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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m, 세로 40cm, 깊이 1m'의 틈 앞에서 한 청년의 생이 멈춰 섰다.

지난 3월 28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점검하던 하청업체 직원 이아무개(21)씨가 무빙워크 틈 속 기계 사이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이씨의 사망 이후 유가족 측은 원청인 이마트와 이마트 무빙워크 점검을 담당하는 A사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이씨가 소속된 회사는 A사의 협력업체다. 이처럼 여러 단계에 걸친 도급관계에서 발생한 산재의 경우 책임주체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지난 4월 5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시민들이 이마트에 숨진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고 있는 모습.
 지난 4월 5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시민들이 이마트에 숨진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고 있는 모습.
ⓒ 월간 <노동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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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이씨, 보도와 달리 사고 장소서 '1인 작업'

기존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시 작업자는 총 4명으로, 무빙워크 위아래 끝 부분에 각각 2명씩 자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강우철 마트산업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다.

강우철 조직국장은 "사고 당일 4명이 작업을 했는데 2명은 다른 층에서 작업을 했고, 이씨를 포함한 2명은 지하 1층 무빙워크 위아래에 각각 따로 위치해 있었다"고 말했다. 지하 1층과 지상을 연결하는 무빙워크 아래쪽 끝에 이씨가 위치하고, 위쪽 끝에 다른 작업자가 위치해 있던 것이다.

위쪽 작업자는 기계 작동을 알리고자 "업"이라고 외쳤지만 이씨는 이 말을 듣지 못했다. 정지된 무빙워크 위에 서 있던 이씨는 기계가 작동되자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이씨가 넘어진 곳은 무빙워크의 길 역할을 하는 팔레트가 돌아가는 틈 속이었다. 사고 접수 4분 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약 1시간 만에 이씨를 구조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는 결국 숨졌다.

이러한 안전점검 작업을 할 때에는 2인1조 작업이 원칙이다. 그러나 '2인1조'라는 대목을 두고 A사측과 유가족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강우철 조직국장에 따르면 A사측은 무빙워크 작업에 총 2명이 있었기 때문에 2인1조 작업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유가족측은 작업자가 각기 다른 장소에 있었던 만큼 2인1조 작업이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마트노조는 지난 4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너인 정용진 부회장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강우철 조직국장은 이마트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청에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청의 도의적 책임은 원청이 유가족에 사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답했다.

'원청 관리자' 처벌과 '원청' 처벌은 다르다?

마트노조측이 이마트의 도의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하청-재하청으로 이뤄진 '중층적 도급관계'에서 법적 책임을 명확히 가리는 일은 쉽지 않다. 실제 원청회사 또는 원청 사장(도급사업주·도급인)이 산재 발생과 관련해 기소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번 사고에 대한 이마트와 A사의 법적 책임을 가리는 것 또한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은 지난 3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년 동안 50대 기업에서 발생한 중대 사망 산재사고의 처벌 결과를 조사해 봤더니 대부분 300만 원에서 400만 원 정도의 벌금형에서 그쳤고, 그나마도 원청이 처벌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정애 의원은 또 "원청 대표는 단 한 건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기존 판례를 봐도 원청(또는 원청 사장)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법적 책임은 원청이 아니라 원청의 안전관리책임자인 근로자 개인에게만 주어진다. 원청이 법령에 따라 구체적인 관리·감독 의무를 갖거나, 어떤 작업에 대해 세부적인 지시·감독을 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원청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이대로라면 이번 사고의 법적 책임 역시 이마트와 A사 대신 이들 회사의 안전관리책임자 개인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법적으로 인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형사책임을 질 당사자는 사실상 한 개인이다. 현행 형법도 개인 책임을 전제할 뿐, 법인의 형사책임을 직접 규정하지는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형사특별법'인 경우만 법인에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이처럼 산안법이 원청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것을 두고 비판적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전형배 강원대 교수는 <강원법학> 제48권을 통해 발표한 '산업안전보건상 도급인 사업주의 책임구조'(2016)라는 논문에서 "기업의 중간관리자가 형법상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추궁 받는 것이지 도급인과 수급인의 법률관계로 인해 형사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한 제도적 대안으로는 OECD 최저 산재사망률을 기록한 영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영국은 지난 2007년 '법인과실치사법'을 도입해 사망 등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했다. 법인의 형사책임을 규정한 것이다. 함인선 한양대 특임교수에 따르면 이 법이 도입된 이후 영국의 건설 사망사고는 1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한겨레신문 3월 27일자 기고).

그러나 이러한 대안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산재가 발생한다고 해서 무조건 원청 책임으로만 규정하면 '책임 없으면 형벌 없다'는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과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전문가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원청 관리자) 개인이 책임지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가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며 "회사(원청)가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전제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또 "산업안전 사고는 불가항력으로 일어나는 사고"라며 "지금 산안법 개정안이 올라와 도급인이 거의 무조건 책임을 지는 식으로 법 개정이 되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 형법의 책임주의 이론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자격 원청, 실무자격 하청' 역할 분담으로 산재예방 효과 높여야

산재예방의 효과를 높이려면 원·하청의 명확한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근 입법 추세를 보면 산안법 개정으로 산재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원청의 책임을 묻는 것'과 '원청에 적절한 역할을 부과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청의 책임을 묻는 것은 산재 발생 이후의 문제다. 원청에 적절한 역할을 주문하는 것은 산재를 예방하는 사전대책과 관련된 사안이다. 접근 방향이 다르다.

학계 일각에서는 산안법의 산재예방 효과를 높이려면 원청이 하청의 산재예방 조치가 적법한지 여부를 지도·감독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청의 전문적 업무를 알지 못하는 원청 관리자가 산재예방과 관련된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 산안법에 따르면 원·하청 모두 근로자에게 산재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원·하청이 동일한 의무를 갖게 되면, 산재예방 조치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서로 떠넘기게 된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전문가 A씨의 견해와도 방향이 같다. 정진우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원청은 하청 전체를 지도감독하는 업무를 맡아야 한다. 원청에게는 하청이 안전·보건에 관한 여러 가지 기준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도하고 지원하는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원청과 하청에 동일한 의무를 부과하면 현장에서 집행이 안 된다"

정 교수는 안전ㆍ보건에 관한 실질적 조치는 하청에게 맡겨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원청은 관리자격, 하청은 실무자격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을 이마트 무빙워크 사고에 대입하면 사고 관련자(이마트·A사·이씨가 속한 협력업체) 각자에게 따져 물어야 할 구체적인 책임 소재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대안은 체계적인 제도 설계에 방점이 찍힌다. 정진우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상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2017) 논문에서 "사업장의 안전보건 확보를 위해서는 원청만이 아니라 하청 등 다른 의무주체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썼다.

즉, 원청은 산재예방 조치에 관한 지도·감독을, 하청은 산재예방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담당하도록 관련 법령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조적 문제 방치된 순간에도 산재는 '현재진행형'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2016년 기준 산재 사고로 사망한 근로자는 969명.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산안법의 72개 조문과 하위 법령에 규정된 수많은 문장들도 숨진 이씨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 연간 1000여 명에 이르는 산재 사고 사망자들 또한 산업안전보건 법령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원청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와 산재예방에 관한 원·하청의 역할이 불분명하게 방치된 이 순간에도 산재 사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월간 <노동법률>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4월 11일 월간 <노동법률> 인터넷판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www.worklaw.co.kr/)



태그:#도급관계, #원청, #하청, #산재, #산업안전보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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