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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봉주 전 의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관련 의혹 제기로 기소됐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곧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 (자료 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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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는 거짓말을 했다. 정봉주 전 의원 얘기다. 그는 2011년 12월 23일 행적이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동안 그가 보인 행동은 분명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6일 아침 피해여성이 그에게 첫 문자를 보냈을 때, 그는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고,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이미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그는 이미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고, 둘째 그녀가 왜 그러는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나면 사과를 할 것이냐'는 그녀의 물음에 그는 대화를 말없이 끊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끝까지 믿어줘서"

미투 폭로가 나오자 지난 3월 9일 출마선언을 보류했던 정봉주는 3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저 수동적으로 방어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프레시안>의 보도를 "대국민사기극"으로 규정하며, 피해여성과 <프레시안>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매섭게 몰아세웠다. 이렇게 공격적 거짓말을 할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거짓말을 하고도 들키지 않으리라는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가 그렇게 대담했던 것은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 회견으로 여론을 반전시킨 후 그는 자신의 SNS에 감사의 글을 남긴다. 

"나꼼수,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당신들이 끝까지 믿어줘 고맙다. 내 곁에 당신들이 있어 힘이 난다." (03/14 11:01)

한 마디로, "당신들"이 있어서 성추행 사실을 부정할 수 있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말인즉 맞는 얘기다. 실제로 나꼼수 멤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는 <프레시안>의 폭로가 나온 즉시 성추행 의혹을 곧바로 인정해야 했을지 모른다. 그가 성추행 사실을 부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뒤에 나꼼수 멤버들이 서 있는 덕분이었다. 왜? 그가 보도자료(03/09)와 기자회견문(03/12)을 통해 발표한 2011년 12월 23일의 가짜 알리바이는 나꼼수 동료들의 도움이 없다면 애초에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따져 보자. 정봉주는 자신이 2011년 12월 23일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병원에 오후 5시 경에 도착했다. 왜 병원에 간 시간을 속였을까? 간단하다. 성추행이 (민국파의 증언대로) 병원 갔다가 오는 길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두 사건이 연동되어 있기에 가짜 알리바이를 만들려면 병원 간 시간부터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작전은 꽤 효과적이었다. 왜? 그가 렉싱턴 호텔에 갔다고 올바로 증언한 민국파마저 시간에 관해서는 기억의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12월 23일 12시~2시 사이에 그는 홍대에서 녹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그는 그 시간에 자신이 병원에 갔다고 말했다. 그럼 나꼼수 녹음은 언제 했나? 이 물음에 답하려면 녹음시간을 옮겨놔야 한다. 그래서 12월 23일 오후에 한 녹음을 전날 밤부터 당일 새벽까지 했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거짓말을, 정봉주 혼자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왜? 그 녹음은 정봉주 '혼자'가 아니라, 김어준,김용민,주진우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7년 전의 일을 어떻게 정확히 기억하냐고? 물론 한두 사람이 기억에 착오를 일으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중요한 날 4인 멤버 모두가 우연히, 일제히, 동시에, 만장일치로 오후 녹음을 새벽에 한 것으로 착각했다? 이건 생각하기 어려운 가능성이다. 게다가 그날 마침 이들이 낮 12시부터 녹음을 했다는 <한겨레> 기사가 있다. 나아가 그날 녹음에는 심지어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말까지 나온다. 녹음을 새벽에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날 성추행이 이루어진 시간은 5시 이후. 그 시간에 정봉주는 뭘 했다고 했을까? 제 말로는 "오후 늦게"까지 명진 스님을 만나고 "이른 저녁"에 나꼼수 멤버들과 고기 집에 갔다고 했다. 실제로는 어땠는가? 그날 나꼼수 멤버들이 녹음을 끝내고 식당으로 향한 게 오후 2시 6분. 명진 스님 만나고 식당에서 나온 게 3시 11분. 결국 정봉주의 말대로라면 그날 나꼼수 멤버들은 함께 점심 먹고 명진 스님 만났다가 3시 11분에 식당에서 나와 바로 다른 고기 집에 갔다는 얘기가 된다. 이 먹성, 생물학적으로 과도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정봉주는 호텔에 있었던 그 시간에 나꼼수 멤버들과 고기 집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 역시 다른 멤버들과 입을 맞춰야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

