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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안티구아. 식민지 시절 빨래터 유적에서 만난 청소년들.
 과테말라 안티구아. 식민지 시절 빨래터 유적에서 만난 청소년들.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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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 친구와 헤어져 다시 외톨이 여행자가 되었다. 친구는 멕시코 북부 아즈텍의 땅으로, 나는 멕시코 남쪽 국경 너머 과테말라로 방향을 정했다. 중미는 특히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가능하다면 육로를 통해 남미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다시 각자의 여행을 하다가 또 길이 이어진다면, 페루나 칠레, 남미 땅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했다.

다시 혼자. 아데오 ADO와 오리엔떼 Oriente라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깨끗하고 안전한 버스를 포기하고 '콜렉티보'라 부르는 15인승 승합차를 탔다. 운임이 조금 저렴했고, 옆자리 승객과 거리가 가까워 허벅지가 붙었으며, 빈자리 없이 가득히 봇짐과 닭장이 실렸다. 닭도 멀미가 나는지 차가 흔들릴 때마다 목청껏 울어댔다.

소도시 코미탄에서 콜렉티보를 갈아타고 멕시코 과테목 Cuauhtemoc과 과테말라 라 메시아 La Mesilla 국경에 닿았다. 이곳 국경에는 철조망도 담벼락도 없었다. 한반도의 휴전선과 달리 총든 군인도 없는 자유로운 국경이었다. 표지판과 작은 사무소만이 이곳이 두 나라의 경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마을 사람들은 여권과 비자 없이도 국경을 오가며 장사를 하고 친구를 만났다. 남은 멕시코 돈 3016페소(한화 18만 원)를 과테말라 케찰로 환전했다. 환율은 멕시코 쪽이 훨씬 높았다. 콰테말라 국경 사무소 직원이 10케찰(1500원)을 요구해 선선히 주었는데, 이게 공식 비용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주의를 기울여 환전 사기는 면했으나 국경 공무원의 '웰컴 사기'에는 꼼짝없이 당했다. 어쨌든 그때는 기쁘게 여권에 도장을 받고 과테말라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같은 중미 땅에서 국경이라는 선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뭐가 많이 달라지려나 했는데, 조금씩 멕시코와는 다른 것들이 보여서 흥미로웠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지만 간판에 적힌 단어가 달랐고, 음식이 달랐고, 중고 옷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십오 분을 걸어 도착한 버스터미널은 멕시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터미널과 아주 달랐다. 매표소와 대합실 없이 주차장에 버스들만 모여 있었고, 화장실도 없는 와중에 저기 담벼락에 서서 오줌을 누는 남성들이 몇 명 보였다. 딱히 타인의 시선을 피할 생각도 없는 위치 선정과 당당함이었다. 현지 스타일로 노상 방뇨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버스의 생김새는 더 달랐다. 악명 높은 과테말라의 '치킨버스'였다. 닭장처럼 승객을 많이 태워서인지 승객의 짐 중에 닭들도 많아서인지,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대부분 블루 버드 Blue Bird라는 기업의 버스인데, 미국에서 스쿨버스로 운영되다가 낡으면 과테말라로 팔려 오는 버스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노란색이지만 과테말라에서는 온갖 색으로 화려하게 도색된다.

'생존 스페인어'는 여기서도 똑같이 통하니 수월했고, 버스 기사와 차장들은 대부분 무척 친절했다. 자신의 버스를 탈 승객이 아닌데도 기꺼이 내 목적지로 가는 버스와 담당 차장에게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정해진 일정도 목적지도 정보도 없었으므로 대충 지도를 보고 저녁에는 도착할 거리의 남쪽 도시 우에우에테낭고 Huehuetenango와 케트살테낭고 Quetzaltenango 방향 버스를 탔다. 특이한 지명 '테낭고'는 '땅'을 의미한다.
 
과테말라 고산지대를 곡예하듯 달리는 '치킨버스'. 미국에서 스쿨버스로 운영되다 낡으면 팔려오는 블루버드 회사의 차량이다.
 과테말라 고산지대를 곡예하듯 달리는 "치킨버스". 미국에서 스쿨버스로 운영되다 낡으면 팔려오는 블루버드 회사의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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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찰'은 멸종위기의 비단날개새과 열대 조류로 과테말라의 국조이고, 화폐 단위 이름으로도 쓰인다. 멕시코 치아파스도 이천 미터 고지대였는데, 과테말라 북부는 산세가 더 높고 험했다. 중앙 차선도 없는 꼬부랑 구부렁 산길을 알록달록 버스는 곡예를 하듯 미끄러지며 달려갔다.

