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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플랜>의 제작을 맡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프로젝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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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머릿속엔 늘 '프레임'이 작동한다. 프레임은 복잡한 정보들을 하나의 단순한 구조 안에 넣어 이해하는 뇌의 인식 방식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나름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프레임은 무의식적인 것이라 스스로 그것이 프레임에 의한 사고라는 것을 깨닫기 어렵고, 의식적으로 프레임을 벗어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코끼리가 생각난다는,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다. 프레임은 그만큼 강력하다.

지난 주말, 많은 이들의 뇌 속에 엄청난 프레임 하나가 들어와 버렸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한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말 때문이다. 김어준은 "(미투 운동을 공작의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를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 등장시킬 것"이라는 구체적인 실행 방법까지 '예언'했다.

예언일 뿐인데,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금태섭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한 글에, 금 의원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자, 26일 김씨는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 것이지 미투를 공작이라고 한 건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관련 기사 : '미투공작' 예언한 김어준 "금태섭과 싸움 붙이지 마라"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김어준의 발언은 단순한 예언을 넘어, 아주 위험하고 심각한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부 쪽 인사의 성폭력 문제는 정치 공작'이라는, 더 넓게는 '정치인의 성폭력 문제는 정치공작'이라는 프레임이다.

앞으로 정치권의 누군가 미투의 대상으로 지목이 된다면, 김어준의 말을 들은 어떤 이는 그것을 정치공작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성폭력이라는 본질에 집중하기보다 이것이 정치공작이냐 아니냐,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프레임은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스스로 그 프레임 안에 갇혀 있음을 깨닫기 어렵다.

 < SBS 스페셜> '미투 나는 말한다' 편에 출연한 성폭력 예방 강사 손경이씨는 자신도 성폭행 피해자였다고 밝혔다.
 < SBS 스페셜> '미투 나는 말한다' 편에 출연한 성폭력 예방 강사 손경이씨는 "안전한 사람들이 많을 때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말하기는 배가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투 증언을 의심하게 만드는 김어준의 발언은 여성들의 '안전한 말하기 환경'을 해친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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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엔 진보-보수가 없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직접 가해자를 지목하며 확산되고 있다. 검사, 문학, 연극계 인사들이 대상이 되었지만, 그래서 검사집단과 연극계가 범죄 소굴인 양 통째로 매도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성폭력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지인 중에 검사는 한 명도 없고 그저 연극 관객이었을 뿐인 나도 성추행을 당했다. 그것도 여러 번. 장소는 버스, 학교, 길거리였다. 내게 성추행을 한 이들이 모두 검사나 연극계 인사였을까? 천만에.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 쪽'이라고 해서 성폭력 관련된 문제가 없었을 거라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있다'라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상대 정치진영에선 이것을 이용하고 싶을 테고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김어준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 행태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어쩌면 김어준은 '공작 계획을 미리 국민들에게 알려서, 혹여 공작을 벌이더라도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아주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공작인지 아닌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성폭력 사건이 공작인지 아닌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예언으로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게다가 '좋은 의도'란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그가 말한 문재인 정부 쪽 인사일까, 더불어민주당일까, 문재인 지지자일까? 설마 국가가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이게 올바른 길이라고,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설마.)

미투 운동이 정치판에 끼칠 악영향을 걱정했다면, 당 차원에서 논의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패배하는 것, 그게 정치판이다. 유능한 인재를 키우지 못했고, 제대로 된 전략으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그 당의 책임이다. 설사 공작에 '이용'되더라도 당당하게 맞서거나, 사실인 부분이 있다면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물러나는 것, 이렇게 책임 있는 모습으로 대응할 순 없었을까. 이것이 미투가 바라는 세상일 텐데 말이다.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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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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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운동 #미투, 정쟁의 '도구'로 쓰지 말라

성폭력 사건을 공작에 이용하려는 것이나 이를 같은 논리로 막아내겠다는 생각, 이 둘은 모두 성폭력을 정쟁의 도구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 미투는 스스로 피해를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이고 운동이다. 미투는 결코 조용한 운동이 아니다. 시끄럽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한 발씩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민주주의와 아주 많이 닮았다. 정치권도 미투 운동을 쇄신의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김어준은 자신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프레임을 먼저 내밀어, 미투 운동을 고작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켜 운동의 취지를 훼손하고 피해자들의 입을 막을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가 예언한 그 공작은 너무 저급하다. 이를 막고자 한 김어준의 발언이 미투 운동에 더 심각한 프레임을 씌웠다는 점에서, 더군다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 저급한 프레임의 시작은 김어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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