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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은 농촌에서 삶의 해답을 발견해 가는 즐거움을 누린다. 도시에서 팍팍한 삶을 살다가 배가 고파 농촌을 내려간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어 키운 달고 맛있는 곡식과 야채들로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의 생활은 어떠한가?

나는 몇 달 전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했다. 시골에 있을 당시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땅 뿐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땅과의 대화였다. 자연스럽게 씨앗을 구해 소소하게 텃밭을 짓고, 봄이 되면 풀 뜯어 요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도시 한 가운데 있다.

나에게는 땅이 필요했고 식재료가 필요했다. 내 집 뒷산을 파보면 쓰레기가 천지로 묻혀 있을 테고 내가 볼 수 있는 식재료는 마트에 곱게 비닐로 포장되어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자연을 원했고 나와 대화하며 키운 야채들을 원했다. 나는 도시에서도 우리가 노력한다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도시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실험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도시에 오자마자 나는 키울 야채들을 물색했다. 가장 좋은 것은 씨앗을 사서 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끈기 없기로 소문난 내가 과연 1년 동안 모시고 살펴서 애들을 키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 쓰레기통을 뒤진다.

냉장고에서 무가 싹을 틔웠다!
 냉장고에서 무가 싹을 틔웠다!
ⓒ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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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것들은 그 양이 한정 없다. 이 중에서 가장 키우기 쉬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대파. 대파 뿌리를 일정 정도 잘라 물에서 키운다. 당근 머리. 잘라서 물에 키우면 싹이 난다. 그냥 샐러드로 먹는다. 양배추와 양상추. 인내심을 가지고 키우면 몇 달 후에 이파리가 나기 시작한다.

양파뿌리. 양파뿌리만 잘라 물에 담그면 시간이 지나 싹을 틔운다. 이 밖에 시금치, 고수, 무, 고구마 등 죽었다고 생각한 야채들이 사실은 뿌리만 살아있으면 다시 생명을 싹 틔운다. 그리고 양파, 무, 당근, 마늘 등의 종류는 열매에 영양분이 있어서 뿌리가 없어도 싹이 난다. 그리고 경험상 이것들은 물에서 일정 정도 키운 후에 화분으로 옮겨야 죽지 않고 튼튼하게 자란다.

베란다텃밭
 베란다텃밭
ⓒ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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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것은 여기에 관심 있는 주부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 중에 상식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농촌이라면 따로 음식물 쓰레기로 분리되지 않고 텃밭에 버려져 비료가 될 아이들이거나 그 중에 다시 싹을 틔울 아이들이다.

나는 그냥 그 아이들을 건져서 도시 베란다에서 키운 것 뿐이다. 물론 이것이 내 식재료 구입에 도움이 되냐 하면 아니다. 이 작물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 정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도시의 소비패턴 속에서 식재료를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가능성을 보고 싶었다. 도시에서도 무언가를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이것이 더 발전되어 아파트에서 공동으로 텃밭을 만든다거나 아니면 예전처럼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어서 도시에서 누구나 자신의 야채와 과일을 기를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요즘에는 도시농부, 옥상텃밭처럼 많은 시도들이 있다. 누구나 아주 쉽고 편하게 자연과 대면하고 내 먹을거리와 이야기하며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아무 감응 없이 식재료를 진열장에서 가져와 요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들을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게 내가 기른 작물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언젠간 내 집 뒷산에 쓰레기 대신 양파와 고구마가 심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가는 시장에서 냉장고의 비닐 봉지 대신에 농부들의 수레에 가득한 작물들을 파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태그:#음식물쓰레기, #베란다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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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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