남미 인기 가요를 크게 틀고, 차장은 버스 입구 발판에 서서 목적지을 크게 외치며 승객을 모았다. 마을 마다 정차하고, 길가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도 모두 다 태웠다. 그야말로 완행버스. 곧 버스가 가득찼다. 거대한 산맥에 구름이 걸려, 비가 자꾸 내렸다 그쳤다 했고 추위가 몰려왔다.

우에우에테낭고 주유소의 공짜 화장실에서 참았던 오줌을 누고 긴 바지를 꺼내 입었다. 완전히 어두워지고서야 케트살테낭고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주유소 주차장이었고 부슬비를 피할 대합실도 없었다. '과테말라 전국에 터미널은 없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낯선 나라에서의 첫 밤이 무서웠지만 같이 내린 승객들이 인사를 건네주어 조금은 따듯했다. 도시의 보행로 곳곳은 비포장이라 질퍽질퍽했고 어둑한 시장 골목에는 긴 총을 든 경비원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텐트를 칠 곳을 찾기는 무리라 근처의 낡은 호텔들 중 비교적 저렴한 '호텔 네바다'로 들어갔다. 70케찰(1만500원)은 나에게는 큰 숙박비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짐을 풀고 스마트폰을 켰다. 무서운 과테말라도 와이파이는 똑같았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생존을 알리고 지도를 살펴본 후 잠이 들었다.

아티틀란 호수의 개들과 함께한 노숙

아침이 밝았다. 지난 밤 험악해 보이던 케트살테낭고 골목길은 그리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하루를 보냈다고 과테말라에도 조금 적응이 되었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불린다는 아티틀란 호수의 중심지 파나하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562미터에 자리한 신비로운 호수. 8만4000년 전 화산이 폭발하며 커다란 구멍이 패여 생겨난 호수라고 한다. 과테말라에 오기 전에는 이름도 모르고 정보도 없었지만 남쪽으로 가는 길과 멀지 않아 들렀다 가기로 했다. 3000미터를 넘나드는 험난한 산맥, 그 중에서도 산 페드로, 톨리만, 아티틀란 세 개의 화산 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호수는 과연 경이로웠다. 호숫가 선착장 공원 한켠에 지붕이 있는 작은 전망대가 있었다. 인적이 드물고 텐트를 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스페인어 사전을 검색해서 전망대 옆 음료수 가게 청년에게 물었다.

"호이 노체, 푸에데 깜빠냐 아끼? Hoy noche, Puede campana aqui? 오늘 밤에 여기에 텐트를 쳐도 되나요?"
"Si si. 괜찮아요 괜찮아."
"그라시아스! 고마워요!"


그 청년에게 전망대에 대한 관리 권한이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현지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 많이 위험한 곳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마침 옆에 상인들이 이용하는 수돗가도 있어 대충 씻을 수도 있었다.

화산 너머로 지는 노을을 보고 일찍 텐트로 들어갔다. 잠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텐트를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니 이런, 텐트 모서리에 노란 물에 묻어 있었다. 공원에는 집 없는 개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기어이 내 작은 텐트에 오줌을 싼 것이다. 다행히 오줌의 양은 적었지만 휴지로 몇 번을 닦아내도 찝찝함이 남았다. 하지만 개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나그네에게 밤을 쉬어 갈 좋은 장소는 집 없는 개들에게도 좋은 장소이리라. 내가 개들의 공간을 무례하게 침범한 것이다.

"하루만 자고 갈게, 개들아! 내 텐트에 제발 오줌 싸지 마!"

하지만 내가 잠든 깊은 새벽, 개들은 텐트 다른 쪽 모서리에도 오줌을 싸두었다. 역시 노숙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사람을 때로는 동물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하룻밤을 쉴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하나둘 주민들이 호숫가로 새벽 운동을 나왔다. 또 하루 노숙의 밤이 지나고 밝아오는 고마운 아침이다. 호수를 둘러싼 세 개의 화산 봉우리에 구름이 다 걷히기를 기다리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곡예하듯 달리는 과테말라 치킨버스를 타고 안티구아, 과테말라의 옛 수도로 이동했다.

