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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2년 전인 지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섰던 1700만(연인원) 시민의 승리이자 헌법에 명시된 "국민 주권"이 그 실체를 뚜렷이 드러낸 순간이었다. 곧이어 대선을 거쳐 9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를 자임했다.

이 모든 것이 1987년과는 판이한 양상이었고, 더 나아가 1960년 4월혁명 당시와도 다른 측면이 있었다. 4월혁명의 경우 개헌과 더불어 장면 민주당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불과 1년도 못 되어 '반(反)혁명'이라 할 수 있는 5.16 군부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후 한국은 무려 26년 간 군부독재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촛불항쟁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여러 차례 일어났던 종전의 민중/시민항쟁(또는 혁명)과는 다른 역사를 써내려갔고, 한국현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럼에도 현재 각종 미디어 지면에서 촛불항쟁 또는 촛불혁명을 둘러싼 논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촛불을 둘러싼 평가는 후대의 몫이라는 의식과 함께 우리 사회 특유의 역동성(달리 말하자면 '빠른 망각')이 작용한 탓이겠지만, 무엇보다 광장의 시민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정권교체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여기는 사회 일반의 분위기야말로 이 같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라 보인다.

그러나 동시대인으로서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다각도로 논의하는 작업에 소홀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그 자체 후대인들에게 당대의 사건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을뿐더러, 한편으로는 촛불혁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현실 속에서 그 위력을 상실하기를 염원하는 세력의 존재가 엄연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국면에서 "이명박, 박근혜 석방" 주장이 공공연히 나돌고, 국정농단의 종범이 제1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되며,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이 정형식 판사에 의해 2심에서 석방되고, 사법농단을 자행한 일부 판사들의 "복수"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사법부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현상들은 이를 말해준다. 그런 면에서 촛불혁명을 둘러싼 경험적, 이론적 논의는 향후 활발히 전개될 필요가 있다.
 
사상 최초로 1백만이 집결한 2016년 11월 12일 촛불항쟁 현장(서울시청 인근)이다. 아직 어둠이 내려앉기 전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집결해 행진에 나서고 있다.
▲ 2016년 11월 12일 촛불항쟁 현장 사상 최초로 1백만이 집결한 2016년 11월 12일 촛불항쟁 현장(서울시청 인근)이다. 아직 어둠이 내려앉기 전임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집결해 행진에 나서고 있다.
ⓒ 윤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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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쟁인가, 혁명인가 : 촛불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

현재 우리사회, 특히 학계의 촛불혁명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 역시 핵심 쟁점은 촛불항쟁의 '혁명' 여부라 할 수 있다. 즉, 촛불항쟁을 과연 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는 촛불항쟁의 성격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쟁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선 "현 체제인 87년체제를 구체제로 밀어내고 새로운 제도를 창설한 것은 아니"며, "촛불시민들은 오히려 87년체제 안에 새겨져 있는 제도적 절차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압박"한 사실을 들어 촛불혁명을 "87년체제의 극복이 아니라 그것을 수호한 '보수적' 혁명"이자 "6월항쟁의 사후 완성"으로 보는 견해가 제기된 바 있다. 즉, 촛불혁명은 "87년체제가 자신이 열어놓은 민주적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했으나 새로운 체제를 창출해내지는 못했다는 평가다(김종엽, '촛불혁명에 대한 몇개의 단상', <분단체제와 87년체제>).

이와 달리 1987년 6월항쟁과 촛불혁명의 차이에 주목한 견해도 제기됐다. 즉, "1987년 6월 시민항쟁은 그해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죽음에서 시작해 6월 연세대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아 숨진 후 대학생들과 정치인의 투쟁에 넥타이 부대와 학생, 재야가 가세한 '엘리트' 혁명"이었던 반면, 촛불혁명은 "30년 전 6월 시민혁명이 키운 노동조합과 농민·통일·빈민·학생 등 이른바 민중세력이 시작한 민중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촛불혁명의 주도층이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에 내몰리던 노동자와 신자유주의적 농정에 신음하던 농민,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저항한 철거민, 자식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어 했던 세월호 가족", 다시 말해 "자신의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 노동자·농민·교사·빈민·학생·통일운동가들 소위 민중세력"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원희복, <촛불민중혁명사>).

이와 함께 "촛불이 겨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하나를 바꾸는 수준, 혹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권력과 민중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좋은 사회'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근본적으로 묻고 거기에 대답하고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한 싸움, 즉 4.19와 5.18 그리고 6월 항쟁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시민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보면서(김종철, <녹색평론> 제153호) "4.19혁명보다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무엇보다 해방 후 지금까지 득세한 친일파를 녹아웃"시켰다는 점에서 "혁명, 그것도 위대한 혁명"이었다는 주장도(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인터뷰, <경향신문>, 2018년 11월 3일) 있다.

