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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협동조합 곁애가 마련한 문화가 있는 날 행사가 열리는 가리봉봉 아Z트 입구, 낡은 골목
▲ 가리봉동 아Z트, 문화가 있는 날 문화예술협동조합 곁애가 마련한 문화가 있는 날 행사가 열리는 가리봉봉 아Z트 입구, 낡은 골목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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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좁은 골목을 지나면 더 좁은 방들이 모여 살았던 벌집촌이 나온다.
▲ 가리봉봉 아Z트 입구 이 좁은 골목을 지나면 더 좁은 방들이 모여 살았던 벌집촌이 나온다.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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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찾아온 선선한 바람이 불던 8월의 끝자락, 30일. 서울시 구로구 낡은 주택 사이 골목에서 왁자지껄 흥겨움이 피어난다. 1980년대에서나 만났을 법한 낡은 여인숙 간판을 바라보며 들어선 좁은 골목 안에서는 음식 냄새와 함께 웃음소리·노랫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바스러진 시멘트 계단과 낡은 난간에 기대어 관객들이 1층, 2층까지 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고, 작은 창고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쎄씨봉 만큼이나 감미로운 통기타 선율이 흐르고 있다. 관객들의 호응은 홍대 거리 버스킹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주택가 골목 안에서 펼쳐지는 이 낯선 모습은 가리봉도시재생지원센터와 문화예술협동조합 곁애가 함께 마련한 '가리봉봉 아Z트,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한 장면이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되는 이 행사는 과거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고단한 몸으로 찾아들었던 작은 생활공간, 벌집촌을 활용해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가리봉봉 아Z트'는 8월에 처음 열린 행사가 아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돼 10월까지,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정기 프로그램이다. 6월 28일과 7월 27일에 이어, 8월 30일 세 번째로 열린 이날 행사는 연극공연과 통기타 밴드 공연, 인디밴드 공연 등으로 채워졌다. 

공연은 연극과 통기타 밴드, 인디 밴드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관객들은 벌집 계단과 난간, 구석구석 붙어있는 좁은 방들까지 오밀조밀 앉아서 편하게 관람한다. 벌집 1층에는 가리봉에 거주하는 중국 교포들이 준비한 음식을 판매하고, 관객들은 쿠폰으로 음식을 구매해서 공연과 함께 즐긴다.

첫 번째 공연, 연극 김동인의 '사진과 편지'

8월 가리봉봉 첫번째 저녁공연, 극단 하하하의 '사진과 편지', 김동인 원작.
▲ 8월 가리봉봉연극 '사진과 편지' 8월 가리봉봉 첫번째 저녁공연, 극단 하하하의 '사진과 편지', 김동인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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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봉 저녁 공연, 연극 '사진과 편지'는 좁은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극단 하하하.
▲ 연극 '사진과 편지'와 관객 가리봉봉 저녁 공연, 연극 '사진과 편지'는 좁은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극단 하하하.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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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가 되자,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구수한 가락과 함께 좁은 창고 지붕에 단조로운 조명 속으로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극단 '하하하'가 준비한 단편 소설극장, '사진과 편지' 공연이 시작된 것. 김동인의 동명 단편 소설을 극화한 이 작품은 해수욕장에서 만난 유부녀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공연인데, 두 배우의 맛깔스러운 연기에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추임새를 넣으면서 흥을 돋운다.

배우들은 제대로 된 무대가 아니라, 낡은 계단과 창고 지붕, 관객들이 앉아 있는 좁은 난간 사이를 오가며 자신들의 흥을 마음껏 뿜어낸다. 구로공단의 여공들이 지친 하루의 끝에 짧은 휴식을 취하던 그 좁은 벌집이 문과 벽을 허물고 훌륭한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대학로의 어떤 소극장보다도 더 생기있는 무대, 생동감넘치는 호흡이 전달되는 멋진 공연이 펼쳐진다.

