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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서 불안하죠. 이런 전봇대가 한 둘이 아니라니까요."

15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주택가. 전봇대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쪽으로 기울었다. 가느다란 몸체에 변압기와 통신 케이블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은 한눈에 봐도 위태로웠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전봇대를 바라보던 주민 최아무개씨는 바로 옆 공사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15일 오전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의 한 전봇대가 비스듬히 기울어있다.
 15일 오전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의 한 전봇대가 비스듬히 기울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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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공사하는 곳이 많아 진동도 많고, 트럭들도 많이 오가는데 자칫 전봇대가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변 골목을 돌아보니 기울어진 전봇대는 한 두 개가 아니었다. 5분 남짓 동안 10개가 넘는 이른바 '위험 전봇대'를 발견했다. 이런 전봇대는 주택 밀집 지역으로 갈수록 더 많았는데 대부분은 통신 케이블을 많이 매단 '과적' 상태였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바로 옆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바로 옆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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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강서구 화곡동에서 확인한 기울어진 전봇대
 15일 오전, 강서구 화곡동에서 확인한 기울어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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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은 어떨까. 이날 중구 약수동, 용산구 보광동 골목길을 확인해봤다. 전봇대 20여 개 중 5개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한 전봇대는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기가 제법 컸다. 스마트폰 간이 어플리케이션으로 측정한 기울기는 7도 정도로, 전봇대가 바로 옆 방범용 CCTV 기둥에 기대어 있는 듯 보였다(문제의 전봇대는 KT가 설치한 통신용 전주로 추정).

15일 중구 약수동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한 통신사가 설치한 전주로 추정된다
 15일 중구 약수동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한 통신사가 설치한 전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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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봇대는 밑부분의 콘크리트도 금이 가있었다. 큰 충격이라도 가하면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200여 미터 거리에서는 집을 짓는 공사를 하고 있어 대형 트럭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었다.

이 길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는 50대 주민은 "비라도 많이 오면 전봇대가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며 "머리 위를 잘 살피고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약수동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서울 중구 약수동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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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사고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월 부산에서는 초속 19m 강풍에 전봇대가 쓰러져 정전이 발생했고, 4월 경기도 파주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2014년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앞 도로에서 전봇대가 택시를 덮쳐 승객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골목길 곳곳에는 대형 트럭들이 오가고 있어 자칫 기울어진 전봇대와 접촉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골목길 곳곳에는 대형 트럭들이 오가고 있어 자칫 기울어진 전봇대와 접촉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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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이 통신선 얽힌 '과적 전봇대'... 점검도 엉터리

서울시는 2016년 자치구별로 전수 조사한 결과 '위험 전봇대'가 607개라고 밝혔다. 위험 요인으로는 전선을 너무 많이 연결해 쓰러질 위험이 있는 경우(262개),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145개)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서 보듯 전선을 많이 연결한 '과적 전봇대'는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통신 케이블 설치가 급증하면서 전봇대에 달린 전선은 크게 늘었다. 문제는 한전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통신 케이블을 매단 경우가 생겨 곳곳에 '과적 전봇대'가 많다는 점이다.

전봇대에 전력선 이외의 통신 케이블 및 설비를 설치하려면 한전의 승인을 받고 안전 기준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통신 케이블을 무단으로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6년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통신 사업자가 무단으로 사용한 전봇대는 21만 7725개에 달한다.

통신 케이블이 복잡하게 얽힌 전봇대
 통신 케이블이 복잡하게 얽힌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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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사용이 적발될 경우 내야 하는 위약금은 전봇대 한주당 2만 7천 원 정도에 불과하다. 통신사업자의 이익 규모를 고려할 때 부담이 없는 액수다. 지난 5년(2011~2015)간 통신사업자가 한전에 낸 위약금이 2500억 원을 넘었지만 무단 설치는 줄지 않았다.

한전의 전봇대 관리도 문제다. 한전은 2004년 영업정보시스템을 도입해 전봇대의 제작 연월일, 제작사 등 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2004년 이전에서 설치된 전봇대는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에 설치된 전봇대 870개 중 66%는 이력을 확인할 수 없다. 전신주의 사용 연한이 30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 수의 노후 전봇대가 현황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안전 점검은 허점 투성이다. 한전은 정기 점검을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육안 검사가 전부다. 이 때문에 전봇대 내부의 철근 부식이나 절단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전봇대가 기울어져 있어도 육안 검사만 통과하면 그만인 셈이다.

석원희 전국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전봇대가 기울어지면 바닥면이 갈라져 수분 유입이 많아지는 만큼 부식도 빨라진다"며 "전봇대 바닥을 직접 파 보지 않고는 정확한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태풍이나 장마가 오게 되면 기울어진 전봇대는 더 위험해진다"고 덧붙였다.

석 위원장은 또 "호주 같은 선진국에선 기울어진 전봇대를 볼 수 없다"며 "한전이 시민과 전기 노동자의 안전에 관심이 없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15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15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가에서 발견한 기울어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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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봇대, #기울어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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