 
안티구아 옥탑 텐트 숙소. 텐트 너머로 화산이 보인다.
 안티구아 옥탑 텐트 숙소. 텐트 너머로 화산이 보인다.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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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폭발한 푸에고 화산 옆에서

지금의 여행 이야기를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뉴스를 자주 챙겨 읽지는 않는다. 포털 사이트의 개인 메일을 확인하다가 첫 페이지에 있는 수많은 기사 제목을 보게 되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미국 여행을 하던 6월에 친구가 SNS로 알려주어 과테말라에서 화산이 폭발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기사를 찾아 보거나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세상의 수많은 재난에 대해서, 혼자만 생각하고 사는 나는 참 무관심하다.

폭발 후 두 달이 지난 8월, 안티구아에 도착해서야, 바로 옆 마을이 6월 9일 화산 폭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티구아를 둘러싼 세 개의 화산 아구아, 아카테낭고, 푸에고 화산 중 스페인어로 '불'을 뜻하는 푸에고 화산이 바로 얼마 전 폭발한 화산이었다. '재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은 곳에 여행을 하러 와 있다니',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안티구아는 1500년대 중반부터 1773년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될 때까지 200여 년간 스페인 식민 정부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인구 3만5천 명이 사는 작은 도시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오래된 성당과 광장, 좁은 골목들이 아름다워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다. 하루 25케찰(3700원)의 저렴한 숙소가 있어 나도 아흐레를 머물렀다.

'캠핑 앤 트래블' 숙소 옥탑에는 비만 겨우 피할 수 있게 만든 나무 지붕 아래 텐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비록 얇은 텐트 천 한 장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개인 공간이라서 편안했다. 똑같은 텐트라도 거리에서 혼자 노숙을 할 때와는 큰 차이가 있다. 불안한 마음으로는 편한 잠을 이루기 어려운데 안전이 보장되니 텐트에서도 잘 잠들 수 있었다. 숙소에 돈을 지불한다는 건, 시설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에 앞서 안전을 보장 받는 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들에게 스페인어 개인 교습을 하며 여비를 보태는 온두라스 동갑내기 청년 아마데오 마타 Amadeo Mata, 2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 중인 우루과이 여행자 알도 Aldo와 조금씩 친해져 거리 구경을 함께 다녔다.
 
옥탑의 텐트 숙소 모습.
 옥탑의 텐트 숙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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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 텐트 숙소의 여행자들. 온두라스 여행자 아마데오와 우루과이 여행자 알도.
 옥탑 텐트 숙소의 여행자들. 온두라스 여행자 아마데오와 우루과이 여행자 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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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구아 터미널 길목에서 여행자들에게 화산 투어 신청을 받는 일을 하는 후안은 마주칠 때마다 1박 2일 화산 투어를 권했다. 안티구아에 왔다면 꼭 가야 하는 곳이고 너무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다. 몇 번 안내를 들으니 가보고 싶은 생각도 조금 들었다. 세 번째 만나을 때 조심스레 푸에고 화산 사고와 아래 마을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관공서에서 대피 경보를 울렸는데, '설마 폭발할까' 예사로 생각하고 피하지 않은 주민들이 사고를 당했어. 한꺼번에 다 목숨을 잃은 가족들이 많지. 몇 주 동안은 화산 출입이 통제됐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투어가 시작됐어."

이건 후안의 생업이고, 또다른 많은 현지 관광업 종사자들의 생활이 달린 일이니, 푸에고 화산 투어는 계속될 것이다. 번화가 횡단보도에는 화산 사고 후 복구를 하는 기관의 직원들이 모금을 받고 있었으나 가난한 여행자인 나는 많은 돈을 기부할 수가 없었고, 멀리 푸에고 화산이 보일 때마다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든 옥탑 숙소 친구들과 작별하고, 화산의 도시 안티구아를 떠났다. 수도 과테말라 시티에서 사흘을 머물고 엘살바도르 국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안티구아 시가지와 아구아 화산.
 안티구아 시가지와 아구아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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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세계여행, #과테말라, #중미여행,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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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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