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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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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이 없는 선거였다. 북미정상회담, 6.13지방선거, 러시아 월드컵 개막으로 이어지는 슈퍼위크의 한복판에 있었던 선거. 누구도 결과를 궁금해 하지 않았다. 누가 이기냐가 아니고 어느 정도의 차이로 이기느냐가 관심사였다.

변수라고 할 만한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를 위협하던 드루킹 사건,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를 위협하던 여배우 스캔들, 선거 막바지에 터진 '이부망천' 발언 등. 공통점은 전혀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세한 영향이야 없지는 않았겠지만, 당락에 영향을 주지도 못했고, 당선자와 낙선자의 표 차이도 상당했다. 이부망천 발언 역시 추격하는 자의 의지를 꺾은 측면이 있지만, 설사 그 발언이 없었다 하더라도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높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랄까, 워낙 지지율이 낮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변수조차 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는 듯 하다.

그나마 앞으로 정치 판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지켜봐야 할 변수는 이제는 당선자 신분이 된 이재명 후보의 여배우 스캔들 정도일 것이다. 선거 운동 기간 SNS에서 파급력은 상당했다. 온갖 설전이 이뤄졌고, 일부 문재인지지 그룹에서는 노골적인 낙선 캠페인이 벌어졌다. 마치 민주당에는 문재인계와 이재명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대립은 극심했다. 물론 SNS 내에서만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SNS로 흥한자 SNS로 망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재명은 여유 있게 남경필을 따돌리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SNS 여론이 실제 오프라인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남시장 경력이 없었다면 SNS의 파급력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남시장 이전의 이재명과 이후의 이재명에게는 뭔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커다란 스펙의 차이가 존재한다.

정치적 성향이 중도인 성남 거주자 이아무개씨는 이재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여러 스캔들이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성남시장으로서 일을 잘했어요. 성남 시민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경기도지사 일을 맡으면 잘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남시 3대 무상복지 시리즈 - 청년 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비 지원은 진보세력이 암흑기이던 시절 무상 급식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판을 흔들던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을 떠올리게 했다.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성남에서 밀어붙인 정책들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착하지 않은 노무현? 좌파 트럼프?

착하지 않은 노무현. <한겨레>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전통적 노무현지지 그룹에서는 발끈했지만, 호불호가 엇갈리는 와중에도 그가 일약 대권 후보로 떠오른 이유를 보여주는 해석이다.

참여정부 시절 우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포퓰리스트다, 좌파다, 불안하다' 등등의 마타도어를 해댔지만, 실상 그의 정책들은 온건하고 착하고 심지어 시장친화적이기까지 했다. 온건한지지 그룹은 우파들이 그에게 덮어씌웠던 이미지들에 대해 분노했고, 급진 그룹은 온건한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

파이터 이재명에 대한 지지는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했다. 아직 박근혜의 전성시대가 끝나지 않았을 때 이재명은 화려하게 등장했다. 성남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 선언'이라는 빅엿을 전임자에게 먹였다. 논란의 여지가 아주 많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는 고시 패스를 하고 인권변호사가 되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이었고, 공장에서 일하다 장애를 얻은 소년공이었다.
대학을 나왔다고 하지만 그의 출신 배경에서 고졸 출신의 노무현을 떠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어딘가 다르다.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사랑하며 잘 살고 있는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고 외치던 노무현과 여배우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 이재명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만약에 노무현에게서 여배우 스캔들이 났었다면 정치적으로 일어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재명에게서 노무현을 떠올리지만, 단서가 붙어 있는 노무현이다. '착하지 않은'이란 수식어를 붙였을 때에만 그에게서 떠올리는 노무현이 유효하다.

이 '착하지 않은'이란 수식어가 이재명과 노무현의 사이를 가르고, 호불호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고 있는 셈이다.

