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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마허가 운전해도 위험하다니까. 사고 나는 걸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까요."

1톤 트럭 운전기사인 최아무개 씨가 농담을 섞어 말했다. 도로 옆 기둥에는 부딪히고 긁힌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곡선 구간에서는 차량들의 경적 소리가 요란했다. 기둥 옆 주차장에선 후진하는 차량이 직진 차량과 부딪힐 뻔 하는 아찔한 순간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25일 찾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아래 4차로 도로는 한 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낙원상가 전경. 1969년 지어진 주상복합건물로 1층은 자동차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특이한 구조다.
 낙원상가 전경. 1969년 지어진 주상복합건물로 1층은 자동차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 특이한 구조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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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상가 아래 도로에 들어서자 터널에 진입한 것처럼 갑자기 어두워졌다. 전조등을 켜지 않으면 앞 차량을 쉽게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 상가 건물을 떠 받치고 있는 100여 개의 기둥까지 있어 시야가 더 좁아졌다.

낙원상가 아래 1층 도로는 대낮인데도 터널처럼 어두웠다. 어두운 색 옷을 입은 보행자를 식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낙원상가 아래 1층 도로는 대낮인데도 터널처럼 어두웠다. 어두운 색 옷을 입은 보행자를 식별하기 힘들 정도였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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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옆으로는 주차장까지 있어 차들이 빈번하게 오갔다. 후진으로 빠져나오는 차량이 직진 차량이 곳곳에서 뒤엉켰다. 주차 요원이 수신호를 하지만 워낙 어두운데다 직진하는 차량들의 속도가 제법 빨라 사고 위험이 커 보였다.

한 주차 요원은 "수신호 없이는 차량이 빠져나가기 어렵다"며 "차로도 좁고 차량 통행량도 많아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횡단 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들도 위험해 보였다.

어디가 인도인지 차도인지 구분도 정확치 않았다. 물건을 내리는 트럭들이 인도를 침범하는 경우도 많아 보행자들은 차량을 피해 이리 저리 움직였다. 한 70대 노인은 "기둥이 많아 차가 잘 보이지 않는데다 신호 위반 차량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모호했다. 횡단보도와 근접한 인도로는 용달 차량이 수시로 오가 위험해 보였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모호했다. 횡단보도와 근접한 인도로는 용달 차량이 수시로 오가 위험해 보였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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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도로 곡선 구간이었다.

기둥을 피해 차로 폭이 15cm 가량 줄어들면서 사실상 차선을 지켜 정상적인 주행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차선을 지키려 하면 기둥과 부딪힐 수 밖에 없어서 경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차량이 차선을 침범한 채 주행을 하고 있었다. 대형 버스는 아예 모노레일처럼 차선을 가운데에 물고 지나갔다. 실선으로 돼 있는 차선이라 사고가 나면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낙원상가 아래 도로 곡선 구간에서는 기둥을 피해 차로 폭이 15cm 가량 줄어든다. 기둥을 피해 운전하려면 차로 위반을 하기 쉽다.
 낙원상가 아래 도로 곡선 구간에서는 기둥을 피해 차로 폭이 15cm 가량 줄어든다. 기둥을 피해 운전하려면 차로 위반을 하기 쉽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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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 구간은 기둥 때문에 차로 폭이 갑자기 줄어든다. 기둥에는 차들이 부딪히고 긁힌 흔적이 가득했다.
 곡선 구간은 기둥 때문에 차로 폭이 갑자기 줄어든다. 기둥에는 차들이 부딪히고 긁힌 흔적이 가득했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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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를 운전하는 50대 박아무개씨는 "이곳을 처음 지나는 기사들은 차량 뒷부분이 기둥에 접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피하려면 사실상 차선을 위반한 상태에서 운전을 해야 한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이곳에서 10여 년 째 용달 기사로 일한다는 60대 운전기사는 "접촉사고를 수도 없이 많이 봤다"며 "옆 차량과 부딪히기라도 하면 차선 위반으로 가해자가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곡선구간에서는 기둥을 피해 차량들이 대부분 차선을 물고 주행했다. 실선 차로를 물고 주행하는 건 교통법규 위반이라 옆 차량과 접촉사고가 나면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곡선구간에서는 기둥을 피해 차량들이 대부분 차선을 물고 주행했다. 실선 차로를 물고 주행하는 건 교통법규 위반이라 옆 차량과 접촉사고가 나면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 채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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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는 4차로 길 위에 기둥으로 띄워 올린 15층 짜리 건물로 지난 1969년 지어졌다. 1층을 자동차 도로로 사용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설계로 눈길을 끌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흉물 취급을 받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낙원상가 일대를 정비하고 옥상 공원과 전망대 를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하부 도로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낙원상가 아래 도로가 어둡다는 지적이 있어 조도를 높일 계획"이라며 "기둥을 옮길 수는 없는 상황이라 차로 폭 문제는 사실상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이 과속이라는 지적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속도 표시 장치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태그:#낙원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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