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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반형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텀블러
 사진기반형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텀블러
ⓒ 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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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는 최근의 화두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난 19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성 정책 토론회에서 "트랜스젠더는 많이 들었는데 젠더폭력은 무슨 뜻인가 (모르겠다)"고 말해 젠더폭력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25일에는 성매매·음란 게시물 삭제 협조를 거부한 '텀블러'가, 2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몰카 촬영(불법 촬영)과 유포에 벌금형을 없애고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이 화제였다. 젠더 폭력 문제가 한국에서 가시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중 사람들의 입길에 올랐던 텀블러는 미국의 소셜미디어로, 사진 기반의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에선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만큼 많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낯설 수 있지만,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다.

'지인 합성', '몰래 카메라' 등의 디지털 성폭력 게시글이 주로 유통되는 곳이 바로 텀블러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잠실역·선릉역 등에서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찍다 경찰에 붙잡힌 범인이 17개의 몰래 카메라 영상을 올린 곳도 텀블러였다.

텀블러에 다시금 관심이 모여진 건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이 '텀블러가 방통위의 음란물 삭제 협조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히면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상당한 양의 성매매·음란 게시물이 올라오는 텀블러 측에 관련 게시물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다(2017년 방통위의 '성매매·음란' 시정요구 3만200건 중 2만2468건이 텀블러). 그러나 텀블러 측은 '우리는 미국 법률의 규제를 받는 미국 회사이고,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며, 성인 콘텐츠는 당사 정책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정을 거부했다.

지난달 열린 여성혐오방치기업규탄집회 현장
 지난달 열린 여성혐오방치기업규탄집회 현장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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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해외에..." 책임 회피하는 기업들  

'본사가 해외에 있어서'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건 범죄가 더욱 활개치도록 도움을 준다. 지인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유포하는 범죄인 '지인합성'의 경우도 트위터 본사가 해외에 있어서 쉽게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십수 년 간 성행하다가 최근 폐지된 소라넷은 서버를 해외에 두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했다.

이미 인터넷 서비스가 보편화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상황이다. 적어도 온라인상에서 만큼은 한국과 외국 기업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도 아무런 제재 없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해당 게시글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텀블러 자체를 차단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 또한 적절한 대처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아이피 우회 등으로 차단된 사이트에 쉽게 접속할 수 있고, 사이트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은 콘텐츠 생산·게시자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소셜 미디어 회사에도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 '여성혐오 방치 기업 규탄 집회'에선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텀블러 등의 해외 기업들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여성 폭력을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인능욕' 계정은 이용자들의 신고 운동으로 트위터에선 거의 사라졌지만, 텀블러에서 다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일면 이러한 합성 제작이 문제라는 걸 깨닫는 것이 아니라 '트위터에서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 업체 측에서 이용자들이 게시물을 신고하면 처리하는 수동적인 태도로 나올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콘텐츠 관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텀블러는 디지털 성범죄 콘텐츠가 주로 유포되는 통로다.
 텀블러는 디지털 성범죄 콘텐츠가 주로 유포되는 통로다.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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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성인물을 보는 게 뭐가 문제냐고?

텀블러가 음란물의 온상이라는 기사가 앞다투어 쏟아지자 댓글에서는 "성인이 음란물 좀 보는 게 뭐가 문제냐", "야동을 볼 권리도 있다"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반면에 거의 하루 차이를 두고 보도된 '몰카 영상 유포자에 무조건 징역형을 내린다'는 기사의 댓글은 확연히 달랐다. "몰카는 근절되어야 한다", "좋은 법안이다"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용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텀블러 기사와 몰카 처벌 기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해당 콘텐츠를 음란물로 보는가 혹은 범죄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텀블러의 영상들을 단순히 음란물이라고 말하며 '볼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텀블러에 무수히 많은 보복 촬영 영상과 지하철 몰래 카메라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대부분의 포르노가 여성 억압적인 환경에서 제작되고, 여성 혐오에 기대는 묘사를 통해 잘못된 편견을 재생산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실제로 피해자가 발생하는 보복 영상들이 유통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볼 권리'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공감 능력의 문제다.

결국, 최근의 텀블러뿐 아니라 계속 제기되고 있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음란물' 문제들은 음란물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보복 촬영 영상들이 '국산몰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 제기하며 싸워왔고, 그 결과 '나는 국산 몰카가 좋더라'라는 말이 이제 더 이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의 영역으로 여겨지게 됐다. 텀블러 논란이 디지털 성범죄 콘텐츠의 심각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태그:#텀블러, #디지털성범죄, #여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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