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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작은 존재다. 특히 커다란 세상과 견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작다고 여길 것이다. 죽음을 앞둔 노인은 죽음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것이고, 퇴직을 앞둔 50대는 미래 앞에 움츠러들고, 취업 전선에서 몇 번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청년들은 현재에 주눅 든다.

법적, 제도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삶을 걸어간 사람은 과거에 한숨 쉬며 산다. 거장이었던 연극연출가 이윤택, 시인 고은은 아마 스스로 큰 존재로 인식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작은 존재들을 권력으로 짓밟은 것이다.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최영미 시인, 극단 미인 대표 김수희, 배우 김지현 등 연극계의 아주 작은 존재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폭력 자체의 두려움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두려움이 공존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존재들은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줄 때, 그리고 옆에서 함께해줄 때 그 무엇보다 위대한 힘을 갖는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권력을 앞세운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이후 공감과 연대를 뜻하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번지는 상황이 작은 존재들로부터 이루어진 위대한 힘의 방증이다.

작은 새가 지닌 가치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작은 새』. 리젬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작은 새』. 리젬
ⓒ 리젬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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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마노 쥘로의 <작은 새>는 글이 거의 없는 그림책으로 독자 의식의 흐름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래 그림책에 대한 소개는 내 의식의 흐름대로 읽은 내용이다.

사막을 달리는 빨간색 트럭이 막다른 길목에 선다. 보통 때와는 다른 날이라고 생각한 트럭 운전사(나는 새 장수라고 생각하며 읽었다)는 트럭의 뒷문을 활짝 열고 트럭에 갇혀있던 새들을 날려 보낸다.

모든 새를 날려 보냈다고 생각한 아저씨는 문을 닫으려는 순간, 어두컴컴한 트럭에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보잘것없이', '사소한 것', '작은 것'이라고 표현된 까만 작은 새가 등장한다. 아저씨는 너도 날아가라며 날갯짓을 몸소 보여주지만 날지 못하는 작은 새는 포기한다.

아저씨는 트럭에 걸터앉아 작은 새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으면 알아보지 못했을 작은 새와 나누는 이야기는 시시한 이야기에서부터 가슴 깊숙한 이야기까지  다채롭다. 점심으로 싸 온 샌드위치를 나눠먹으며 아저씨는 꿈을 이야기한다. '어릴 적 나는 게 꿈이었던 나는 날지 못하는 대신 새장수를 하게 되었다'며 작은 새에게 인생의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면서 너는 꼭 날아보라며 도약부터 날갯짓까지 다시 한번 몸소 시범을 보여준다. 역시 아저씨는 날지 못했지만, 열 걸음 앞에 넘어진 아저씨 위로 작은 새는 날아오른다. 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작은 새는 친구들을 따라 날아간다.

막다른 길목에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하던 아저씨의 트럭 뒤로 작은 새가 보이고, 친구들이 그 뒤를 따라왔다. 아저씨의 꿈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꿈을 이뤄주자며 친구들을 설득해 아저씨에게 다시 돌아온 것이다. 큰 새는 아저씨를 번쩍 들어 올려 모두 다 함께 하늘을 비행한다. '작은 것들 때문에 우리는 풍요로워집니다'라는 글과 함께 책은 마무리된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3월이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어도 잘 읽히지 않았다. 5월 스승의 날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한 제자가 찾아왔다.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는 나는 도서관에서 그 친구를 맞이했고, 바쁜 점심시간 동안 음료만 대접한 채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빠지고 5교시가 시작될 무렵 그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눈망울이 크고, 평소에 더없이 착한 아이가 우는 터라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흐느껴 우는 지원(가명)이는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단순히 야간자율학습이 힘들고, 몸이 힘들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담임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참 좋았던 모범생 지원이가 겪는 낯선 어려움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흐느껴 울까?

"꺼져, 니가 뭔데 감히, 쟤 좀 치워라고 하시면서...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 든 모욕감 때문에 고등학교 자퇴를 할까 고민되기도 해요."

그때 지원이를 앞에 두고 제르마노 쥘로의 <작은 새>를 위와 같이 읽어주었다. 그리고 지원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를 알아봐 주는 트럭 운전사가 바로 선생님이라며 걱정하지 말고, 너는 너대로 살면 좋겠다."

걷어진 눈물 사이로 반짝이는 눈빛이 참 아름다운 친구였다. 힘을 내라며 하이파이브하고 용기를 얻었다며 돌아가는 지원이의 뒷모습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난 참 비겁했다. 작은 위로만 줄 뿐, 학생들에게 쉽게 내뱉는 막말을 하는 교사들을 비판하거나 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실질적인 말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 또한 학생이나, 동료 교사, 부인, 내 자식에게 이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힘없는 작은 존재들이 참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지원이는 이제 2학년이 되고, 담임과 헤어진다는 소식에 들떠있다. 그 후로는 그런 막말은 없었다고는 하지만 2학년이 되어 담임과 헤어진다는 것이 기쁘다는 그의 말에 죄책감만 더 커질 뿐이다. 선생님과 함께 읽었던 책 덕분에 힘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작은 새들의 비행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위드유'(#With You) 운동은 강자에 의한 성폭력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날갯짓이다. 그들의 비행을 반기면서 내 삶도 점검해본다. 권력에 의한 종류 불문의 폭력으로 학교, 직장, 군대, 가정 등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이 또한 정화되기 위해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작은 새

제르마노 쥘로 글, 알베르틴 그림, 이준경 옮김, 리잼(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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