결과적으로 나꼼수 멤버들은 정봉주의 거짓말을 도왔다. 이들의 조력은 사실 소극적 묵인 수준을 넘는다. 예를 들어 김어준은 <블랙하우스>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했다. 김용민 역시 제 SNS에 역시 수 차례 피해여성과 <프레시안>를 공격하는 악의적 글로 그를 지원했다. (다행히 주진우의 적극적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제발 주 기자만은 그 일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기를.)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나꼼수,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 당신들이 끝까지 믿어줘 고맙다. 내 곁에 당신들이 있어 힘이 난다." (03/14 11:01)

팩트만 확인했을 뿐? 오징어 먹물 전술

기억의 착각이든 거짓말이든 이를 뒷받침해 준 것은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였다. 정봉주는 앞서 <프레시안> 보도에 따른 성추행 추정 시간을 스스로 "2011년 12월 23일 3시에서 5시 사이"로 제시했다. 이게 뭘 의미할까? 뒤집어 생각하면, 그 시간의 알리바이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고로 그를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추행 가능시간을 그가 제시한 "3시에서 5시 사이"의 바깥에서 찾을 것이다. 이 경우 후보는 3시 '이전' 아니면 5시 '이후'다. 사건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시간을 오후 3시 이전으로 보았다. 왜? 피해자가 시간을 특정하지 못하는 틈을 타 정봉주가 병원에 간 시간을 몇 시간 앞당겼고, 민국파가 부정확한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SBS는 민국파가 지목한 "1시에서 2시 사이"에 정봉주가 홍대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몇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방송 내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민국파가 지목한 1시~2시 사이에 정봉주는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확인한 팩트다.'

 SBS<김어준의 블랙하우스>.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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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는 딱 여기까지만 얘기했다. 하지만 이 두 문장은 필연적으로 '고로 정봉주는 무죄'라는 결론을 함축한다. 문제가 되자, 제작진은 자기들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다. 그저 사회적 관심을 끄는 사안에 대한 팩트만 체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라. 

"저는 2011. 12. 23. 렉싱턴 호텔 룸에서 A씨를 만난 사실이 없습니다."

3월 9일 정봉주가 뿌린 보도자료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이게 실체적으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문장 자체는 참이다. 정봉주는 실제로 호텔룸에 간 적이 없다. 그가 간 곳은 호텔 룸이 아니라 호텔 카페의 룸이었으니까.

정봉주는 2011년 12월 23일 아침 서초동 민변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민변 변호사들과 밥 먹다 어머니 소식을 들은 것도, 거기서 하계동 을지병원으로 향한 것도, 을지병원에서 홍대로 돌아와 명진 스님을 만난 것도 아니었다. 그 시간 내내 그는 홍대에 있었고, 병원에 간 것은 명진 스님 만난 후의 일. 그럼에도 SBS는 그의 알리바이를 '팩트'로 공인했다. 방송이 채널을 이용해 2차 가해를 한 셈이다. 

정봉주가 시전한 것은 '오징어 먹물' 전술이다. 그가 병원 갔다가 오는 길에 성추행을 한 것은 실제로는 5시 이후의 일. 하지만 정봉주는 그 시간을 제멋대로 "3시에서 5시 사이"로 규정했다. 그리고는 병원에 간 것이 1시 이후라 주장함으로써, 언론과 세인의 관심을 3시 이전의 시간대로 돌린다. 이로써 12시~5시 사이의 행적이 검증대상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실제로 성추행이 일어난 것은 5시 이후. 12시~5시 사이를 뒤져봤자 뭐가 나올 리 없다. 한 마디로 엉뚱한 시간대에 먹물을 뿌리고 오징어는 내빼버린 셈이다. 그 먹물을 헤쳐 그 안에 오징어가 없음을 공인해 준 것이 <블랙하우스>다. 김용민도 다르지 않다.

"저나 그 언론들이나 정 전 의원이나 낮 12~5시 사이에 정 전 의원의 행적에 집중한 가운데 벌어진 논란인 점, 저는 그 시간에 정 전 의원이 여의도에 간 사실이 없다고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확신한 점 (...) 이제 와서 이야기해봐야 지금 국면에서 누구에게 설득이 되겠습니까."

그 역시 "12~5시"를 얘기한다. 한 마디로, 그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게 "팩트"가 아니냐는 것이다. 자신은 그 팩트를 믿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검증대상 시간으로 "12~5시"를 제시한 것 자체가 이미 사기극의 일부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실제로 검증해야 할 시간대가 5시 이후라는 것을 김용민이 몰랐을까? 왜? 정봉주의 말을 들어 보자.

