시간 : 어린이자료실 / 디지털자료실(평일 09:00 - 18:00, 주말 09:00 - 17:00), 종합자료실(평일 09:00 - 22:00, 주말 09:00 - 17:00), 5층 열람실 06:00 - 22:00, 6층 열람실 09:00 - 22:00
- 휴관일 : 매월 첫째주, 셋째주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 이용자격 : 대한민국 국민, 외국인 등록자, 무료
- 홈페이지 : http://dogoklib.gangnam.go.kr/
- 전화 : 1644-3227
- 운영기관 : 강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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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사람사이에 조용히 부는 따스한 봄바람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동물, 책을 좋아하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지금은 소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