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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첫 아이를 낳았다. 내 몸을 통해 만난 사람, 아이는 경이로움이었고 기쁨이었다. 신비하고 놀라웠다. 아이의 엄마로서 더 성숙해야겠다고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돌봐야했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 당연했다. 세상은 남편과 내가 함께 아이를 돌보도록 배려하지 않았다. 하고 있던 일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를 보고 세상은 경력단절여성이라고 불렀다. 일을 하고 싶었다. 이대로 나는 세상과 멀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마주 앉아 부대끼는 것 말고 세상과 좀 더 연결되고 싶었다.
 
 세상은 나 같은 엄마를 '경력단절 여성'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육아도 경력'이라고 외친다 한들 그건 당사자의 안쓰러운 발악일 뿐이었다. 공공기관의 문서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그 이름, '경력단절 여성'. 줄이면 '경단녀'. (사진은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스틸컷)
 나의 삶은 단절되지 않았다. 함부로 우리를 "경력단절여성"이라 부르지말라. (사진은 tvN 드라마 <아는 와이프> 스틸컷)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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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 손을 잡고 뛰었다. 서둘러 큰 애를 학교에 보내고 이번엔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만만치 않다. 야속하게도 어린이집은 버스정류장과는 반대방향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겨우 한 숨을 돌린다. 나는 지금 출근을 한 건지, 집에서 퇴근을 한 건지 잠시 생각하지만 여유부릴 틈도 없이 회사일이 시작된다. 퇴근시간까지 오늘 할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야근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퇴근 이후에는 다시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한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주며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동료들 눈치를 보며 퇴근을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회사를 뒤로 하고 어린이집에 달려가면 아이는 늘 꼴찌로 남아있다.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퇴근 못하고 있는 선생님한테도 미안한 마음이다.

몇 달 지나자 회사에서는 일찍 퇴근하는 대신 집에 가서도 메신저를 항상 켜놓고 있으라고 했다. 또 얼마쯤 지나자 다른 직원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일주일에 두 번은 야근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이마저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더 이상 일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점심 먹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이 혼자 집에 있어도 될 만큼, 혼자 밥을 차려먹어도 될 만큼 어서 자라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사회는 나를 가리켜 '경력단절여성'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고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한 걸 찾기는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인 건지 돌아보고 또 돌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대학 나온 게 무슨 소용이야, 결국 솥뚜껑 운전사 될 뿐인데, 시집 잘 가려면 예쁜 얼굴이 최고야, 아이 잘 키우는 게 돈버는 거야' 등등 여성의 삶을 비웃고 인정하지 않는 말들이 주위를 맴돌았다.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고 취업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왜 나는 '너의 삶은 단절됐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뒤돌아 서서보니 이제 알겠다. 돌봄과 육아를 여성에게만 집중시키고 있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사회가 응당 치러야 할 수많은 비용을 여성들에게 떠넘기며 사회가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나의 삶은 단절되지 않았다고. 매 순간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던 우리들의 시간을 함부로 '단절'이라는 말로 정의내리지 말라고. 함부로 우리를 보고 '경력단절여성'이라 부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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