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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군것질을 참 좋아한다.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젤리, 달달한 그것들을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어렸을 때도, 학교 다닐 때도, 퇴근하고 집에 갈 때도 슈퍼에 들러 좋아하는 과자를 고르는 그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의 '순간'이었다.

때때로 밥은 안 먹어도 과자는 꼭 먹어야 했고, 밥을 먹은 후에도 과자는 먹어야 했다.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들러 파인트도, 패밀리 사이즈도 아닌 냉동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 한 통에 얼마냐고, 그걸 살 수 있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그 큰 아이스크림 통 하나를 사서 하루 종일 내 방에 앉아 숟가락으로 마음껏 퍼먹고 싶었다. 먹어도 먹어도 남아 있겠지? 상상했다.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이런 나의 군것질 사랑을 잘 알아서 퇴근길에,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한두 개씩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꼭 사 오셨다.

어린 나는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빠보다 아빠 손에 들려 있던 검정 비닐봉지를 더 반겼다. 장을 보고 양손 가득 무겁게 짐을 들고 오는 엄마보다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던 과자만 쏙쏙 꺼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철없던 그때, 과자와 아이스크림에 밀려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버터와플, 빼빼로, 롤리폴리를 좋아했는데, 아빠는 빠다코코넛, 샤브레, 건빵을 사 왔다. 나는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는데, 엄마는 아맛나, 메가톤, 비비빅을 사 왔다.

"아! 이게 뭐야! 맛없는 것만 사 왔어!"

짜증을 내며 봉지를 뜯고 툴툴거리면서 잘도 먹었다.
 
 엄마는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 '우리 딸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했을 것이다.
 엄마는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 "우리 딸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했을 것이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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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던 방향을 틀어, 어딘가에 들러, 일부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한동안 마음 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일을 마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올 때면 집 앞에 있는 세탁소에 들르는 것도 귀찮지 않나. 가끔은 들고나간 가방도 무거워 차 안에 그냥 두고 집에 온 적도 있지 않나.

그런데 아빠, 엄마는 아니었다. 새벽부터 시작한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오는 아빠는 꼭 슈퍼에 들러 과자를 사 왔다. 엄마는 양 손에 야채와 과일을 잔뜩 들고 시장에서부터 손마디가 얼얼할 정도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면서도 꼭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아빠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우리 딸 과자 사다 줘야지...' 했을 것이고,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면 엄마는 '우리 딸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라고 곱씹었을 것이다.

변하지 않은 부모의 자식 사랑

타지에서 혼자 살 때 오랜만에 집에 올라오면 나는 울컥 멈춰서 있을 때가 많았다. 내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 위에는 큰 '노래방 새우깡'이 놓여 있었다. 냉동실 문을 열면 간 마늘과 생선 사이로 '메로나, 빵빠레, 구구콘, 투게더'까지 종류별로 아이스크림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아빠는 과자를 좋아하는 딸내미가 오랜만에 집에 온다고 하니, 슈퍼에 가서 그냥 새우깡의 크기로는 성이 안 차 과자 중에 제일 커 보이는 노래방 새우깡을 집어 오셨다.
 
 아빠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우리 딸 과자 사다 줘야지...'
 아빠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우리 딸 과자 사다 줘야지..."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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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딸내미가 집에 온다고 하니, 슈퍼에 가서 하드가 아닌 최대한 부드러워 보이고 비싸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집어 오셨다. 엄마와 아빠는 또 다시 방향을 틀어, 슈퍼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우리 딸 이번 주말에 집에 오지...' 아마도 월요일부터 이 말을 되새겼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군것질을 좋아한다지만 겨우 주말 이틀 있다 내려갈 건데, 크기와 양만 봐서는 두 달은 너끈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나는 새우깡 한 주먹과 메로나 하나를 겨우 먹고 다시 내려갈 채비를 한다.

커버린 딸의 입맛은 변했고, 늙어버린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오면 다 먹지 못한 노래방 새우깡과 아이스크림이 계속 생각이 났다. 부모의 사랑은 너무 과분해 못난 딸내미는 그걸 다 먹어내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나 대신 남겨진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딸 생각을 씹어 삼키실 것이다.

한동안 나는 그 어떤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울컥 하고 목구멍이 차올라 잘 먹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https://brunch.co.kr/@hjl0520/27)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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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