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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하루를 다 쓰는 '전업맘'이다. 처음부터 엄마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피아니스트 작가 아나운서 카피라이터 북에디터 등 '장래희망'과는 달랐다, 어울리지 않았다. 어엿한 삶을 살려면, 그럴듯한 장래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최선을 다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라 배워 열심히 노력했지만, 모두 놓쳐버리고 엄마가 되었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지위도 아니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세상은 자꾸만 '다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를 건넸다. 엄마로만 살지 말라고, 자신을 잊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덧붙여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자아를 되찾으라고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래희망'을 말 그대로 풀이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생에 대한 어떤 기대일 것인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기대들은 모두 직업을 가리키는 명사이다. 마치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짧은 탄성에서 단어로, 단어와 단어를 붙여 문장으로, 문장들을 그러모아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삶일 것인데.

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의 삶은 장래희망이라는 짧은 단어 하나로 간단명료하게 정리되고 길들여진다. 그렇게 얌전해진 삶은 어른이 되어서 어떤 지위에 오르고 무슨 직업을 갖는가에 따라 성공작이 되기도 하고 실패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를 잊은 적은 없었다. 어엿한 삶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엄마라는 새 이름을 달고 엄마의 일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사회가 인정하는 지위와 그것을 유지할 만큼의 돈을 버는 직업, 그럴듯한 장래희망의 범위에서 벗어났기에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그들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 주변을 서성거리다 눈이 마주치면,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라고 그럼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해 억울했고 돌아갈 수 없을까봐 불안했다.

'자아'는 그 안에 없어, 바로 여기 이렇게 있지 <나는 좀 다른 유령>

<나는 좀 다른 유령>
 <나는 좀 다른 유령>
ⓒ 풀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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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유령 스파르타쿠스는 다른 유령들처럼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아무리 해봐도 그의 입에서는 귀여운 웃음소리만 난다. 그래서 더 이상 유령학교에 남지 못하고 버려진 탑으로 쫓겨난다. 스파르타쿠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으스스한 '진짜 유령'이 되는 것이다.

엄마가 된 나처럼, 스파르타쿠스도 바깥으로 밀려났다. 유령이 유령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 얼마나 억울하고 불안한 상황인가. 친구들은 모두 유령학교에서 진짜 유령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는 공감하고 위로하려 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연습을 해 스파르타쿠스! 노력만 하면 유령다운 유령이 되어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런 공감과 위로는, 쓸데없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바깥으로 밀려났지만 억울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진짜 유령'처럼 되려고 '나'를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맞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스파르타쿠스가 최선을 다해 하는 일은 버려진 탑을 따뜻하고 편안한 자기만의 방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점점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소리'는 교장 선생님이 믿는, 그래서 만들어 낸, '진짜 유령'의 조건 아닌가. 유령학교에서 수많은 유령들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둔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하늘을 떠다니고 갑자기 나타나고 비명을 지른다. 그것이 진짜 유령인지 가짜 유령인지 고민 한 번 하지 않고서.

우리들의 장래희망도 비슷하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만들어 둔, 적당하고 적절한 조건들 중 하나가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나의 희망인지 남의 희망인지 고민 한 번 하지 않고서. 스파르타쿠스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자아는 그들이 만든 유령학교나 장래희망 안에 없다. 그저 '나'처럼 혹은 '나'만큼 살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충고와 타인의 평가를 기준으로 삼아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했던 시간들에서 벗어나기로 한다. 나는 '엄마'로 '이렇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도 풀고 예외 없는 규칙도 지우려고 한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예쁘다고 믿는 아이를 더 사랑하는 일, 그래서 그 아이의 삶이 단단하고 넉넉해지길 기다리는 일을 기꺼이 하겠다.

'나'처럼 좀 느리게, '나'만큼 좀 부족하게 살아도 괜찮다. 버려진 탑에서 따뜻하고 편안한 우리만의 방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점점 행복해지는 것이 스파르타쿠스와 내가 자아를 찾는 방법이다. 이제 우리의 장래희망은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에 게재된 글입니다.



나는 좀 다른 유령

히도 반 헤네흐텐 글.그림, 김현숙 옮김, 풀과바람(영교출판)(2015)


태그:#그림책, #그림책에세이, #어른을위한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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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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