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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왜 굳이 밖에 나가서 싸워야 하느냐. 너무 위험하고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 같으면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기술을 배워서 내 앞가림을 하겠다.'
'다 자기 밥그릇 키우려고 그런 것 아니냐. 다 이기주의자들이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런 과격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많다. 힘 낭비다.'
'나가서 싸우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안 하겠다. 나는 물대포에 맞아 죽고 싶지 않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시민단체를 그만두고 나는 매번 이런 질문을 마주했다. 진보운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울타리에서 나와 내가 들어야만 했고 고민해야만 했던 이 질문에 나는 항상 답을 하지 못했다. 말주변이 없는 나의 한계에 입술을 깨물면서도 나는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항상 답을 하지 못한 채 그들의 입장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 또한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사연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 나에게는 없었고 너무 벅찬 숙제 같았다. 그리고 결국 나 또한 그 되풀이되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오히려 더 잘 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을 떠났기 때문에 그 질문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운동은 당사자성이다. 어떤 사람이 머리에 빨간띠를 매고 밖에 나와 일인시위를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운동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운동하느냐는 그 사람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절박함의 문제이다. 이 말은 내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운동방법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어떤 가장이 자기가 일하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단식투쟁을 한다. 자기 식구들이 지금 굶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투쟁을 계속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욕하기도 한다. 지금 가족이 굶고 있는데 저러고 있는 게 맞느냐. 나 같으면 빨리 다른 일자리 구해서 돈을 벌겠다. 등등... 과연 그 가장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그런 바보천치일까?

불법체류자가 일을 하다가 사장한테 돈을 떼이고 당장 먹고 살 수 없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법도 모른다. 고향에 갈 수도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냥 다시 또 다른 사장 밑으로 가서 죽도록 일하고 돈을 떼어야 하나?

배가 침몰했다. 내 가족이 거기에 있었다. 몇 분 전에 통화까지 했다. 뉴스로 지금 구조하고 있다 한다. 그리고 내 가족은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국가는 침묵한다. 법으로도 어떻게 못한다. 유골도 못 찾는다. 나는 어떻게 하나?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내 딸이 건강하게 살아온 내 딸이 갑자기 희귀병이 걸렸다. 회사는 서류에 사인만 하면 돈 천만원을 준다 했다. 그것은 산재가 아니라는 각서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사인을 했고 졸지에 우리 집안은 병원비로 풍비박산 났다. 딸은 나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원망 섞인 말을 남기고 죽었다.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은 세상을 뒤엎으려는 혁명가도 아니다. 이들은 죽지 않기 위해 나와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 생을 걸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들을 이해 못한다. 나는 그들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보다 교육을 더 받았거나, 돈을 더 가지고 있거나, 더 권력이 있거나, 혹은 사회안전망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나는 그들보다 선택권이 더 많고 그들보다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공장에 취업했다. 당장 내 생존의 문제에 압박감을 느꼈고 나이도 들 만큼 들었고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나는 나를 받아주는 곳을 찾아준다는 국가운영 취업학교에 들어갔고 말도 안되는 교육과정에도 한마디 불평없이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국가가 소개해 준 공장에 취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뼈가 스러지게 열심히 일했다.

그곳은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곳이었다. 야간수당, 주휴수당, 휴일수당 같은 것은 없었다. 2~3일 동안 안자고 일하기도 했다. 주말에 하루만 쉬었다. 그렇게 해서 월급 150만원에 세금을 떼이고 130만원 남짓한 돈을 받았다. 나는 잠만 잘 뿐인 집에 월세를 꼬박 내며 그렇게 5개월을 일했다. 그리고 나는 대상포진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몸 속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노를 느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분노가 아니었다. 뼈 속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어쩌하지 못하는 분노였다. 내 삶을 농락당하고 내 몸을 농락당했을 때의 분노, 나의 삶을 흔들고 내 몸을 흔들던 분노였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는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아 힘겹게 열심히 살아간다. 다들 자신이 마주한 풀리지 않는 과제들이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들 꾸역꾸역 그렇게 살아간다.

운동은 혁명을 위해 시작하는 게 아니다.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위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나 먹고 살자고 시작하는 거다. 내가 살기 위해 하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그 몸부림들이 혁명이 되는 것이다. 그 몸부림들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세상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만큼이나 많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자신밖에 할 수 없다. 남이 내 삶의 방법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내 운동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남이 하는 운동은 남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수 많은 방법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세상은 굴러가고 변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한 가지 방법 만으로는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다양성의 상호작용이다.

단지 우리는 자신의 길 위해서 자신답게 싸우고 있는 것 뿐이다.



태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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