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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질문들

아이들과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연극계 미투 운동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까꿍이가 대뜸 묻는다.

"아빠, 성추행이 뭐야?"
"성추행? 그거 있잖아. 어떤 사람이 내 몸을 막 만지거나 비벼대는 거. 그럴 때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해야 해. 알았지?"
"응. 그럼 성폭행은 뭐야?"
"성폭행? 그건 음. 성추행보다 더 폭력적인 거야. 폭행이 뭔지는 알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어려웠다. 아직 성에 관한 지식이 없는 아이에게 성추행, 성폭행을 구분하여 대답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성추행, 성폭행이란 단어가 나오니 뉴스를 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아이들을 어떻게 그와 같은 정보로부터 배제시킬지가 고민이었다. 어쩌면 내가 난감한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함인지도.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아내가 눈물 흘렸던 앵커브리핑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아내가 눈물 흘렸던 앵커브리핑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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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큰 난제는 아내였다. 아내는 이윤택에 대한 미투 운동이 있었던 날부터 설날 내내 소위 '멘붕'이었다. 처음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연극계는 깨끗한 것 같다는 동료 미술작가에게 '우리는 터지면 다 죽어'라며 시니컬한 웃음을 날리던 아내였건만, 그와 같은 여유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는 자기가 20대 초반에 몸담았던 극단에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물론 그와 같은 사실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연극계 선후배 페이스북을 전전했다.

급기야 아내는 19일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손석희 앵커는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원작 각본이 다름 아닌 이윤택이었다며 그의 모순된 행태를 비판했는데, 아내는 그제야 그 사실이 기억났다며 TV 앞에서 넋을 잃었다. 비록 극단에 오래 있진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 역시 그런 동료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때문인 듯했다.

엄마가 이렇게 괴로워하니 아이들도 어찌 집안 분위기를 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까꿍이는 회사에 있는 내게 '엄마는 계속 화가 나있어 ㅜㅜ' 라며 메시지를 보냈고, 산들이와 복댕이는 잘 놀다가도 뉴스에 연극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 눈치를 보는 듯했다.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우리 집에도 분명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계속되는 미투 운동과 영문도 모르게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아이들. 그런 녀석들에게 드는 감정은 부끄러움과 미안함이었다.

사실 미투 운동을 통해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고백들이 충격적이긴 하나 마냥 새로운 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작품이 어디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사회가 그만큼 썩었다는 것을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예컨대 증권가 등에서 도는 소위 '찌라시'의 소문은 많은 이들이 접하는 뉴스다. 또한 최근에 이어지고 있는 성추행 의혹 중 하나는 이미 내가 작년 연말에 친구들 모임에서 들어본 적 있다. 고은, 이윤택 등에 대한 소문은 소위 그 바닥에 조금이라도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술 한잔 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다시금 조명되고 있는 '장자연 사건'은 또 어떤가. 배우 한 명이 목숨을 끊어가며 알리고자 했던 그 엄청난 증언을 우리 사회는 공공연히 덮고 있다. 거기에 관련된 언론사며 피디, 기자 등은 이미 SNS를 통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못 본 척 해왔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 특히 나와 같은 기성세대는 모두 공범이다. 위와 같은 사건들을 정확하게는 몰랐어도, 정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짐작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계 때문에, 혹은 미약한 힘 때문에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비겁함.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이유이다.

'NO'를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지금처럼 미투 운동이 계속되면 세상이 바뀔까?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현재 미투 운동의 대상으로 거론되었던 이들의 면면을 보자. 안태근, 고은, 이윤택, 조민기 등등 모두가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히 법을 내세워 타인을 판단했고 자유와 정의를 거들먹거렸으며, 예술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관심을 쏟지 않으면 다시 그들의 왕국으로 돌아가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는 괴물들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 우리는 그 괴물들을 단죄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사회를 만들었다. 그들의 권위 앞에 쉽게 무릎을 꿇었고, 그런 현실과 타협했으며, 세상은 그런 거라며 자위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은 바로 그런 현실 속에서 처참하게 당했던 피해자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론화시키는 과정일 뿐, 단죄의 과정이 아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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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 가장 필요한 건 단죄의 과정이다. 괴물들에게 그들이 범죄자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사과? 자숙? 그런 건 필요 없다. 그들의 행위가 왜 범죄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혀 그들이 진심으로 참회하게끔 해야 한다. 사과마저 연출하고 연기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자비를 베풀 필요는 없다.

이와 함께 우리는 아이들이 성폭력에 가담하지 않도록 'NO'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떤 부당한 권력 앞에서도 방조자가 되지 않도록, 'NO'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잘못된 권력의 전횡을 방치하면서 괴물을 만들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범죄를 18년의 관행이라고 표현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다시 까꿍이를 바라본다. 아빠로서 네가 쉽게 'NO'를 말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존감을 키워 네가 네 감정에 충실할 수 있도록,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기성세대로서 더 이상 위와 같은 이들이 날뛸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지.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좀 더 많은 고백들이 나와 이 사회의 적폐들이 쓸려가기를. 그리고 모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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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