한편, 2018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촛불항쟁 국제토론회'에서는 서로 상반된 지적이 나왔다. 즉,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면헌법의 작동을 일단 정지시키고 민주적인 성문헌법을 가동하여 박근혜 정권을 끝장"냈다는 점에서 촛불혁명은 "헌법이 안 지켜지던 나라를 헌법이 지켜지는 나라로 바꾸는 한층 본질적인 혁명"이었으며, "프랑스에서와 같은 반전을 허용하지 않은 것"과 "비혁명적 방법에 의한 혁명과업의 수행"을 촛불혁명의 특징으로 본 진단이(백낙청, <촛불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남겨진 과제>) 나왔다.

다른 쪽에선 그와 달리 "과거와 같은 시민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구 정권을 대중의 압력으로 퇴진시키는 것 이상의 정치변동의 요구를 제출하거나 그것을 성사시켰어야 했다"는 점을 들어 촛불항쟁을 혁명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즉, "촛불시위는 비폭력 대중행동이라는 점을 제외하고서는 정권이 아닌 정치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거리에 나온 대중들은 집으로 흩어졌고, 그 이후 별도의 세력으로 결집되지 않았다. 새로운 정당 건설 등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고, 스페인의 포데모스 청년들처럼 반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그룹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촛불항쟁이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해서는 거부했지만,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대안적 운동으로서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점 역시 주목한다. 촛불항쟁은 "신자유주의 모순을 직접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계의 다른) 반신자유주의 운동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김동춘, <2016-2017 한국의 촛불시위와 견고한 민주주의의 길>).

현재 정권 차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에서 엿볼 수 있듯 '촛불혁명'이라는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촛불 시민들의 요구를 촛불혁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깊이 의식한 결과라 보인다.

2. 촛불항쟁의 혁명적 성격 : "적폐청산"이 의미하는 것

지금까지 촛불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살펴보았지만, 이러한 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 나름의 역사적 맥락일 것이다. 이 점에 유의한다면, 촛불항쟁의 혁명적 성격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1997년 IMF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박정희 신화'가 극적으로 붕괴된 사실이다.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와 정치 혐오가 빚어낸 이 신화는, 시대착오적 냉전 세력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대중적 기반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로지 '경제성장'과 부(富)를 향한 집요한 욕망만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고,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이 박정희라는 인물을 그 상징으로 내세우는 점에 특징이 있었다.

이 같은 신화에 의한 지배는 사상, 철학, 윤리의 빈곤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데 뒤이어 박근혜가 그러한 신화의 '상속자'로 내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매끄러운 소통을 하지 못하고, 최태민-최순실과 접촉하고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한 마디로 한국의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자국민을 기만하면서까지 박근혜라는 허상을 내세워 총집결했지만, 촛불항쟁 국면을 거치며 박정희-박근혜-최태민-최순실로 이어지는 비자금의 실체가 집중 조명되면서 우리나라 '가짜 보수'의 실체가 여지없이 폭로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지난 20여 년 간 한국사회를 짓눌러왔던 '박정희 신화'를 붕괴시킨 촛불항쟁은 새로운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모색할 기회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 전환을 이룩해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최소한 정부 차원에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박정희식의 재벌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 성장 모델, 그리고 그것과 결합된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경제적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진공상태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같은 변화가 전 세계적 저성장의 흐름과 기후변화 시대[즉, 더 이상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시대]를 앞두고 일어난 점 역시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2016년 11월 12일 촛불항쟁은 제6차 민중총궐기이기도 했다. 사진은 당일 어둠이 내린 뒤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는 1백만 촛불시민들의 모습.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이 서로 밀고 밀리며 전진하는 인산인해의 현장이었다.
▲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 현장 2016년 11월 12일 촛불항쟁은 제6차 민중총궐기이기도 했다. 사진은 당일 어둠이 내린 뒤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는 1백만 촛불시민들의 모습. 그야말로 발 디딜틈 없이 서로 밀고 밀리며 전진하는 인산인해의 현장이었다.
ⓒ 윤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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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적폐청산"이라는 촛불시민들의 구호 역시 촛불항쟁의 혁명적 성격을 말해준다. 여기서 시민들이 외쳤던 "적폐"란, 말 그대로 단순히 박근혜 정권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 엘리트층이었던 친일파 이래 국민 주권과 민주주의를 짓누르며 대외적으로는 미국-일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각종 정치적 음모로 자국민을 탄압·기만하면서 삼성을 비롯한 소수 재벌 대기업의 이익만을 최우선시 해왔던, 지난 100년 동안 철석같이 굳어져온 기득권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촛불항쟁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친일파 또는 친일잔재 청산 관련 발언이 많이 나오고, 촛불혁명이 "해방 후 지금까지 득세한 친일파를 녹아웃"시켰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사실일 것이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당시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빚어낸 반작용이기도 했지만, 여하간 촛불시민들은 해방 이후 친일파와 같은 반(反)사회적·반역사적·기회주의적 인간형을(그 대표적 인물이 박정희일 것이다) 청산하지 못한 사실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및 '나라다운 나라'가 부재한 요인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민들이 외쳤던 "적폐청산"은 표면상 '혁명'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실상은 '혁명의 언어'였다.

