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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하고 나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 있었다면, 돈이 부족해서 부모님께 돈을 부쳐달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던 순간이다. 입대한 이후로 용돈 따위로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나름의 다짐이 있었지만 그 다짐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군 복무 당시 10만 원 정도 하는 급여는 전화비용과 인터넷 비용, PX에서 사먹는 비용이면 쉽게 빠져 나갔다. 모든 장병이 가입했던 전화 서비스는 사회에서 전화하는 비용보다 비싸서, 애인이 있는 병사는 한 달 월급이 고스란히 전화비용으로 나가는 일도 흔했다.

돈이 부족한 군생활

7일 오전 대형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서 군인들이 진화작업을 위해 투입되고 있다.
▲ 강릉 산불 진화 작업 투입된 군인들 7일 오전 대형 산불이 발생한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서 군인들이 진화작업을 위해 투입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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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병사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용돈을 요청했다. 평상시에 급여가 떨어지면 PX를 가지 않으면 그만이었지만 휴가를 나갈 때, 분기 별로 외출/외박을 나갈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많은 병사들은 출타를 손꼽아 기다렸기에 분기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고마는 외박 기회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급여가 들어오기 직전에 외박을 나가게 될 경우에는, 한숨을 쉬고는 전화를 걸어 용돈을 요청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추가로 사야할 것도 많았다. 내가 군 복무 하던 부대가 위치한 화천.철원의 산골짜기 추위는 매서웠다. 선임들은 '사제 방한 용품'을 권장했다. 신병이 들어오면 '원래 외부 용품을 쓰는 건 금지지만 너무 추우니까...'라며 신병 휴가 때 장갑이나 내복 등을 사오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다들 하나에 2만~3만 원 하는 히트텍 의류와 두꺼운 장갑 등을 구매했다. 일용품이 보급되었지만 폼클렌징이나 면도크림, 샴푸와 바디워시 따위의 세면용품과 로션 등 화장품은 따로 구매를 해야 했다.

여름이 되면 뜨거운 햇빛을 피하되 야외 탈모 금지라는 규칙을 피하기 위해 정글모라고 불리는 모자를 샀다. 실내에 건조대가 없어서 돈을 모아 건조대를 샀다. 휴가 때 메고 나갈 가방이 없어서 몇 만원을 주고 또 다시 가방을 구매했다.

그 외에 생활 곳곳에서 돈은 필요했고, 중요했다. 건조기를 돌리는 데에는 500원 동전 두 개가 필요했다. 읽고 싶은 책을 사서 읽거나, 훈련을 대비해 먹을거리를 쟁여 놓거나, 음료를 따로 마시기 위해 텀블러를 사는 등 부대에서 조금 더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늘 돈이 필요했다. 근무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각자의 짐은 많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필요한 것들을 선임이 후임에게 물려주는 방식조차 없었다면 세면용품을 담을 상자처럼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조차 구매해야 했을 것이다.

병사들은 외출을 할 때면 가방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사정해서 가방을 빌렸고, 세면용품이 떨어지면 함께 샤워를 할 때 빌려서 쓰는 병사들이 많았다. 부대 내에서 일을 하다가 안경이 부러지면 그 안경테를 바꿀 돈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월급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병사들은 많은 게 부족했다. '보급품'이 나온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사실상 돈이 없으면 원활한 군 생활이 불가능했다.

월급 인상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지난 1일 경기도 연천군 수레울체육관에서 열린 육군 28사단 신병 수료식에서 6주간 신병 훈련을 마친 병사들의 가족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연천군 수레울체육관에서 열린 육군 28사단 신병 수료식에서 6주간 신병 훈련을 마친 병사들의 가족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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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는 병장 월급이 약 40만 원 가까이 되는 정도로 인상된다고 한다. 최저임금의 30% 수준이다. 앞으로 최저임금의 40%, 50%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올릴 계획이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냐고 묻지만, 그 돈은 마련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애초에 이번 2018년 국방부 예산 요구에 인상분이 반영되기도 했다.

현재 국방부 예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 사업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는 돈을 줄이는 것이다. 기재부가 사업 자체에 '전반적 부실' 평가를 내린 군 생활관 현대화 사업에는 10년간 6조 8천억원이 들어갔음에도, 육군에서 2조 6천억의 사업비를 추가로 요청했다가 국방부가 감시에 나서기도 했다.

군 인건비 차이도 크다. 군인의 70%가 현역 사병이지만 인건비는 2014년 기준 사병이 7310억 원으로 3.4%에 불과했다. 간부는 8조 가까이 되어 약 90%를 넘겼다.

그나마 있는 돈도 사병의 복지엔 쓰이지 않는다. 2013년 김광진 의원이 밝힌 국방부의 '2008~2012년 복지시설 확보사업 예산집행 내역'에 따르면 돈이 쓰이는 비중은 장교 96%와 사병 4%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간부들을 위해서 쓰이는 복지의 대표 예시는 골프장이다. 2016년 기준 전국에 33개의 군 골프장이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국방부에 요청해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골프장 이용객의 약 70%는 현역 군인이 아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난 2일 자신의 블로그에  국방부 장성들의 과잉 의전과 예산낭비를 비판하며 "국방부는 2020년대 중반까지 군인연금에 소요되는 경비가 150조에 달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굳이 돈의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사병들의 월급 증가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든다. 월급을 모아 전역 후 등록금에 이용하거나 자기계발에 쓸 수 있게 해줘, 청년들의 삶에 대한 직접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현 월급 체계에서는 빈번하게 보여지는 '빈부격차'를 느낄 일도 줄어든다. 군 내에서는 '오로지 계급으로만' 존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앞서 적은 문제들로 돈이 많은 병사인가 아닌가가 생활 곳곳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모든 물건을 보급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병 월급 인상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구매하게 해 기본적 삶의 질을 보장하게 만들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국방부의 예비군 만화를 바꾼 만화가 화제다. 국방부의 만화를 바꾼 이 만화에서는 타 국가의 예비군 일수를 비교하며 "우리나라의 상황은 낫다"는 간부의 말에 한 예비군이 '이스라엘은 일당 10만 원인데 어딜 갖다 붙이냐'며 쏘아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군대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개선하라는 요구에 '어쩔 수 없다'거나 '우리 정도면'이라고 할 일이 아니다. 사병 월급 인상은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할, 마땅히 그랬어야 할 일일 뿐이다.


태그:#군대, #군대월급, #군인월급, #군인월급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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