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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 복원 수술은 항문으로 배설이 가능하도록 소장과 대장의 소통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한 수술이다.

다른 기관으로 전이가 없고 재발만 없다면 직장암 환자에게는 외과적인 치료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10월 13일 오후 화순 전대 병원 입원
10월 14일 오전 복원 수술
10월21일 퇴원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 역시 소설 몇 편의 소재가 될 것이다.

공공 생활에서 사람의 생식기에 관한 용어는 사회성원들이 묵시적으로 양해한 금지어이다.

그리고 성인들의 경우 대변 이야기는 가급적 공공의 장소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을 상식과 교양으로 여기는 경향이 우세하다.

그러나 많은 직장암 환자들에게 대변은 일상적인 화두가 된다. 일부 환자들 중에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와 체념을 담은 "또옹과의 전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경우도 봤다. 

나 역시 수술 직후 예상을 초월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를 겪었다.

장루 복원 수술 후, 직장을 제거한 상태에서 대장과 항문을 바로 연결 했을 경우 대장이 직장의 기능을 대신하지 못해 몸에 적응하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변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고 들었기에 나름대로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마음과 정신만으로 육체적인 생리 현상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반적으로 화장실 가는 횟수라면 화장실 출입 횟수로 이해한다.

대변을 보는 시간을 셈하지 않더라도 장시간 대변을 보고 겨우 일어서려는데 다시 변의를 느껴 주저앉는 경우까지 계산하면 화장실 문고리를 몇 번 잡았느냐의 횟수는 의미가 없다.

찔끔거리는 대변을 수습하고 겨우 소변을 보았는가 싶으면 다시 변의를 느껴 변기에서 일어서다가 주저앉기를 서너 번 한다. 그런 고통을 헤아리지 않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은 횟수만 세는 일은 환자의 상태를 무시한 단순 계산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하여 괴로운 일은 잦은 배변활동으로 인한 항문의 통증이었다. 항문의 주변이 붓고 실금이 쩍쩍 간 듯한 느낌, 가시덩이가 변으로 나오는 느낌은 말과 글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변기에 앉아 눈물을 닦아 본 적이 있는 환우들만 이해할 것이다.

좌욕은 기본이었고, 자주 샤워도 했고, 비데로 항문 주변 마사지도 했고 운동도 하면서 병원에서 처방해준 연고를 항문에 발랐지만 통증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당시 어쩔 수 없이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하였는데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나 자존심과 삶의 질을 따질 계제가 못 되었다.

사상이나 철학이 무용한 겨우 미안함과 부끄러움만 아는 동물이 된 듯한 비참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수술 후 보름이 지난 10월 말로 접어들면서 배변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10월 29일 일기에는 '처음으로 밤중에 깨지 않았고 기저귀도 한 장만 버렸다고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사실 먹는 문제에만 매달렸지 정상적인 배변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랐다. 한마디로 직장은 대장의 일부로 사람이 먹은 음식의 찌끼를 처리하는 부대시설쯤으로 인식하는 수준의 무지한 인간이었다.

직장이라는 역할과 기능 그리고 사람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먹는 양에 비례한다는 배설한다는 사실, 과음하면 탈이 붙는다는 정도로만 알았지 과도한 배변 횟수가 사람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고 나아가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랬으니 건강한 항문의 고마움을 생각이나 했을 것인가? 그런 무지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던 셈이다.

외과적인 수술이나 항암 방사선 등은 병원의 몫이다. 현대의학은 아직 배설의 문제를 완전히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환자 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맞춤형 치료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암의 재발과 다른 기관으로의 전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런 노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가 먹는 음식을 가리고 제한하며 식습관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배변을 보는 횟수는 물론 대변의 양이나 색깔 형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발병을 확인하면서부터 시중에서 구입한 책을 읽고 '대직방' 카페와 '암과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카페에 들어가 나와 병기가 비슷한 사람들이 올린 글을 접하며 겨우 윤곽은 잡을 수 있었다.