촛불항쟁 당시 "체제 내부의 자기모순에 따라 그 모순이 폭로되면서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이라는 점을 근거로 "지금의 국면은 87년 6월항쟁 전야라기보다는 4·19 전야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 견해가(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 <주간경향> 1203호) 제기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

뿐만 아니다. 촛불혁명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도 커다란 파장을 미쳤다. "박근혜 정권 때가 지금보다 나았다"라는 일본 총리 아베의 발언과 양승태 사법부-김앤장-박근혜 청와대와 관련한 의혹에서도 보여지듯, 촛불혁명은 박근혜-아베 정권의 '동아시아 극우 연대'를 분쇄하고 한반도 냉전질서를 해체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사적 대사건'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일본의 초계기 도발과 강제 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는 촛불혁명이 물꼬를 튼 한반도 냉전질서 해체 과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당혹감과 불안감이 투영되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서 잘 드러나듯 촛불혁명은 식민지 체제부터 냉전·분단체제를 거치며 이어졌던 일본 제국주의의 유산을 동아시아 국제정치 차원에서 청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측면에서도 혁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진 촛불시위의 흐름 역시 주목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한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2008년 촛불항쟁, 2013년 '국가기관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로 지속된 역사적 흐름이 말해주듯, 촛불시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를 참칭하며 등장한 친일-군부독재 잔당과의 대결 속에서 형성됐다.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그러한 사회적 흐름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은 2002년부터 15년 동안 진행된 '장기 혁명'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촛불혁명의 한계 : "이게 나라냐?"가 의미하는 것

한편, 촛불혁명의 이면에는 위에서 언급한 '혁명적 성격'과는 분명 다른 측면도 있었다. 촛불시민들은, 승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최순실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기성의 기득권 세력에 대해선 청산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하지만 기성의 정치체제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적폐청산"과 함께 광장에서 많이 외쳤던 구호가 "이게 나라냐?"였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한 기자의 논평처럼 촛불의 목표는 "복잡한 상상력과 논란을 요구하는 체제 변혁이 아니라 체제 복원"이었던바(천관율, '우리는 이미 촛불 체제를 살고 있다', <시사IN>, 제529호), 한마디로 그것은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의 원리가 실현되는 '정상 국가'의 복원이었다.

물론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기성의 헌정질서를 그 근저에서부터 파괴한 사실과 연관된다. 정권 차원의 선거 개입을 비롯해 민간인 사찰, 댓글 여론 공작, 언론 장악, 사법농단, 국정원·기무사·검찰·경찰과 같은 국가기관의 사당화(私黨化) 등 정권의 의지를 관철하고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저질렀던 각종 '국기문란 사건'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일명 NLL 대화록) 무단 공개, 4.16 세월호 참사,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백남기 농민 피살과 같은 역사상 초유의 일련의 사태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직결된 최상위 구조물로서 국가의 역할을 묻게 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시대의 광주'였고, 시민들의 '감정연대'를 촉발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등장하고 있었다. 2016년 4.13 총선 결과 역시 당시 소리 없이 증폭되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를 잘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2016∼2017년 촛불항쟁의 계기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에서만 찾는 것은 단견일 뿐이다.

