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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4년차 역사 교사다. 동아시아사 수업도 10년 가까이 했다. 그런데, 동아시아 무정부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준 크로포트킨을 알게 되어 그의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읽은 것이 부끄럽게도 바로 얼마 전 일이다. 이런 창피한 고백을 하면서 서평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이 책이 10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사 과목과 동아시아사 과목 수업을 하다 보면 근현대 부분에서 반드시 '제국주의'와 '사회진화론'을 다루게 된다. 사회진화론이란 생존 경쟁,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 이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여 만든 이론. 우수한 서양인들이 생존 경쟁에 승리하였으므로, 열등한 동양인과 아프리카인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것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 법칙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

서양 세력의 아시아, 아프리카 침략을 사상적으로 정당화 해 주는 사회진화론을 설명하다 보면 과학인 생물학에 바탕을 둔 이 이론이 진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은 있으나, '인간이 그래서는 안 된다' 정도의 윤리적 저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을 완벽하게 반박한 상호부조론

그런데, <만물은 서로 돕는다>의 제1장을 읽자마자 이런 슬픈 생각이 단박에 날아갔다. 저자는 개미, 벌, 갈매기, 앵무새 등은 물론, 송장벌레, 쇠똥구리, 소등쪼기새, 댕기물떼새, 마멋, 비버 등 많은 동물들에 대한 과학적 관찰 결과를 토대로 동물들이 서로 헌신적으로 도와가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인용한 과학적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앵무새뿐만 아니라 두루미와 사회성 강한 원숭이 역시 인간을 제외하고는 적이 거의 없"으며, "몸집이 큰 앵무새는 적의 발톱이 아니라 주로 노령 때문이 죽을 공산이 아주 크다"고 한다.

원숭이 하나가 공격을 받으면 "무리 전체가 모여들며, 대부분의 육식동물과 맹금류에게도 용감하게 덤벼들어 물리친다"고 한다. 따라서 다윈이 말한 생존 경쟁은, 같은 종 내에서 너 죽고 나 살자며 일어나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종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냐 못하느냐를 의미하는 은유적 의미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질문, 반론을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차근차근 논박하며, 동물들이 서로 도와가며 사는 실례를 학술 논문 형식으로 논증한다. 이것을 읽으며 필자의 머릿속에는 아나키스트 독립 운동가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들은 이 책을 만났을 때 매우 행복했을 것 같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자연의 법칙이고 생명체의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진화론의 논리를, 경쟁을 피하고 서로 돕는 것이 자연 법칙과 생명체의 본능이라고 통렬하고 설득력 있게 반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가 인간의 본성

1장과 2장에서 다양한 동물들의 상호부조의 예를 설명한 저자는 3장부터 6장까지 미개인, 야만인, 중세 도시의 상호 부조라는 제목을 달고 구체적인 예를 보여준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언제나 서로 돕고 살았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서였다.

홉스와 헉슬리는 원시 인류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하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부족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최선을 다해 경쟁을 피하고, 서로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홉스와 헉슬리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의 삶의 본질은 상호 지원과 헌신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에 전쟁의 기록이 많은 것은 평화로운 시대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당연한 일상이기에 기록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5장, 제6장 중세 도시의 상호부조를 읽을 때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유럽에도 있었던 품앗이와 두레였다. 물론 이름과 운영 방식은 다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우리나라 고유의 풍속으로 품앗이와 두레를 배웠다. 농경 사회의 전통이자 우리만의 고유한 미풍양속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풍속이 아니었다! 길드와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낸 중세 유럽인에게도 우리나라의 미풍양속이라고 배웠던 비슷한 조직과 풍속이 있었다. 저자는 이것을 상호부조를 위한 인간의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해석했고, 유럽의 다양한 지역에 나타난 두레와 같은 상호부조의 예를 나열했다.

왜 독립 운동가들은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나

<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읽다보면 왜 박열, 신채호, 이회영 같은 독립 운동가들이 아나키스트나 크로포트킨 주의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우리말로는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기에 정부가 무너진 혼란 상태를 만들고자 하는 폭도들이나, 정부 없이 사는 원시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이들로 오해하기 쉽다.

필자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독립 운동가들이 암담한 현실 때문에 받아들였을 뿐 공상적 이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7장, 제8장 우리 시대의 상호부조 부분을 읽으면서 '흠잡을 데 없이 고결한 크로포트킨'의 주장이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시시대부터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온 상호부조 시스템은, 이것을 없애려는 권력자, 국가, 종교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시 재건되고 다시 재건되었다. 산업혁명으로 농촌의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자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도시 빈민들의 상호부조, 다양한 형태의 동호회, 협동조합 등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저자는 소규모 마을 공동체나 작은 규모의 인적 네트워크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상호부조가, 국가나 인류 단위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실례를 20세기 초 당시의 사회 모습에서 제시했다.

이미 독립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 필자마저도 이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설렜다. 일본 제국주의의 대한제국 병합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자 자연법칙인 상호부조에 어긋나니 부당하다. 제국주의를 극복한 이후에는 상호부조라는 인간의 본성을 살려 인류 모두가 서로 돕고 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한가? 악한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가?라는 물음은 수천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했다. 필자는 역사를 가르치며 수업 시간에 수많은 전쟁과 사악한 정치적 분쟁 등을 가르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시 만날 일도 없는 많은 이들의 도움과 호의 덕에 행복하게 살아왔다.

해외 여행 때 만난 다수의 현지인들에게도 이런 도움과 호의를 받았다. 항상 받아왔고, 소소한 일상이기에 주목하지 못했다. 크로포트킨은 이것이 필자의 행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고 있는 본성 때문이라고 완벽한 논리로 설명했다. 필자의 행복한 과거는 전생에 쌓은 덕업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상호부조 본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올해부터는 필자의 수업에 크로포트킨이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교과서에도 크로포트킨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었으면 한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사 교과서 두 종 중 하나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또 한 종에는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만 서술되어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나키즘 부분에 크로프트킨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제국주의와 사회진화론에 대한 강력한 대항 논리로 독립 운동가들이 크로포트킨 주의 혹은 아나키즘을 수용하고 투쟁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사족을 하나 달자. 고전이란 옛날에 만든 것이지만, 지금 보아도 현대적이고 신선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이 그랬다. 1902년에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와 세계의 현재 모습이 겹쳐진다. 크로포트킨의 100년 전 주장이 지금도 참고할 만한 점이 있는가?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이 밝힌 자연의 법칙과 진화의 요인

표트르 A. 크로포트킨 지음, 김훈 옮김, 여름언덕(2015)


태그:#만물은 서로 돕는ㄷ, #크로포트킨, #아나키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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