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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제로를 꿈꿔왔으나 아무리 해도 그 방법을 찾지 못했던 문제의 그 대상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 쓰레기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기엔 너무나 미안한 남은 음식물들에게 나는 소생의 기회를 몇 번이고 주려고 시도했었다.

첫 번째는 지렁이와의 공생. 인터넷에서 지렁이로 음식물을 처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렁이를 찾아 헤맸다. 낚시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반신반의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지렁이들이 배송되어 오던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내 손에서 꿈틀거리는 이 징그러운 생물들을 보았다. 그동안 텃밭에서 수줍게 그 머리나 꼬리를 보여주던 것들이 지금 내 손 위에 발갛게 발가벗고 온몸을 보여주며 꿈틀대고 있었다.

'과연 너희들이 날 구제해줄 수 있을까.'

당장 스티로폼으로 지렁이들의 집을 지어주었다. 습기를 좋아하고 햇빛을 싫어한다고 해서 구멍을 뚫어주고 양파망으로 차양을 만들어 주었다. 흙은 그냥 뒷산에서 퍼와서 담았다. 블로거들이 말하길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죽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 부디 잘 적응만 해서 살아남아 내 쌓인 음식물들을 처리해다오.'

그렇게 몇 주일 동안 전전긍긍 애들이 살아있나 죽어있나 확인하느라 바빴다. 어느 날 살며시 남은 과일 껍질을 조금 넣어주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애들이 과연 먹었을까? 하지만 껍질은 그대로, 애들은 다 어디로 도망갔는지. 결국에는 과일 껍질들은 곰팡이가 슬고 말았다.

'맙소사. 안되겠다. 애들을 구제하자!'

참다 못해 남아있는 애들이 몇이나 되는지 흙을 뒤엎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처참했다. 거의 다 죽었던 것이다.

'아, 내가 살생을 하고 말았구나.'

특이종이라는 가족들의 눈치고 뭐고 다 참고 시도했던 것인데 역시 무리였나.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

두 번째는 텃밭.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현재 도시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독신이고 돈은 한 푼도 없는 아니, 쥐꼬리만한 보증금이 전부인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 텃밭은 무슨, 보이는 게 계단 밖에 없는 아파트다. 그리하여 만든 것이 작은 박스에 주변에서 귀하게 찾은 흙을 담아 놓은 소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작은)텃밭이다.

쓰레기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기엔 너무나 미안한 남은 음식물들에게 나는 소생의 기회를 몇 번이고 주려고 시도했었다.
 쓰레기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기엔 너무나 미안한 남은 음식물들에게 나는 소생의 기회를 몇 번이고 주려고 시도했었다.
ⓒ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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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지금부터 나오는 음식물들을 퇴비화 시키자. 그래서 열심히 모았다.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적었다. 과일 껍질 남은 빵 조각 등이 전부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한 달이 넘어가자 드디어 나의 귀여운 텃밭(?)은 과포화상태가 되었다. 퇴비가 웬 말인가 곰팡이만 키우고 있는 꼴이 되었다. 아, 이렇게 나의 두 번째 시도도 물거품이 되었다.

'원룸 신세에 흙더미 한 푸대랑 같이 자고 먹고 한 것이 다 무엇이었는가.'

세 번째는 식초 만들기. 과일 껍질을 활용해서 식초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다른 것들은 잘 모르겠고 과일 껍질은 왠지 쓸만할 것 같았다. 최근에 먹은 홍시와 사과 껍질을 유심히 째려보았다.

'느그들은 나럴 실망시키덜 안허겄제라.'

우선 홍시 껍질을 담을 유리병 하나와 사과 껍질을 담을 유리병 또 하나를 마련했다. 유리병을 모으는 나의 또 다른 취향이 이때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둘 다 설탕을 따로 뿌리지 않아도 당분이 많으니까 시간만 지나면 될 것 같았다.

'설탕 따위도 없다고. 홍시도 일부러 껍질까지 싹싹 긁어 먹는 걸 일부러 아껴서 안 먹고 넣었다고!'

그리고 몇 달을 그냥 따뜻한 방바닥에 두었다.

시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을 대비한 든든한 보일러로 인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끓었던 것이다! 발효가 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홍시는 생각보다 발효가 잘 안되고 껍질의 양이 많아서 그런지 탐탁지 않아서 탈락!

'남은 사과 껍질들, 너희들은 살아 남았느니라.'

아주 발효가 잘 되었다.

'아, 내가 독신 최초로 손수 사과식초를 만든 장인이 되는 것인가.'

허나 과욕을 부린 나머지 너무 가득 채워서 식초물이 흘러넘치고 남은 건 쬐끄만한 국물 뿐. 하지만 가능성이 충분했다. 왠지 몇 달 더 두면 식초가 될 것 같았다. 아, 드디어, 드디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비록 사과 껍질 한 종류 덜 버리는 것이지만. 첫 걸음은 뗀 것 아닌가.

'주여, 감사합니다.'


태그:#음식물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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