원숙한 통기타 밴드와 젊은 인디 밴드

8월 가리봉봉 아Z트 공연, '더숲트리오'. 통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성공회대교수님들로 구성된 밴드.
▲ 가리봉봉 공연, 더숲트리오. 8월 가리봉봉 아Z트 공연, '더숲트리오'. 통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성공회대교수님들로 구성된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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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가리봉봉 공연 세번째,  블랙 어쿠스틱 밴드 '서울청년'
▲ 가리봉봉 공연, 밴드 '서울청년' 8월 가리봉봉 공연 세번째, 블랙 어쿠스틱 밴드 '서울청년'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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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간이 무대위로 이번에는 백발이 지긋한 3인조 통기타 밴드가 등장한다.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선 이들은 '더숲트리오'라는 이름의 밴드로 성공회대학교 교수님들로 구성된 특별한 팀이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로 시작되는 중저음의 하모니는 잔잔하게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더숲트리오에 이어서 블랙 어쿠스틱 밴드 '서울형제'의 공연이 펼쳐졌다. '서울형제'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편곡해서 익살과 감동을 함께 전달하는 아주 특별한 팀이다. 관객들은 진지함 속에서 감동을 느끼다가, 이어지는 익살스러움에 자지러지고, 그들의 특별함에 동참하며 무대를 함께 만들고 즐겼다.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진 세 차례의 공연은 구석구석 자리를 채운 100여 명의 관객들은 3시간 동안 공연을 즐기고, 함께 동참하며 벌집 문화마당을 채웠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문화예술협동조합 곁애가 조성, 운영하고 있는 문화공간이자 프로그램, 가리봉봉 아Z트.
▲ 가리봉봉 아Z트 문화예술협동조합 곁애가 조성, 운영하고 있는 문화공간이자 프로그램, 가리봉봉 아Z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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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봉 벌집촌 1층에는  김광석을 기리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 가리봉봉 아Z트에 있는 김광석 포토존 가리봉봉 벌집촌 1층에는 김광석을 기리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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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봉 아Z트는 가리봉동 125-8번지, 70-80년대 여공들이 살던 한칸짜리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특이한 공간을 서울시가 구입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있는 공간이다.

10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는데, 문화예술협동조합 곁애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10월까지 이 공간을 활용해, 특별한 문화의 장을 펼치고 있다. 곁애의 조하연 대표는 "공사가 시작되면 가리봉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역사적 특성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 전에 이 공간의 역사성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키고, 지역주민들과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공단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해볼 수 있는 벌집촌에서 펼쳐지는 문화프로그램이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과거 노동자들의 삶을 떠올리게 되고,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가 겪었던 시대를 간접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키즈봉봉, 주니어봉봉, 가리봉봉

가리봉봉 아Z트는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봉봉을 열고 있다. 연극배우와 함께 하는 연극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 가리봉봉 아Z트의 '키즈봉봉' 가리봉봉 아Z트는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봉봉을 열고 있다. 연극배우와 함께 하는 연극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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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봉 아Z트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벌집을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재조성할 계획이다.
▲ 벌집생생 가리봉재생 가리봉봉 아Z트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벌집을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재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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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봉 아Z트는 어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참여하는 키즈봉봉,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주니어봉봉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키즈봉봉은 가리봉에 있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인데, 연극배우가 어린이를 위한 '연극놀이터'를 준비하고, 함께 연극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니어봉봉은 청소년들이 가리봉 지역의 역사성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미싱으로 파자마 만들기, 캘리그라피, 목공 등 노동과 예술이 결합되는 다양한 체험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오후 2시부터 저녁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벌집 2층에 있는 작은 방들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가리봉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이 야시장을 마련, 음식을 준비하고 판매하며 문화마당을 축제의 장처럼 돕고 있다.

가리봉봉 아Z트는 앞으로 두 차례의 행사를 남겨두고 있다. 9월 27일 수요일, 10월 25일 수요일에 또 다른 공연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6월부터 매달 다른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채워왔듯이, 앞으로 남은 두 번의 공연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벌집촌의 마지막을 어떤 의미들로 채울지 기대된다.

9월과 10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한번만이라도 가리봉으로 가 볼 것을 권한다. 이제 딱 두 번 남았다. 영원히 사라져 버릴 벌집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태그:#가리봉, #아Z트, #도시재생, #벌집촌, #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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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문학가, 시인, 출판기획자 * 아동문학, 어린이 출판 전문 기자 * 영화 칼럼 / 여행 칼럼 / 마을 소식 * 르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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