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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친한 후배와 만나 수다를 떨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 후배가 자신의 친한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두 사람 모두 결혼 10년을 넘기고 보니, 가정 안의 대소사가 많았는데 요즘 들어 가장 큰 이슈는 시부모님의 건강이었다.

한 명은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치매 증상으로 애를 먹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시어머니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속으로 '아이쿠, 고생들이 심하겠구나' 하면서 듣고 있는데, 무방비 상태에서 한 방을 얻어맞았다.

둘의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월드에서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하느라 지친 후배가 친구에게 던진 말이 발단이었다.

"그러고 보면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게 제일 마음 편하고 멋있지."

그 말에 친구가 "그런 소리 하지 마. 너 주변에 싱글로 멋있게 사는 사람이 있대?"라고 했다면서 후배가 새하얀 도화지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없더라고요."

그 말을 싱글인 내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후배의 얼굴을 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넘어가야 하나? 한번 짚어줘야 하나?'

'나도 사람들 눈에 후져 보일까?'

 일부러 멋있는 척을 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연기를 한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일부러 멋있는 척을 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연기를 한 적은 있었던 것 같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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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나를 저격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 워낙 친하니 내가 싱글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은 채 무심코 나온 말이라는 걸 알기에 말은 삼켰지만, 드러내기 치사한 씁쓸함과 질문들이 뒤엉켜 머릿속을 어지럽게 둥둥 떠다녔다. 

'나도 사람들의 눈에 후져 보일까? 나는 멋있는 싱글로 봐주길 바라고 있을까? 멋있다는 건 뭘까?'

일부러 멋있는 척을 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연기를 한 적은 있었던 것 같다. 싱글이지만 좀 특별한, 남들 보기에 꿇리지 않는 직업을 갖고 있는, 괜찮은 취미를 즐기는, 히스테리 부리지 않고 성숙한.

한 마디로 뭔가 있는 척 대단한 척 거품을 키우고 화려하게 색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저에는 어이없는 이유가 깔려 있었다. 혹시나 초라하게 보일까봐, 그래서 무시당할까봐.

나를 방어한다는 명목 아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특별함을 주문하며 포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한증막 같은 답답함이 훅 밀려들었다. 더 이상 껴입을 수 없을 정도로 겹겹이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 목까지 차올라서 숨이 막혔다. 

남자와 데이트를 한 지가 꽤 된 나. 그럴듯한 명함 없이 글 하청업을 하며 살고 있는 나. '마흔이 넘은 나이에 완전 찌질하군' 그런 자기 비하 따위를 집어치우고 거품으로 가득 찬 포장을 풀어헤치겠다고 결심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기로 하자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그동안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여겼던 것들을 벗어낸 뒤에 맞닥뜨려야 했던 내 남루한 자존심은 어찌나 초라하던지. 도망쳐서 다시 껴입고 싶은 유혹이 달려들 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이 글쓰기였다.

당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나는 일주일에 한 편씩 내 이야기를 쓸 때마다 한 꺼풀씩 탈피를 했던 것 같다. 글로써 선언을 반복하고 덕분에 해방의 탈출구를 찾은 셈이다. 물론 그 후로도 처음 만난 사람이 "무슨 일 하세요?"하면 잠시 허둥대기도 하지만, 다시는 거짓으로 스스로를 치장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되잡곤 한다. 돌아보면 그 누구도 나에게 근사하게 살아야 한다고 한 적이 없었다. 나 자신 외에는.

소박한 동사들의 가치

 분명한 것은 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명함을 지니고 성공해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명함을 지니고 성공해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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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근사하고 멋있게 살 순 없다. 그러나 누구나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는 있다.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남편의 사랑을 받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명함을 지니고 성공해야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내가 의미를 두는 것은 분명해졌다. 내 삶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되는 때든 병풍 같은 엑스트라가 되는 때든 내 페이스를 지키며 나답게 하루를 살아내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게 많이 투자한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중에서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한 은유 작가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내 모습과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판단 되어진다 해도, 현재의 내 삶과 내 모습을 진실하게 드러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하게 해나갈 때 삶은 분명 응답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답게 살기 위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문신처럼 새긴다.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느껴주는 것, 농담을 잃지 않는 것, 따뜻하게 손잡아 주는 것, 책과 음악이 주는 기쁨에 반응하는 것, 느리게 산책하는 것. 나는 이 소박한 동사들의 가치를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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