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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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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그리고 #위드유]
① 조민기보다 주목받는 피해자, 막나가는 언론

"두 명 이상이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다. 강간은 정치적인 문제다."

미국의 여성주의 그룹인 '뉴욕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1971년 발표한 '강간 반대 선언문'에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많은 범죄가 '사회 문제'라고 지적되어 왔지만 사람들은 유독 성범죄만 '사적인 일'로 치부해 왔다. 그래서 지금껏 성폭력 사건은 공론화가 어려웠고 피해자들은 그저 참거나 개인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반복해 왔다. 성범죄가 공동체 전반의 문제로 부상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교적 폐쇄성이 강한 집단에서는 성폭력이 발생해도 내부에서 은폐하거나 적당히 무마하고 지나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작년의 '#OOO_내_성폭력' 운동이 이런 사건들을 가시화하고자 했고, 올해는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한 공론화가 이어졌다.

이윤택 연출가의 오랜 성폭력 가해 사실이 밝혀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공개된 사건만 손가락으로 꼽을 수준이고 지금도 공론화는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문화계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지른 일은 최근들어 활발하게 고발되어 왔다.

모두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이윤택 연출가의 사건이 더욱 끔찍한 점은 그가 속한 연희단거리패 구성원들이 성폭력을 방조하거나 공모하고 숨기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해 사실이 공개된 이후에도 이들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 중인 오동식 배우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이윤택 연출가와 단원들이 억울하다는 감정을 드러내며 사건을 무마할 궁리만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오동식 배우 또한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윤택, 사죄는 당사자에게 하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동안 한 연극배우가 항의피켓을 들고 있다.
▲ "이윤택, 사죄는 당사자에게 하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동안 한 연극배우가 항의피켓을 들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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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성폭력은 왜 만연한가

참담하지만 놀랍지는 않은 일이다. 공동체 내 성폭력과 관련한 이 같은 흐름은 이전부터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윤택 연출가가 그토록 오랜 시간 성폭력을 저지르는 동안 왜 구성원들은 그를 몰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연출가의 능력과 연극계에서 가진 명망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그게 피해자가 겪은 고통보다 더 중요했을까.

흔히 표현하듯 '괴물'과 같은 사람이 리더로 있는 공동체에 몸을 담고 싶었을까. 하다못해 조직의 위험 관리 차원에서라도 이윤택 연출가와 같은 사람을 내버려 두는 건 상식적인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사태 이후로 연희단거리패가 이전과 같은 지위를 누리기는커녕 존속이나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추측가능한 답은 한 가지다. 공동체의 누구도 성폭력을 그렇게 심각한 사건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도 있다. 7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강간 문화'이다. 강간 문화는 성폭력이 만연하고 규범화되어 있으며 사회가 이를 쉽게 용인하는 환경을 뜻한다. 여성을 멸시하는 혐오와 성적 대상화가 만연하고, 그래서 성범죄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문화가 이런 환경을 뒷받침한다.

성폭력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결국 무엇을 뜻하겠는가. 실제로 일어난다 해도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사건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창창한 앞길을 막는 일'이 되어버리고,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공동체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이로 낙인이 찍힌다.

'강간 문화'가 만들어낸 사회적 문제

이 같은 '강간 문화'가 악질적인 것은 남성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당연한 듯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걸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문화는 개별 집단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성폭력이 만연할 정도로 혐오와 성적 대상화가 무분별한 공간에서 과연 여성은 어떻게 치부될까. 취약하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이는 여성성에 대한 비뚤어진 이미지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하나의 규범을 형성한다. 말하자면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 여성은 비정상이라고 낙인이 찍히거나 공격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손나은 인스타그램 갈무리
 손나은 인스타그램 갈무리. 그는 얼마전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올려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 손나은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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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얼마 전 벌어진 사건을 떠올려보자.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은 얼마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올려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많은 수의 한국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라면 치를 떤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평소에 그들이 주장하는 만큼 과격한 것일까.

만약에 여성을 전혀 진취적이거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아서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다면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여성으로서 따라야 할 성역할이나 성적 규범이라고 생각했기에 당사자가 놀라서 사진을 내릴 정도로 날 선 말들을 퍼부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언어로 다뤄져야 하는 문제

때문에 나는 지금 이어지고 있는 성폭력 공론화가 단지 가십으로 소비되거나 혹은 몇몇 가해자들의 책임만 묻고 다시 조용해지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성폭력을 만연하게 만들고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강간 문화와 이를 조장하는 여성 혐오와 무분별한 성적 대상화,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여성 억압적인 성역할과 성적 규범까지 우리 사회는 파고 들어가야 한다.

남성들이 여성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소비하고, 교환하며 자신들의 연대를 다지고 성별 관계에서 부당한 권력을 취해온 행태를 종식시켜야 한다. 불평등이 사라진 때에, 남성들은 여성을 함부로 권리와 존엄을 침해해도 괜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성폭력은 그런 식으로 끝이 나야 한다.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 왔다. '강간 반대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는 여성해방을 위해 페미니스트의 언어로 다뤄져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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