나이, 직장이 남은 정도, 체질, 등에 따라 구체적인 처방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말은 쉽지만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기란 그야말로 성찰의 과정이 아니라 나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지난한 탐구과정이었다. 우선 설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아내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주된 식사는 부드러운 죽과 쌀밥 중심으로 소량을 섭취한다. 아침과 저녁 식사는 죽으로 점심은 완두콩을 넣은 쌀밥을 조금 먹었다.
2. 국거리는 미역 등 해조류국, 토란탕, 꽃게탕, 계란탕 등 부담이 적은 식품을 고른다. 
3. 반찬 종류는 시금치 쑥갓 부추 호박 숙주 등 맵고 짜지 않는 부드러운 나물 종류와 김 톳 파래 청각 다시마 미역 등 해산물, 민물 새우 조림과 갈치 삼치 조기 전어 등 생선 등을 매 끼니 한두 가지씩 조림으로 하거나 구워서 윤번제로 돌린다. 기본적인 단백질과 무기질 등을 섭취한다.
4. 채소는 열매와 알뿌리 구분 없이 먹는데 브로콜리와 색색의 파프리카 감자 고구마는 익혀 먹지만 히카마라는 멕시코 감자, 오이, 토마토 콜라비 상추 등은 날것으로 조금씩 먹는다. 무는 주로 식초에 버무린 생채를 만들어 먹는다. (병원에서는 상추 등 생것을 먹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조심스러웠는데 나의 경우 오히려 생것은 설사와 변비를 잡아주는 좋은 기능을 했던 것으로 판단한다. 지금도 거의 한 접시의 채소를 생식해도 설사는 없는데 의사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주의 사항이지 모든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싶다.)
5. 과일은 사과를 기본으로 설사에 좋다는 바나나 등을 곁들였는데 특히 사과는 매 끼니 반쪽씩 꾸준히 먹는다.
6. 실내에서 양말을 신고 있으며  낮에도 썰렁하다 싶으면 전기 복대로 배를 감싸서 덥히고 밤에는 아예 덮고 자는 등 몸이 차지 않게 한다. 
7. 식사 시간은 충분한 여유를 갖고 꼭꼭 씹는 것은 기본이고 천천히 먹는다.
8. 식사 중에는 검지 손톱의 크기와 두께로 저민 마늘과 생강을 두세 쪽을 먹고 식후에는 돼지감자 분말 한 숟갈 먹는다.(생강과 마늘은 항암효과가 있고 돼지감자 가루는 혈당을 낮춘다는 말이 들려 유익한 건강식품이라고 보았는데 마침 텃밭에서 해마다 자급자족하는 작물이기에 효과를 기대하면서 먹었다고 본다. 이로 인한 특별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9. 간식은 가급적 먹지 않고 시장할 경우 호두 잣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를 먹는다.

더불어 배변 횟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 나름의 가설에 의한 일종의 실험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효과가 있었다고 믿기에 소개해본다.

가설1. 사람은 무엇엔가 집중하면 현재의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 아픈 뉴스를 멀리하고 가급적 거실에서는 여행 프로그램이나 클래식 음악에 채널을 맞추었고, 또 사진에 취미를 붙였다.

전에도 우리 정원의 꽃이나 풍경을 사진에 담았지만 주제는 있었을 뿐 구도나 빛의 각도와 자동 노출에 따른 피사체의 색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으나 카메라의 수동 기능을 다시 공부하고 실천에 옮겼는데 병을 잊는 방법으로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비록 글을 쓸 여유는 없었지만 생각을 메모하고 글을 구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했는데 괜찮았다고 본다.

가설2. 운동을 통해 괄약근을 강화하면 변을 참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운동은 일어나기 전 팔과 다리를 들고 젓는 가벼운 동작과 낮에는 가급적 앉아 있는 시간보다 서서 움직이며 걷는 시간을 많이 갖고자 노력했다.

다만 바깥출입은 자제했는데 당시는 마을 사람들에게 야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점도 있었고, 또 우리 정원을 몇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운동량이 적당했기 때문이다.

가설3. 좌욕이 도움 된다니 실천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데, 좌욕 대야, 스팀 좌욕기를 활용하였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비데는 항문에 직접 닿게 하지 않으면서 항문 주변을 자극하여 잔변감을 줄이는 데 용이하다. 항문 주변을 청결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차분하게 지속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반면 좌욕 대야는 변기에 올려놓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지만 변이 나올 경우 난감하게 되어 다시 샤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가장 즐겼던 방법이다.

스팀 좌욕기는 전기로 물을 데워 수증기로 항문을 마사지 하는 방법인데 쑥찜 등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으나 비싸기만 할 뿐 효과가 적어 남성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기계이다. 여성들에게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가설4.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을 명상의 시간이라고 여기면 편해질 것이다.
쫓기는 일이 없고 남을 의식할 필요도 없으니 느긋하게 앉아 시집도 읽고 갖가지 구상을 하면서 속이 개운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심리적인 효과는 있었으나 살이 없는 엉덩이가 아픈 점이 문제였다.

가설5. 몸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진경제는 먹으며, 항문에도 연고를 바르는 횟수와 양을 줄여나갔다. 그 밖에 기타, 변실금이 있었기에 내 몸에서 악취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그리고 더운물로 몸을 따뜻하게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샤워를 자주 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지 아니면 시간에 비례한 신체의 자연치유력으로 인한 효과인지 알 수 없으나 한 달쯤 지나니 변실금 현상과 대변보는 횟수도 줄었다.

그렇다 보니 항문의 통증도 완화되는 등 전반적으로 몸의 상태도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적 여유도 생겨 메모형식의 일기를 바탕으로 2015년 1월 직장암 판정 이후 이야기를 정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항암으로 약물치료는 끝났고 장루복원수술로 외과치료는 끝났으니 음식 조심하고 운동하면서 체력을 키우는 일만 남았다고 여기면서 희망을 키웠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7.6.6



태그:#직장암 ,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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