"저나 명진스님의 기억으로 이 모임은 오후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으며, (...) 저는 이른 저녁 무렵 명진스님과 헤어진 후 '나는 꼼수다' 멤버들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 무렵 정봉주는 나꼼수 멤버들과 같이 있지 않았다. 오후 5시 7분 그는 을지병원에서 나와 렉싱턴 호텔로 향했다. 거기서 카드로 결제를 하고 나온 것이 6시 43분.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그들과 같이 있었노라 했다. 근데 이 거짓말,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거짓말이 유지되려면 동료들의 묵인이 필요하다. 그 동료 중 하나가 김용민이다. 아무튼 이들의 협조로 정봉주는 5시 이후의 알리바이를 확보했다. 그리고는 엉뚱한 시간대("12~5시")에 먹물을 뿌려놓고 거기서 오징어 찾아보라고 한 것이다.

'덮고 가고 싶은 유혹'에 대하여

정계를 은퇴하며 정봉주는 다른 이들에게는 사과를 하면서 정작 피해자에게는 사과를 안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보기에 그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안' 한 게 아니다. '못' 한 거다. 왜? 자신이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는 순간 무고죄로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취하했지만, 그는 <프레시안>을 비롯한 몇몇 언론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한 바 있다. 만약에 그가 지금 이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한다면, 법정에서는 그것을 제 주장의 허위성을 알고 고소를 한 것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 바로 무고죄로 걸리게 된다.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걸까? 그럴 리 없다. 그가 멤버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거짓말로 시간대를 12~5시로 옮겨 놓은 것은, 오후 5시 이후에 그가 감추고 싶어 하는 어떤 행적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억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무고죄에 걸리게 된다. 게다가 그 동안 그와 그의 열성 지지자들이 피해자와 <프레시안>에게 입힌 가공할 규모의 피해를 생각해 보면, 죄질도 상당히 안 좋다. 그러니 그로서는 끝까지 "기억이 잘못" 됐다고 우길 수밖에. 한 마디로 이제는 사과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당일 렉싱턴 호텔에서 카드 결제내역이 있다고 자백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장난을 친다. 

"유리한 증거가 많이 있다는 생각에 덮고 가고 싶은 유혹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스스로의 눈으로 결제내역을 직접 확인한 이상 기억이 잘못되었음이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냥 덮고 갈 수도 있었을 결제내역을 자신이 '쿨'하게 내놓았다는 것이다. 웃기는 얘기다. 지금 그는 <프레시안>에 의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맞고소 당한 상태다. 명예훼손의 경우 기소하기 전에 수사기관에서 먼저 그것이 '사실'에 의한 것인지, '허위'에 의한 것인지 밝히게 된다. 수사기관에서 특정인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확인하는 게 바로 카드 결제내역. 그 내역은 그가 덮는다고 덮어질 게 아니다. 어차피 나오게 돼 있으니까. 그래서 미리 선수를 친 것뿐이다.

정봉주가 대중을 속였는가

'성추행 의혹' 전면 부인... 증거 내세운 정봉주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의혹이 제기된 성추행 시간과 장소에 자신이 없었다는 사진 등을 증거로 내세웠다. 또한 프레시안 보도에 대해 '기획된 대국민사기극'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 '성추행 의혹' 전면 부인... 증거 내세운 정봉주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3월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의혹이 제기된 성추행 시간과 장소에 자신이 없었다는 사진 등을 증거로 내세웠다. 또한 프레시안 보도에 대해 '기획된 대국민사기극'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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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직후 그의 입장은 '만남 은 인정하되 성추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중앙일보>에는 기사가 그렇게 나갔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기사의 수정을 요구하며 아예 렉싱턴 호텔에 간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을까? 3월 9일 보도자료와 3월 12일 기자회견문을 보자. 일단 정봉주가 제시한 12월 23일 일정을 보면, 그새 그가 알리바이를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나꼼수 멤버들의 묵인 하에 12시에 시작한 녹음이 시간을 거슬러 새벽에 끝나고, 렉싱턴 호텔에 있던 시간에 동시에 멤버들과 고기를 먹고 있게 된 것이다.

그럼 정봉주가 멤버들과 함께 대중을 속인 건가? 아니다. 외려 대중이 그를 속였는지도 모른다. 정봉주가 한 거짓말은 외려 대중이 만들어줬다. 폭로가 나오자 그의 행적에 관한 자료나 기록을 찾아 그에게 전해준 것은 대중이었다. 그들은 당사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알리바이 확보에 나섰고, 당사자보다 더 격렬하게 피해자와 <프레시안>을 공격했다. 정봉주가 대중을 속인 게 아니다. 대중이 정봉주를 속인 것이다. 즉, 대중은 정봉주를 속여서라도 그에게 계속 속고 싶었던 것이다. 왜? 자기들의 우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까. 대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멍청할지도 모른다.