혹자들은 이재명에게서 노무현이 아닌 트럼프를 떠올린다. 트럼프의 독설과 트위터 정치 - 여기서 트럼프를 이재명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상대 진영이 바라보는 불안감, 혹은 같은 진영에서조차 아슬아슬하게 바라보거나 적대적인 시선. 이런 점들도 트럼프와 이재명의 닮은꼴이다. 상대 진영에게는 불안감이고, 같은 진영에서도 막말 비슷한 언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기에 같은 진영 사람들에게서도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소년공'에서 '대선후보'로... 눈물 훔치는 이재명 이재명 성남시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시계공장은 이 시장이 만 12살부터 '소년공' 생활을 해온 곳으로, 각종 산업재해 사고를 겪으며 여러 공장을 옮기다가 1979년부터 2년간 일했던 공장이다.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로... 눈물 훔치는 이재명 이재명 성남시장이 2017년 1월 2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마친 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시계공장은 이 시장이 만 12살부터 '소년공' 생활을 해온 곳으로, 각종 산업재해 사고를 겪으며 여러 공장을 옮기다가 1979년부터 2년간 일했던 공장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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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재명과 트럼프에게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출신 성분이다. 트럼프는 워싱턴 정가의 이단아로 치부되지만 아웃사이더는 아니었다. 출신으로만 보자면 이재명이 아니라 현대 재벌가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정주영과 닮았다. 밀어붙이는 CEO 리더십은 경영에서 두각을 나타낸 지도자다운 풍모다.

이재명은 노동자 출신이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다. 트럼프의 힘이 경영에서 나왔다면, 이재명의 힘은 밑바닥에서 맨주먹으로 성공해 온 인생 스토리에 있다.

그는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은 수백 가지가 넘는다. 여기서 핵심적인 코드를 하나 넣어본다면 '경기도'라는 지역적 특성이다.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자유한국당 출신의 두 정치인 남경필과 원희룡. 남경필은 떨어지고 원희룡은 붙었다. 지역의 밀착성이 달랐을 것이다. 비록 특별자치도라고 하지만 육지와 떨어진 섬인 제주도에서 원희룡이 차지하는 위상과 수도권인 경기도에서 남경필이 차지하는 그것은 달랐다. 남경필의 정치적 고향인 수원도 넓고, 경기도는 그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기초자치단체로 축소해보자면 남경필의 정치적 기반은 수원이었고, 이재명은 성남이었다. 구시가지와 신도시가 섞여 있는 닮은꼴 도시에서 출발해 도지사까지 올랐지만, 경기도 선거는 그의 지지기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수도권 광역자치단체는 중앙정치의 바람이 그대로 휘몰아치는 곳이다.

중앙정치의 바람이 저 제주에서는 미풍에 불과했고, 경기도에서는 토네이도였다. 그 차이가 원희룡의 당선과 남경필의 낙선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정치적 고향인 수원에서조차 남경필은 이재명에게 밀렸다.

민주당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이재명의 여배우 스캔들이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엔 민주당 바람이 거셌고 너무나 강하게 불어왔다. 경기도 곳곳에 펼쳐진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한 현수막만으로도 중도적 성향의 표심을 강하게 끌어왔을 것이다.

이재명의 미래는?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결과가 아니라 미래로 향할 것이다. 가장 분명한 것은 이재명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가장 유념해야 할 명제 중 하나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이재명은 여배우 스캔들과 막말 논란,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에도 당선됐다.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열 기회가 주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경기도지사가 정치적 영광의 최대치라고 그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 일정 부분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에게 표를 준 사람 중에는 경기도지사까지는 밀어준다는 심리가 팽배했음을 알 수 있었고, 개인 이재명이 아닌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서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도 상당수이다.

그러나 원인이야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정치적 결과는 이재명 도지사로 귀결됐다.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기회다. 이재명은 그 기회가 주어졌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MBC 인터뷰 도중 '인이어'를 빼는 장면.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MBC 인터뷰 도중 '인이어'를 빼는 장면.
ⓒ MBC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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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직후 방송과 인터뷰에서 보인 이재명의 태도는 앞으로 경기도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되풀이 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파문이 커지자 그는 다음날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 수양이 덜 됐다고 자세를 낮추었지만, 주류 언론과 이재명이 밀월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주류언론과 식자층의 여론이 잘 먹히지 않는 기층에서 이재명의 거대한 지지 흐름이 나타날 것인가 여부다. 그것이 나타난다면 이재명은 더 큰 꿈을 꿀 수 있을 것이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재명의 최대치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필자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이전까지는 그 가능성 자체를 높게 보지 않는 축에 속해 있었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서 세상의 정치에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노무현은 착해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착하지 않은 포퓰리스트가 성공할 지는 아직은 미지수라고 본다. 적어도 민주당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있는 세력이 그를 용인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재명의 성공가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앞날은 알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땅에 진보 세력이 이렇게 주류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한 정치 전문가는 없었다.

미래를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이재명에게 주어진 커다란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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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