문제는, 광장의 시민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전에는 '정상적인 국가'로 작동했다고 믿은 기성 정치체제의 복원을 희구한 탓에 사태가 일단락되자 광장의 헤게모니를 당시 야당을 비롯한 제도권 정치에 너무나 쉽게 넘겨주고 말았다는 점일 것이다. 한때 국회를 리드했던 촛불과 광장이 박근혜 탄핵 이후, 그리고 정권 교체 이후 너무나 쉽게, 아직 바뀌지 않은 일상으로 복귀하고만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2008년 촛불항쟁과 달리 2016∼20177년 촛불항쟁이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사실 역시 촛불시민들의 이 같은 경향성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박근혜 정권과 종편을 비롯한 언론에 의해 역으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정해진 선'을 넘어선 안 된다는 시민들의 판단은, 이 무렵 계엄령을 구상하고 있던 박근혜 정권의 행태를 고려하면 결과적으로는 대단히 옳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촛불시민들의 내면에 작동하고 있던 박근혜 정권에 의한 '공포'와 '억압', 그리고 헌정체제의 조속한 정상화를 염원하던 집단 심리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는 촛불시민들의 한계라기보다 박근혜 정권이 우리 역사를 엄청나게 후퇴시킨 결과이자 정부 수립 이후 오랫동안 '정상 국가'를 누려보지 못한 우리사회 자체의 한계였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기성의 정치체제를 그대로 인정한 탓에 촛불혁명은 정작 촛불시민들의 헤게모니를 새롭게 창출하거나 '제도화'하는 성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단지 청와대의 주인만 교체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 결과 종전까지 사회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던 주류 기득권층이나 정치·사회·경제 체제의 체질은 촛불혁명 이후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정형식 판사에 의해 2심 판결에서 석방된 사실은 이를 상징한다.

어느새 적폐청산의 주체는 촛불시민에서 청와대로 옮겨갔고, 각종 미디어들은 시민들의 시선을 청와대로 유도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지금부터 58년 전 5월, 그러니까 1960년 4월혁명 한 달 후 "기성 육법전서(六法全書)를 기준으로 하고/혁명을 바라보는 자는 바보다/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 최소한도로/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舊六法全書)를 떠나서/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한/혁명을 … 아아 새까맣게 손때묻은 육법전서가/표준이 되는 한/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라고 외쳤던 시인 김수영의 시선에서 본다면, 현재의 상황을 '방법부터 혁명적인 상황'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4. 결론 : 촛불혁명은 '한국형 민주주의 혁명'

현실이 그렇기는 하지만, 촛불혁명이 열어놓은 혁명적 국면(적폐청산)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결국 현재의 국면이 향후 어떻게 진전되고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후대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부 언론과 포털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곧 적폐청산의 동력인 것처럼 보도하거나 "적폐청산에 따른 피로감"을 운운하는 행태는 촛불혁명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서 결코 좌시하고만 있을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적폐청산은 촛불시민들의 '혁명적 열망' 그 자체로서 대통령 지지율 또는 그 피로감과는 무관하게, 향후에도 끊임없이 수행돼야 할 '혁명과업'이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종범들이 안면을 바꾸지도 않고(!) 다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적폐청산의 시급성과 당위성을 절감케 한다.

결론적으로 촛불혁명은, 피상적인 관찰 결과일 수 있지만, 광범한 대중의 '혁명적 열망'과 '방법의 보수성'(기성의 정치체제에 기대어 변혁을 추구하는)이 결합된, 그리고 그때까지 한국사회의 성취와 한계가 고스란히 반영된, '한국형 혁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의 이상을 전 인민적 차원에서 재확인하고, 그것의 물꼬를 트고자 '시작'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는 점에서 '한국형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성역'으로 군림하던 '삼성 공화국'의 수장 이재용과 '박정희 신화'의 상속자 박근혜가 각각 2017년 2월과 3월 특검 수사 결과 전격 구속될 수 있었던 것도 촛불혁명의 이러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단, '한국형 민주주의 혁명'으로서 촛불혁명은 그 자체 혁명의 '완수'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 역시 주의해야 할 측면일 것이다.

다만, 향후 '적폐청산 이후의 새로운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촛불시민들의 발언과 실천이 광장과 온라인상에서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지금처럼 오직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는 게 촛불혁명의 정신은 아닐 것이다.

정치와 사회의 운영을 '엘리트'들에게만 맡겨두기보다 일상에선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촛불이라는 위대한 다중의 물결을 만들어낸 우리 자신이 일상과 사회문제를 향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와 발언을 이어나가고, 그 어떤 '사유의 제약'도 넘어서서 대안사회를 상상해나갈 때 비로소 촛불혁명은 완수될 수 있을 것이다. 광장과 공화국의 주인은 결국 촛불을 들고 나섰던(또는 심정적으로 촛불을 응원했던)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재 유럽 각국과 미국,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극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극우 포퓰리즘'의 준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촛불혁명은 동시대 세계사적 관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태그:#촛불혁명, #한국형 민주주의 혁명, #적폐청산, #박근혜 파면, #이재용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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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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