나꼼수 멤버들은 왜 그의 거짓말을 말리지 않았을까? 그들의 표현을 빌면 왜 그를 "믿어" 줬을까? 정말로 기억이 안 나서? 네 사람이 우연히 동시에 단체로 동일한 허위기억을 가질 수는 없다. 혹시 자신들을 이익공동체라 생각했을까? 하긴, '나꼼수' 브랜드로 묶인 이상 한 멤버의 추문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그 일을 함께 묻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독특한 철학일 수도 있다.  거기에 따르면, 입진보들은 도덕적 결벽성에 빠져 동지의 뒤통수나 치며 이적행위만 하나, 실천하는 진보는 같은 진영 사람이라면 잘못을 한다 해도 내치지 말고 적 앞에서 끝까지 감싸준단다.

애초에 철학이 그러니 정봉주를 "믿어"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는 뭐 가치관의 차이이니 굳이 탓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이 철학의 바탕에는 '진영 멘탈리티'가 깔려 있다. 아마도 그들이 정봉주를 감싼 동기 자체는 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미투'로 인해 진보진영이, 진보정권이 적의 파상공격을 받아 무너질까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 두려움에서 김어준의 "공작적 사유" 가 나오고, 손혜원·정청래 전현직 의원이 그를 두둔하고, 조기숙 교수와 최민희 전 의원이 진짜와 가짜 '미투'의 감별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리라.

그럼 이들의 우려는 옳은가? 정당 지지율의 변화를 보자. 미투로 인해 진보진영 인사들의 성추행 행각이 줄줄이 폭로되었다. 그렇다고 어디 여당 지지율이 떨어지던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 그건 한껏 치솟은 대통령 인기 덕이라고? 그럼 야당 지지율을 보자. 그들의 지지율은 올라갔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 사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에도 아무 변화 없었다. 즉, 그들도 진보진영의 '미투' 폭로에 따른 반사이익을 전혀 못 봤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역구에 가서 '미투' 당한 민주당을 비판하면 주민들이 이렇게 되묻는단다. "근데 너희 당에서는 언제 터지니?" 한 마디로,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시민들의 생각은 성추행은 진보/보수 어느 쪽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유권자들은 차라리 그것을 보고 그 진영에 대한 지지여부를 결정한다. 한 마디로, 진영을 지킨답시고 굳이 성추행 사실을 은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충격적인 미투 폭로가 줄지어 일어났는데도 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를 깔끔하게 원칙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미투운동에 손을 들어주었고, 여가부 장관은 정봉주 사건에서 피해여성 편을 들었고, 민주당은 정봉주의 복당을 만장일치로 불허했다. 당대표의 의지가 컸다고 들었다. 추미애 대표가 보여준 단호한 리더십은 평가 받아야 한다.

반면, 진영논리에 빠져 무조건 같은 편의 허물을 덮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미 전례가 있다. 2012년 총선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를 하고 말았다. 수도권에는 서울에는 수백 표 안 쪽으로 승패가 갈린 곳이 많았다. 패인은 김용민의 막말. 사건이 불거졌을 때 당시 민주당 선거캠프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내게도 의견을 물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말이 필요 없다, 당장 사퇴시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사퇴하지 않았고, 그로써 총선 참패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 끝까지 김용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게 바로 정봉주였단다. (이 얘기는 그에게서 직접 들었다.)

정봉주는 자신이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가 되어 안철수랑 붙을 거라고 호언하고 다녔다. 원래 그의 말에는 허언이 섞여 있어, 나는 이를 가벼운 농담으로 들었으나, 그의 지지자들은 이 택도 없는 소리를 진지하게 믿는 모양이다. 이 일이 없었더라도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만,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그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었다고 해보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선거 중에 한 여인이 '폭로'를 한다. 후보가 이를 뚝 잡아뗀다. 지지자들도 후보 편을 들어 알리바이를 민중 창작한다. 그러다 선거 막바지에 호텔에서 긁은 카드결제내역이 발견된다. 서울시장은 야당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정권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불 보듯 빤하지 않은가?

내게 놀라운 것은, 정봉주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궁지에 몰리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정치인이 거짓말 했다는 게 뭐 놀라운 일인가?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터무니없이 낮은 그 거짓말의 수준이다. 그 빤한 거짓말에 세상이 속을 거라 기대했단 말인가? 지난번 글에서 "그가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본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대체 왜 그는 엉성한 거짓말로 감히 세상을 속이려 했을까? 이유가 있을 게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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